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10월 21일 07:4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달 초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IR 행사가 있었다. 발표에 나선 진양곤 에이치엘비 회장의 자료집 제목(킬레가 또 데켕게)이 눈길을 끌었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라는 뜻의 힌디어라고 했다. IR 때마다 화두를 날리는 진 회장 특유의 레토릭(rhetoric)이기도 했다. 자료집 2면에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류시화 시인의 책 제목을 곁듵였다.격언의 배경은 이렇다. 스승이 제자 4명에게 배나무 한 그루를 보고 오라는 미션을 내린다. 하지만 스승이 원하는 답변을 가져온 제자는 없었다. 각각 계절 일부만 겪고 있는 나무의 모습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사계절의 변화를 모두 경험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교훈을 뒤늦게 깨닫는다. 힘들거나 불행했던 단편적인 시기만으로 인생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진 회장은 이야기 속 배나무를 에이치엘비 주식에 비유했다. 신약 기대감으로 주가 급등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임상 3상을 거치면서 주가 폭락을 경험하기도 했던 에이치엘비다. 그는 꾸준히 기다리는 투자자만이 신약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진 회장의 자신감이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는 에이치엘비만의 IR전략이기도 하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중에서 에이치엘비만큼 IR에 적극적인 회사가 있을까. 보도자료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에이치엘비 관련 뉴스가 끊임없이 미디어를 장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는 진 회장이 있다. 최근 메디포럼제약을 인수하며 M&A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과시했던 그다. 논란이 됐던 옵티머스펀드 투자 손실과 관련해서는 직접 사재를 털어 이를 보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작년 하반기 임상 3상 결과를 발표한 기업 중에서 에이치엘비만큼 꾸준히 주가를 유지중인 기업도 드물다. 신라젠과 헬릭스미스 등이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점과 대조적이다. 신라젠은 경영진의 횡령 및 배임 혐의가 불거지며 거래가 정지됐다. 상장 폐지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헬릭스미스의 경우 진행중인 유상증자가 실패할 경우 관리종목에 지정될 처지다. 5조원에 육박하던 시총은 1/10 토막이 났다.
3사의 운명을 가른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이들의 신약 파이프라인은 여전히 미국 FDA의 최종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사이언스(science)의 차이만 가지고 지금의 시총 격차를 설명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기다림으로 따지면 신라젠이나 헬릭스미스 주주들도 만만치 않았다. 대학 교수가 창업한 양사와 달리 에이치엘비를 이끄는 진 회장이 바이오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물론 에이치엘비도 상황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투자자들은 계속 기다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임계점에 도달할 것이다. 에이치엘비가 진 회장이 '예언'한대로 활짝 핀 꽃이 될 지, 꽃봉오리에 그칠 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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