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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색 짙던 신격호 회장, 2000억대 대출 '미스터리' 작년 6월 롯데지주·칠성음료 주식, 오산 부동산 담보대출…한정후견인 통해 집행

최은진 기자공개 2020-01-31 13:19:19

이 기사는 2020년 01월 29일 13:4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지난해 주식담보대출에 이어 부동산 담보대출까지 받으며 수천억원의 현금을 융통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담대로 약 1200억원, 부동산담보로 약 1000억원, 총 2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해당 대출건은 모두 지난해 6월경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치매를 앓고 있는데다 거동까지 불편했던 고령의 신 명예회장은 과연 수천억원의 자금을 어디에 쓰기 위해 대출을 받았을까. 또 그 돈은 누구에게 흘러갔을까. 당시 신 명예회장이 한정후견인의 보호 아래 있었던 만큼 일부 가족의 동의 하에 대출이 진행됐을 것이란 사실 정도만 추정될 뿐이다.

더벨이 조사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개인소유 토지 등기부등본 등에 따르면 지난해 6월 25일 부동산을 담보로 대규모 대출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채무자는 당연히 신격호 본인이다. 채권자는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두 곳이다.

경기도 오산에 위치한 '롯데인재개발원오산캠퍼스' 뒷편의 신 명예회장 개인명의 토지를 비롯해 인천 계양구 목상동 및 다남동, 서울 서초구 신원동에 위치한 토지 등이 담보가 됐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은 해당 토지에 각각 채권 최고액 600억원으로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통상의 담보비율 120%를 감안하면 이들 부동산을 통해 대출받은 규모는 각각 500억원씩, 총 1000억원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개인 부동산 권리내역. / 출처 : 등기부등본

신 명예회장은 같은 시기에 부동산 뿐 아니라 주식을 활용해서도 대출을 받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은 6월 말경 롯데지주와 롯데칠성음료 주식을 담보로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으로부터 신규대출 계약을 맺었다.

신 명예회장이 보유 중이던 롯데지주 주식 324만5425주(3.1%) 전량을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에 각각 162만2713주(1.55%)씩 나눠 담보로 맡기고 대출을 받았다. 계약기간은 1년으로 설정했다.

통상 주식담보대출은 담보 평가금액의 약 50~70% 정도를 대출해 준다. 이를 감안하면 신 명예회장이 담보로 맡긴 주식의 당시 가격을 반영한 평가금액은 1456억원, 이 중 50~70%인 728억~1019억원 정도를 대출금액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롯데지주로 담보대출을 받은 날 롯데칠성음료를 활용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빚을 냈다. KEB하나은행과 우리은행에 롯데칠성음료 보유주식 총 10만4080주(1.3%)를 각각 절반씩 담보로 맡기고 대출을 받았다. 이 역시 신 명예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롯데칠성음료 지분 전량이다. 계약기간은 1년이었다. 대출금액은 약 90억~126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롯데지주와 롯데칠성음료를 통해 대출받은 전체 규모는 총 818억~1145억원이다.

이처럼 부동산과 주식을 담보로 지난해 받은 대출규모만 파악된 것이 대략 2000억원을 넘어선다. 대출받은 자금의 용처가 어디인지는 파악할 순 없지만, 신 명예회장이 보유한 자산을 최대한 이용해 현금을 융통했다는 데 주목된다. 무언가 급전이 필요한 상황에서 최대한 가용재원을 이용해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인이 된 신 명예회장은 대출을 받을 당시 건강이 상당히 악화 된 상태였다. 100세를 바라보는 고령에 건강까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도대체 왜 급전이 필요했을까. 실제로 신 명예회장은 대출을 받았을 즈음, 병색이 짙어져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해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건강 악화로 몸져 누웠던 신 명예회장을 대신해 한정후견인이 대리해 대출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신 명예회장은 치매를 앓고 있었던데다 거동이 불편했던 터라 법원 결정에 따라 한정후견인을 두고 있었다. 한정후견인은 제한적으로 대리권만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지난해 받은 대출건은 가족 중 누군가의 의사결정 하에 진행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가정법원의 허가가 있었기에 최종집행까지 이뤄질 수 있었다.

2018년 신 명예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대림산업 지분을 블록딜로 매각할 당시에는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의사결정으로 한정후견인이 매각을 집행했다. 신 전 부회장이 부친에게 빌려준 자금을 돌려받는 차원에서의 거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발생한 담보대출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신 명예회장이 현금여력이 거의 없었다는 점, 자녀인 신 전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왕래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신 명예회장이 생활비나 병원비, 변호사비용 등을 마련하기 위해 대규모 대출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신 명예회장의 자의적 판단이 아닌 가족 중 누군가에 의해 받은 대출이라면, 대출금액이 적잖은 규모였던 만큼 향후 신 명예회장의 상속재산 분할 과정에서 가족간 마찰이 빚어질 유인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신 명예회장은 주식과 부동산 등 총 1조원에 달하는 상속재산을 남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됐던 지난해 한정 후견인을 통해 수천억원의 대출을 받은 사실은 참 미스터리 한 일"이라며 "누가 어떻게 어디에 썼는지 외부에선 확인하기 어렵지만 가족들 간 합의가 없었다면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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