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1월 14일 07: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총자산 100조원이 넘는 그룹을 경영하고 있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도 투자자문사로 시작했다. IMF 외환위기를 절호의 기회로 삼아 '박현주 성공신화'를 써내며 미래에셋을 글로벌 금융그룹의 경지로 올려놨다.그 시절 박 회장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강방천 에셋플러스 회장, 황성택 트러스톤 회장 등도 업계에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흔히 말하는 '자문사 1세대'의 성공은 2세대인 당시 박건영 브레인투자자문, 서재형 창의투자자문, 권남학 케이원투자자문에게 꽃길을 열어줬다. 물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자문사도 부지기수다.
1세대와 2세대를 거친 후 자문사 전성시대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헤지펀드'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사모펀드 운용사로의 변신이다. 끝까지 '자문사'라는 이름을 고수하던 VIP 마저 운용사로 전환하면서 1세대와 2세대 자문사 문화는 헤지펀드 운용사로 그대로 이어졌다. 이름표만 바꾼 셈이다.
타임폴리오와 알펜루트 등 훌륭한 실력으로 승승장구하는 곳도 생겼다. 정부의 규제 완화라는 날개를 달며 조단위 자금을 끌어 모은 곳도 여럿 생겼다. 이 정도면 웬만한 메이저 공모펀드 운용사를 이미 넘어섰다. 금융벤처기업의 성공신화를 쓰며 '제2의 미래에셋'이라는 꿈같은 이야기도 허황되지 않을 정도다.
사실 운용 능력은 과거 세대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에는 인맥과 마케팅에 의존한 비즈니스를 했다면, 이제는 퀀트와 토탈리턴스왑(TRS) 등 첨단기법과 메자닌, 대체투자 등 다양한 운용 능력을 구사하며 실력으로 승부하는 편이다.
하지만 화려하고 정교한 운용능력에도 불구하고 놓친 게 꽤 많이 있다. 자금 운용 능력에 비해 허술한 조직 관리가 문제였다. 주문 시스템, 포트폴리오 관리, 리스크 관리, 성과급 체계 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헤지펀드 운용사들이 태반이다. 직원이 열명만 넘어가도 어떻게 할지 몰라 우왕좌왕한다는 게 헤지펀드운용사 CEO들의 애로사항이다. 누가 어떻게, 그리고 어디로 튈지 감당이 안된다.
자금을 잘 굴리는 것과 조직을 잘 관리하는 건 별개다. 사모펀드 운용사에 뛰어난 펀드매니저 출신 대표는 많지만 운용도 잘하고 조직관리도 잘하는 CEO는 잘 안 보인다.
라임 사태는 정확히 이 허술한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 온 '검은 손'이 저지른 결과다. 부실한 자산이 걸러지지 않았고 운용상 리스크 관리가 안됐으며, 일부 직원의 일탈을 제어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이 모두를 복수로 체크하거나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과연 라임만의 문제일까. 현재 수백개에 이르는 헤지펀드 운용사들 대부분이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전산화되지 못한 시스템이 부지기수다. 첨단을 걷고 있는 헤지펀드가 '부띠크'라 불리던 자문사 시절의 시스템에서 몇발짝 나가지 못한 셈이다. 언제든 사고가 터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자본은 최고의 이윤을 추구하는 쪽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법의 경계 선을 넘나들 수 있는 유혹이 늘 도사린다. 그 선을 넘지 않게 만드는 게 바로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을 감안하면 제2의 라임 사태는 또 터질 수밖에 없다. 재발 방지를 원하는 감독당국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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