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바이오 흥망사]럭키의 유전공학 도전 "팩티브가 성공했더라면"①故 구자경 전 LG명예회장 전폭 지원…블록버스터 꿈꾼 국내 1호 FDA 신약
민경문 기자공개 2020-07-13 07:41:47
[편집자주]
바이오 산업은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이다. 막대한 비용과 오랜 연구기간이 불확실성을 높인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도 섣불리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럼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팜처럼 성공사례가 하나 둘씩 등장하고 있다. 과거에 바이오 사업을 중단했거나 실패를 경험한 대기업으로선 시샘의 대상이다. 뒤늦게나마 사업을 재개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더벨은 국내 대기업 바이오의 현주소와 그들의 도전사를 살펴봤다.
이 기사는 2020년 07월 10일 09:5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시작은 가장 빨랐다. 유전공학이란 말조차 생소하던 1979년 말이었다. 구인회 창업주의 장남인 고(故) 구자경 전 LG그룹 명예회장은 장치산업보다 고부가가치 산업이 절실하다고 여겼다.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대덕전문연구단지에 럭키중앙연구소(현 LG화학 기술연구원)를 세운 배경이다. 호사가들은 그가 축산, 화초 가꾸는 것을 좋아했다는 점을 두고 바이오 사업과 연관 짓기도 한다. 은퇴 후 버섯 재배에 열중하기도 했던 구 전 회장이었다.연구소장은 낙점을 받은 인물은 최남석 박사였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일하던 최 박사를 구 회장이 스카우트했다. 그는 LG 생명과학 연구의 초석을 다진 인사로 평가받는다. 1979년 40여 명에 그쳤던 연구 인력은 최 박사가 퇴임하던 1995년 30배까지 불어났다. 김용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대표, 이병건 SCM생명과학 대표 등 현재 한국 바이오 산업의 대표주자들이 당시 연구소 핵심 인재로 활약했다.
구 회장은 최 박사를 포함한 바이오 연구진 입장에선 확실한 ‘스폰서’였다. 정기적으로 연구소를 방문하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용 절감에 신경을 써야 하는 전문경영인이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1995년 구본무 회장이 취임하면서 ‘숫자’를 강조하면서 경영 지침이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한다. 단기간 성과를 내기 어려운 바이오보다 '전자-화학-통신서비스' 3개 핵심 사업군으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가 변화한 배경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연구개발은 꾸준히 이어졌다. 90년대 초중반까지 실패사례를 거듭한 끝에 당시 LG화학은 팩티브(Factive)라는 항생제를 만들어냈다. 2003년 4월에는 국내 기업 처음으로 미국 FDA 신약 승인이라는 쾌거를 일궈냈다. LG화학이 팩티브 연구개발에 처음 착수한 것은 지난 91년으로, FDA 승인까지 약 12년이 걸린 셈이다.
제품화까지 3000억원에 달하는 연구비를 들였고, 100여명에 이르는 연구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그 과정에서 GSK의 전신인 스미스클라인비참(SB)사와 제휴를 맺었다가 ‘리턴’ 당하는 수모도 겪어야 했다.
LG생명과학은 SB(GSK 전신)와 임상2상 단계에서 글로벌 개발 제휴를 맺었고, SB에선 미국, 유럽 등 글로벌 임상개발에 3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팩티브 상업화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2000년 자료 보완 등을 이유로 FDA 승인 유보 결정을 받게 되며 적기에 시장에 선보이지 못했고, 2002년 SB와의 제휴가 종료됐다. 이후 2003년 독자적으로 FDA 승인을 이뤄낸 LG생명과학은 진소프트와 판매제휴를 맺었지만 파트너사의 약한 영업력으로 상업화 초기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아쉽게도 팩티브는 실패한 약물로 평가받는다. 2006년 37억원, 2009년 119억원, 2011년 150억원까지 기록하며 매년 지속적으로 확대된 매출은 2012년 70억원으로 고꾸라졌다. 지난해 매출은 20억원 정도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판권은 일동제약에 넘긴 상태다. 글로벌 판매가 본격화되면 라이선스 아웃 파트너인 진소프트로부터 판매수익금과 로열티 등으로 연간 800억원대의 순수익이 가능할 것이라는 회사의 예상이 빗나갔다.
시장 관계자는 “어린이 사용 불가 등과 같은 복용 가능 환자군의 한계, 항생제의 약물특성상 여러 제형 및 용량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 등이 발목을 잡았다”고 말했다.
다국적 제약사들과의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적응증을 넓히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 팩티브의 미국내 판권을 가진 파트너사(오시언트)까지 파산하면서 현지 마케팅 ·영업도 좌초할 수밖에 없었다. 앞서 GSK가 공동개발을 포기한 것도 이처럼 팩티브의 수요 확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사전에 인지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팩티브의 물질특허는 내년 만료를 앞두고 있지만 제네릭을 개발하겠다는 제약사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매출이 저조한 만큼 제네릭에 대한 기대 매출도 낮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미국 FDA 승인 신약이라고 해도 상업적 성과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시장에 일깨워준 사례이기도 했다.
바이오업체 관계자는 "만약 팩티브가 성공했다면 LG의 바이오 산업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며 "다만 LG가 투자한 덕에 당시 연구 인력들은 한국 바이오 산업의 근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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