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9년 12월 10일 10:2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어휴 한여름에 정장 입으면 바지 안에 땀이 차서 하루 종일 얼마나 찝찝한데요. 그 고충은 진짜 겪어본 사람 아니면 절대 몰라요. 이번에 복장 규정 사라져서 너무 편하고 좋아요. 주변 직원들도 다들 만족스럽대요."올 9월 초 만난 대한항공 관계자는 얇은 셔츠에 면바지 차림이었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늦여름 날씨와 딱 맞아보였다. 평소 땀이 많아 고민이라던 그는 당시 회사가 도입한 복장자율화에 대해 연신 만족감을 표했다. 한껏 들뜬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계절과 관계없이 1년 내내 정장을 고집하던 복장 규정이 삭제된 건 지난 4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취임 후 처음 생긴 변화였다. 비슷한 시기에 ‘점심시간 자율 선택제’와 ‘퇴근 독려 안내방송’도 시작됐다. 이때부터 직원들은 근무패턴에 맞춰 원하는 시간에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됐고, 눈치를 봐야 했던 정시 퇴근도 가능해졌다. 한 대한항공 직원은 "확실히 예전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며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속마음을 내보였다.
아버지 고 조양호 전 회장의 뒤를 이어 한진그룹을 이끄는 조 회장이 취임 후 가장 먼저 손을 댄 건 다름 아닌 기업문화였다. 재계에서 보수적이라고 소문난 한진그룹의 조직문화가 너무 ‘올드패션’이라며 직접 변화를 주도하고 나섰다. 그렇게 조 회장은 자신이 대한항공에 근무하며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을 하나씩 바꿔나갔다.
무엇보다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새로운 대한항공'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신이 앞장서야 직원들도 부담 없이 바뀐 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조 회장은 외부 약속이 없을 땐 편안한 복장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도 청바지를 입은 채 참석했다. 사내 게시판인 소통광장을 통해 직원들의 불만이나 개선 요구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합리적인 지적엔 직접 댓글을 달거나 실제 회사 운영에 반영하기도 한다. 그렇게 조 회장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직원들과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이같은 소통은 대한항공에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해 여름 대한항공 직원들은 오너일가의 부당한 갑질에, 열악한 근무조건에 분노하며 거리로 나섰다. 특히 직원들은 행여 있을지 모를 불이익에 대비해 가면을 쓴 채 구호를 외쳤다. 경영진에 대한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처럼 노사간 불통과 단절의 벽이 높게 세워져 있었다. 그 벽을 조 회장이 직접 허물기 시작했다.
조 회장은 최근 “직원들과의 소통 강화 등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데 늦은 감이 있는 걸 우선적으로 했고 나머지는 보고 있다”며 추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조원태의 대한항공’이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지 기대를 모은다. 직원들을 힘들게 만들었던 바지 안에 땀 차던 여름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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