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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유한양행, 전통이 된 평사원 출신 CEO 발탁③전임 CEO 임기 말 수석부사장 선임…전문경영인 체제 속 장기성과 목표 추진

강인효 기자공개 2020-07-29 07:10:12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7월 22일 07: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유한양행은 소유와 경영을 완전히 분리한 곳이다. 오너가 주축이 돼 성장을 해온 한국 전통적인 재벌과는 달리 전문경영인 중심의 거버넌스를 보인다.

전문경영인 체제에선 장기 성장 목표를 이루기 힘들다는 게 일반적인 시선이다. 유한양행은 50년간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며 꾸준한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유한양행은 평사원 출신 CEO들을 선발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장기 성장 목표를 이루는 전통을 만들어왔다.

유한양행은 1969년 조권순 대표부터 현재의 이정희 대표까지 10명의 공채 출신 사장이 선임됐다. 유한양행 CEO들은 모두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CEO)의 자리까지 올랐다. 13대 대표를 역임한 박춘거 사장의 경우 평사원이 아닌 임원으로 공채 입사했지만 이는 한기에 끝난 특이한 케이스였다.

유한양행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큰 축은 '유일한 정신'과 '준비된 인재'다. 회사 내부에선 '정직, 성실, 신용'의 가치를 내세운 유일한 정신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임원만이 CEO 반열에 오른다고 이야기한다. 공채 출신 평사원이 CEO가 되는 전통이 생겼다고 말할 정도로 외부가 아닌 회사 내부에서 성장해온 준비된 인재에게 경영을 맡기고 있다.

관례적으로 부사장급이 CEO 후보군이 된다. 등기임원으로 등재가 되면 잠재 후보군이다. 등기임원 중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이 중 수석 부사장이 차기 CEO가 된다.

유한양행은 이달 초 조욱제 부사장이 수석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정희 사장이 한차례 연임을 마친 만큼 임기가 만료되면 차기 CEO로 조욱제 부사장이 내정된다.

유한양행은 명문화된 CEO 승계 정책이나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갖추고 있진 않다. 유한양행은 이사회 내 임원후보추천위원회도 두지 않고 있다. 유일한 박사의 유지와 전통에 따라 자연스럽게 CEO 후보군을 육성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유한양행은 지난달 한국거래소에 제출한 '2019년도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통해 대표이사 사장 후보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로 선임될 때까지 '6개월 이전'부터 충분한 승계 준비를 진행한다고 명시했다. 또 차기 CEO 후보군을 '경영임원 중'으로 한정했다. 관례적으로 이어져 온 CEO 선출 방식을 좀 더 구체화하고 이를 명확히 했다. 이같은 명문화 작업은 그동안 전통으로 이어온 관례를 정리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미 내부적으론 승계 프로세스가 시스템으로 갖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유한양행은 통상 매년 3월 정기 주총을 개최하는데, 차기 CEO는 주총에서 주주들로부터 신임을 받아 사내이사로 선임된 후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사장으로 확정되면 최대 6년간 일할 수 있다. 정관상 CEO 임기는 3년이고 연임이 한 번만 가능하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회사만의 후계자 검증 시스템이 있다"며 "CEO는 임원들이 여러 부서를 경험할 수 있도록 경력을 관리하고 업적과 역량을 기준으로 매년 평가해 후계자를 길러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일한 정신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후보만이 유한양행의 CEO 자격을 갖출 수 있다"며 "업무 실적이 부진한 임원은 재도전의 기회를 주지만 '유한 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으면 인정받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유한양행은 태스크포스(TF) 성격의 인사위원회를 운영하는데, 이를 거쳐 직원들이 임원으로 승진한다. 내부의 인재를 육성해 CEO의 위치까지 오르는 이러한 시스템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낳게 했다.

유한양행은 CEO가 입사식에서 신입사원들에게 회사 배지를 직접 달아주면서 '유한맨'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유한양행의 전 직원들은 누구나 '나도 사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과 목표를 갖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유한양행은 이미 1936년 종업원사주제를 도입했고, 1966년 전원사원제도까지 도입했다. 우리사주를 통해 전 직원이 주인인 회사를 만들었다. 여기에 평사원 출신으로 CEO가 선발된다는 전통이 안착되면서 장기 성과를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이어졌다.

유한양행 측은 "1969년부터 10명의 공채 출신 사장이 선임됐지만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 하차한 CEO는 없다"며 "재임 중 실적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훼손하지 않고 회사를 후임자에게 물려주는 게 오랜 전통"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명문화된 CEO 승계 정책 관련 규정은 없지만, 내부 프로세스와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며 "향후에는 내부 프로세스를 규정화하고 관련 위원회를 운영하는 등 최고경영자 승계 정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정희 사장이 신입사원 입사식에서 유한양행 배지를 직접 달아주고 있다. / 사진=유한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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