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9월 18일 07시45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7년 봄쯤으로 기억한다. 서울 동대문 근처 냉면집에서 저녁 식사 중이었다. 풍채 좋은 남자가 성큼 성큼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었다. 두산그룹 본사 근처에 위치한 이 식당은 박 회장이 즐겨 찾는 맛집으로 유명했다.우연히 박 회장을 만난 기자는 식사를 마친 그를 뒤따라가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박 회장은 성당 지인과 함께 와서 대답하기가 곤란하다며 향후 회사를 통해 정식으로 인터뷰 요청을 하면 응하겠다고 했다.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밝히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박 회장이 내년 3월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 직에서 물러난다. 한 번 연임(임기 3년)했고 전임자 잔여 임기(1년 6개월)를 포함하면 7년 6개월 가량 대한상의 회장직에 몸담은 셈이 된다. 두산그룹은 대한상의와 인연이 깊다. 박 회장의 선친 박두병(두산그룹 창업주), 형 박용성(전 두산그룹 회장), 정수창 씨(두산그룹 창업공신)도 대한상의 회장을 맡았다.
박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으로 추대된 시기는 2013년 7월이었다. 이에 앞서 박 회장은 2012년 3월 형인 박용현 회장의 후임으로 두산그룹 회장직을 맡았다. 4년간 그룹 회장직을 수행한 박 회장은 2016년 3월 장조카인 박정원 현 회장에게 역할을 넘겼다.
그룹 회장에서 물러난 그는 두산인프라코어로 복귀했다. 최근까지도 두산인프라코어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박 회장이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대한상의 회장직 수행을 위한 자격 요건 충족인 측면도 있다. 대한상의 회장 직을 수행하려면 회원 기업의 등기이사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들은 무엇보다도 박 회장이 두산인프라코어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박 회장은 두산중공업과 더불어 두산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손꼽히는 두산인프라코어를 키운 일등공신이다. 2007년 두산인프라코어 대표로 재직할 당시 두산밥캣을 인수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시련의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두산밥캣은 명실상부 두산인프라코어의 '알짜' 자회사로 성장했다.
두산그룹은 올해 유독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탈원전·탈석탄 정책으로 악화된 두산중공업 경영난이 두산그룹 전체 유동성 위기로 이어졌다.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도 계속해서 매각설에 시달렸다. 현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모양새지만 위기가 재발하면 언제 다시 매각설이 고개를 들 지 알 수 없다.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설을 바라보는 박 회장의 심정은 착잡할 것이다. 수십년 간 애정을 갖고 키워온 회사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는 상상은 차마 하기 싫을 것이다. 재계는 박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에서 물러나면 두산인프라코어 경영에서도 손을 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 회장이 퇴진한 이후 두산인프라코어 미래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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