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6월 12일 07:4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이 위기입니다."최근 삼성이 발표한 대언론 호소문은 위기로 시작해 위기로 끝을 맺는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위기를 겪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영이 정상화돼 한국 경제를 위해 매진할 수 있게 길을 열어달라"고도 호소했다.
삼성의 위기론은 주기적으로 반복돼 왔다. 위기가 아니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매년 신년사나 CEO 메시지를 통해 위기론이 나왔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바뀌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함을 호소했다. 샌드위치론·마하경영·창조경영·천재경영 등 이름은 달리 했지만 때마다 위기의식을 고취시켰다. 이재용 부회장 시절에도 반도체 위기론부터 스마트폰 위기설이 다시 제기됐다.
2020년 삼성이 다시 꺼낸 '위기론'은 태생적으로 순수성을 의심받기 충분하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위기론 중 하나다. 게다가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앞두고 나온 호소문이었다.
호소문의 메시지는 크게 두가지다.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로 '삼성과 임직원'이 감당해야 할 피해가 크다고 호소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을 두고 검찰은 주가 조작의 혐의를 묻고 있다. 자사주 매입을 주가 조작으로 보고 삼성물산의 수주 공시를 두고도 주가를 조정하려는 시도였다고 보고 있다. 삼성은 아직 판결이 내려지지도 않은 혐의를 불법이라고 단정 짓는 보도들이 대내외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진다고 우려했다.
삼성의 주된 무대는 글로벌 시장이다. 주요 선진국은 글로벌 수주 과정에서 평판 리스크도 염두에 둔다. 불법 행위가 적발된 기업엔 기회 조차 주어지질 않는다. 불법으로 예단되는 일이 실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우려스럽다.
또 한가지는 코로나19 사태다. 삼성은 호소문에서 한국 경제 및 삼성이 경영 위기를 맞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위기라고 강조했다.
최근 데이터를 보면 이같은 삼성의 위기론은 과장된 듯하다. 올해 1분기까지 주요 데이터를 보면 와닿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에 매출액 55조원에 영업이익 6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직전 분기에 비해 다소 줄었지만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다소 증가했다. 삼성물산은 매출액이 6조9600억원에 영업이익 147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줄었지만 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0% 가량 늘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에도 분기 사상 최대 매출(2071억원)에 영업이익 흑자(625억원)를 각각 기록했다.
하지만 2분기 이후 상황은 예측 불가능하다. 유동성 장세 덕에 주식시장은 하락폭을 만회하고 전고점을 돌파하고 있지만 실물 경제 지표는 최악의 데이터가 연이어 확인되고 있다. 수출, 실업률, 글로벌 경제 성장률은 최악의 수치들이 확인되고 있다.
기업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위기감은 더 크다. 매출 감소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느껴지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삼성은 호소문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에 따른 경영 공백을 강조하지 않았다. 이 얘기를 진짜로 하고 싶었는지는 모르지만 호소문은 삼성과 임직원의 피해만 강조했다.
삼성은 더 이상 이 부회장 1인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전문 경영인에 의해 주요 의사 결정이 이뤄지고 수많은 삼성 임직원들이 조직과 시스템에 따라 제품을 개발하고 현장에서 피땀을 흘린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세습을 포기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부회장 이슈를 계기로 나온 호소문이지만 삼성의 위기론은 다시 곱씹을 필요가 있다. 위기론이 반복적으로 나왔다고 해서 위기상황이 아니었다고 치부할 순 없다. 위기를 대비하면 위기를 모르고 지나가는 게 위기론의 아이러니다. 삼성의 위기도 이리 지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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