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9년 11월 15일 07:1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누군가 손실을 보면 또 다른 누군가가 이득을 본다는 관점에서 보면 파생상품은 도박이 얼추 맞다. 도박의 본질이 제로섬(zero-sum)이기 때문이다.이 관점을 들이대면 자본시장내 일어나는 주식과 채권 등 모든 금융 거래도 도박으로 볼 여지가 있다. 주식을 포함 금융자산에 대한 가격 상승과 하락에 베팅,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생기면 이들은 정반대 손익구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역시 제로섬이 거래의 근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 하에 금융거래라는 이름을 붙이고 정부는 거래시스템이나 거래소 등을 확보해 그 거래에 명분과 안정성을 부여해준다. 증권거래소나 파생상품 거래소 등이 합법적인 거래 시스템이다. 도박판에서 일어나는 권모술수나 온갖 사기와는 차원이 다른 시스템이다.
최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파생상품은 겜블(도박)'이라는 발언이 논란이다. 라임자산운용 사태와 파생결합증권펀드(DLF) 사태 등 금융회사들이 친 사고들이 너무 많아 이 발언의 경중조차 제대로 가리지 못할 분위기였다. 당사자인 금융회사들로서는 침묵이 가장 적절한 처신이 돼버렸다.
하지만 외국계 금융회사, 그리고 이들과 교류가 잦은 IB 사이에서는 금감원장의 발언이 '섬뜩하다'며 소스라친다. 파생상품 거래는 금융감독당국이 허가해 준 것인대 이를 도박이라고 지칭하는 게 말이 되냐는 얘기다.
파생상품 라이선스를 취득하려면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수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또 라이선스를 받아 파생상품을 발행할 때마다 발행분담금을 금감원에 납부하기도 한다. 금감원장의 말을 그대로 적용해 보면 정부가 도박장을 어렵게 내주고 도박을 할 때마다 수수료를 받아온 셈이다.
'한국에서는 파생 비즈니스를 하지마라'가 외국계 금융회사 사이에서의 결론이라고 한다. 수년 전 홍콩항셍(HSCEI)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최근 DLF 사태에서 봤듯이 일이 터지면 감독당국은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인 입장을 늘 취하기 때문이다.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더 섬뜩해 하는 건 이같은 감독원장의 발언에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분위기다. 파생상품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모두가 불편해 하는 우리나라 금융문화 혹은 투자 문화에서 비롯된 섬뜩함이다.
'파생상품이 도박'이라는 가볍지 않은 그 발언이 정치에 민감한 '조직의 문제'인지, 혹은 시장 경험이 없는 '사람의 문제'인지는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냥 파생상품은 금융시장 탐욕의 문제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우리 금융산업의 미래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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