[이철민의 Money-Flix] 고가 기호품 가격은 천사의 몫?초고가 위스키를 둘러싼 소동을 그린 영화 '엔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
이철민 VIG파트너스 부대표공개 2017-11-22 10:25:57
[편집자주]
많은 영화와 TV 드라마들이 금융과 투자를 소재로 다룬다. 하지만 그 배경과 함의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참인 명제다. 머니플릭스(Money-Flix)는 전략 컨설팅 업계를 거쳐 현재 사모투자업계에서 맹활약 중인 필자가 작품 뒤에 가려진 뒷이야기들을 찾아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려 한다.
이 기사는 2017년 11월 21일 17:4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얼마전 한·영 상호 교류의 해를 기념해 JTBC가 <영국의 품격, 브리티시 럭셔리를 만나다>라는 거창한 이름의 다큐를 방영했다. 배우 한고은이 새빌 로(Savile Row)의 맞춤 양복점이나 피카딜리 아케이드에 있는 보석세공품점 등을 방문하여, 로열 워런트(Royal Warrant)라는 왕실 납품 인증 체계에서 시작된 영국 명품들을 소개하는 내용이다.개별 브랜드들 중에는 의류 브랜드 버버리와 위스키 브랜드 로열 살루트의 역사와 현재가 세부적으로 소개됐다. 특히 로열 살루트의 경우, 1786년에 지어진 원액 저장창고에 들어가 오크통에 담긴 원액을 직접 마셔보는 장면이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위스키의 숙성 과정의 비밀이 담긴 결정적인 용어 하나가 등장한 게 바로 그 장면이었다.
엔젤스 셰어(Angel's Share). 오크통 안에 있는 원액이 매년 약 2% 정도의 증발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장인정신과 시간의 함수에 의해 만들어지는 위스키의 제조 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멋진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블랜딩도 중요하지만, 긴 시간 천사들과 공유하는 시간이 필요할 정도로 위스키의 핵심은 숙성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그 용어를 제목으로 하여 만들어진 아주 재미있는 영화가 한 편 있다. <엔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는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파 감독으로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거장 켄 로치 감독의 2013년 작이다. 개봉 당시, <랜드 앤 프리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빵과 장미>, <나, 다니엘 블레이크> 등 감독의 진중한 전작들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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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코미디이면서 동시에 케이퍼 무비(범죄 영화의 하위장르로 무언가를 훔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오션스 일레븐>과 같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주인공들도 사회적으로 낙오한 스코틀랜드의 젊은이 네 명이다. 주인공 중 한명인 로비가 폭력을 일삼는 건달 생활을 하다가 저지른 범죄로 인해 사회봉사 명령을 받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사회봉사 과정에서 우연히 로비는 위스키를 얻어마실 기회를 가지게 되고, 자신이 위스키의 맛을 감별할 수 있는 뛰어난 후각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런 재능이 새로 태어난 아이와 와이프를 먹여 살리는 데 도움이 될 리는 만무한 일. 그런 그에게1960년대에 문을 닫은 ‘몰트 밀'이라는 양조장의 위스키 한 통이 다른 양조장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위스키 품평가들에 의해 최소 100만 파운드(약 15억원)를 넘길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경매가 열리기 전날, 로비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양조장 저장창고에 숨어들어 간다. 깊은 밤이 되자 로비는 미리 준비해 간 병에 그 오크통의 위스키를 옮겨 담고, 대신 옆에 있던 다른 오크통 속 아무 위스키를 채워 넣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다음 날, 경매가 시작된다. 많은 애호가와 수집가들의 경쟁 끝에 확정된 최종 낙찰가는 무려 115만 파운드(약 17억).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이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진다. 낙찰 받은 노년의 남성에게 시음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최소 60년 가까이 숙성되었다고 믿어져 한 잔에 수십만 원이 되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위스키 한 모금을 음미한 후 그가 무슨 말을 했을까?
평생 정의와 평등이 무엇인가를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해온 노 감독은, 바로 그 장면에서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위선과 가식이 무엇인지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얼마 전 외국계 주류회사에서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원 후배로부터 들었던 말이, 바로 그 장면과 묘하게 오버랩 된다. "사실 블라인드 테스트하면 12년산인지 17년산인지 30년산인지 대부분 못 맞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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