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타항공 M&A]채형석 애경 부회장 '결자해지'…1년만에 꺾인 M&A 의지'애경그룹 살리는 길' 판단…향후 항공업 업황에 따라 평가 갈릴 듯
박상희 기자공개 2020-07-24 08:32:42
이 기사는 2020년 07월 23일 13: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굵직한 M&A 거래나 대규모 투자 결정 등 기업 경영의 미래를 바꿀 중요한 의사결정은 결국 오너의 몫이다. 최고책임경영자(CFO)라고 해도 임기가 정해진 월급쟁이 대표가 섣불리 결정할 수 없다. 국내 경영 풍토에선 최후 의사결정은 오너가 한다. 그 책임도 오롯이 오너의 몫이다.제주항공이 결국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했다. 인수를 포기한 주체는 제주항공이지만, 이는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사진)의 결심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으로 시작해 이스타항공까지 항공업 M&A에 의지를 드러낸 것도, 아쉬움을 삼키면서 중도 포기를 선언한 것도 채 부회장의 결정이었다.
재계는 이스타항공과 관련된 여러 제반 여건들과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항공업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채 부회장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다. 재계는 무리한 M&A가 불러온 '승자의 저주' 사례를 수없이 목도하기도 했다.
제주항공은 이미 4월 말에서 5월 초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가 결정적이었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게 1월 중순 이후였다.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결정은 지난해 12월 말 이뤄졌다. 당시는 코로나19는 전혀 고려 대상에 없었던 변수였다.
항공업에 전염병 발발 등은 언제나 존재하는 '상수(常數) 리스크다. 국내 항공사들도 일찍이 메르스, 사스,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 등을 경험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스케일이 달랐다.
글로벌 팬데믹으로 확산되면서 전 세계 공항이 '올 스톱' 되다시피 했다. 공항은 개점휴업 상태가 되고, 항공기는 공항에 발이 묶였다. 항공업이 일찍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미증유의 위기 상황이었다.
백신이 언제 개발될 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언제 종식될 지 기약도 없이 불확실성만 높아져 가는 상황이었다.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채 부회장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인수 결정 시점 대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항공업 리스크를 계속 안고 갈지, 중도에 포기할지 선택의 순간이 도래했다.
제주항공은 공식적으로 포기 선언에 앞서 이스타항공에 선결 조건 이행을 요구했다. △최대 800억원에 달하는 체불임금 △타이이스타젯 채무에 대한 지급 보증 △조업료운영비 등 각종 미지급금 등의 해소 등을 내걸었다. 재계는 이같은 제주항공의 요구가 사실상 계약 해제를 위한 '명분 쌓기용'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스타항공의 최대주주는 이상직 민주당의원과 그의 직계 가족이다. 인수 계약 해지는 결국 법적 공방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포기는 여권 내 핵심 인사와의 법적 분쟁을 감수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스타항공측은 이번 계약 해제에 대해 "계약 위반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제주항공에 있다"라며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법적 소송에 들어갈 것임을 명확히했다.
이스타항공 인수는 최대주주가 정치인이라는 점으로 인해 고차원적인 방정식이 됐지만 채 부회장은 계약 해지를 강행했다. 이스타항공을 포기하는 것이 제주항공도 살고, 나아가 애경그룹도 살리는 길이라 판단한 것이다.
애경그룹은 M&A 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기업은 아니었다. 생활용품(유통)에서 화학, 화장품, 항공으로 사업 영토를 확장하면서도 M&A를 활용한 사례는 드물었다. 그랬던 애경그룹이 항공업 분야에서 야심차게 M&A 시장에서 도전장을 던졌고, 이를 주도한 이가 바로 채 부회장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본격화 된 아시아나항공 M&A에서는 고배를 마셨고, 이후 인수하기로 한 이스타항공도 결국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채 부회장의 항공업 M&A는 모두 실패한 셈이다.
모든 것은 결과론적이다. 오늘 '묘수'라고 생각했던 의사결정이 후일 패착이 될 수도 있다. 항공업계에서 바라는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백신이 하루빨리 개발되고 항공업이 본 궤도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이스타항공을 포기한 채 회장의 의사결정이 패착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이스타항공을 포기한 것이 '신의 한수'가 될 수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채형석 부회장이 항공업 M&A를 주도한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스타항공을 포기하는 의사결정을 내리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이라면서 "항공업의 미래가 어떻게 바뀌게 될지 예단할 수 없기 때문에 이번 결정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는 이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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