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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사실상 빅딜 가격 개입…'양날의 칼' 우려 투자자엔 일시적 도움…자본시장 신뢰엔 흠집, 제2 쿠팡 양산 가속화

이경주 기자공개 2021-07-01 13:25:47

이 기사는 2021년 06월 30일 07:1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감독원이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해 조단위 IPO(기업공개) 공모가 잇따라 중단되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공모가가 비싸다고 지적 받은 발행사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업계에선 금감원이 사실상 가격 결정에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공모주 광풍에 기인한 현상이다. 인지도가 높은 빅딜에 개미(일반투자자)들이 ‘묻지마’ 청약을 하고 상장한 이후엔 따상까지 기대한다. 이에 기관(전문투자자)들도 비싼 공모가를 마다 않고 수용하고 있다. 비싸게 공모주를 사도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기관수요예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가격형성 기능이 무너졌다.

금감원이 논란을 감수하고 가격에 개입하고 있는 원인이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와 예측 가능성을 낮추는 행위다. 제2의 쿠팡 등장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SD바이오센서·크래프톤 IPO 연기…사실상 당국 가격 개입

금융감독원은 올 6월 9일 SD바이오센서 증권신고서에 중대한 하자가 발견됐다며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기관 수요예측(6월 10~11일)을 불과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SD바이오센서는 기업가치(밸류에이션) 고평가 논란이 있었다. 국내 최대 진단키트 업체인데 코로나19 종식에 따른 실적 불확실성이 밸류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SD바이오센서는 이틀 뒤인 6월 11일 밸류를 크게 낮춰 정정신고서를 제출했다. 공모가 희망밴드 기준 밸류가 4조6263억~5조3466억원으로 최초 계획(6조9229억~8조9159억원)보다 2조원 이상 낮췄다. 공모액도 5598억~6469억원으로 최초 계획(1조264억~1조3220억원)보다 5000억원 가량 줄었다.

직후 조단위 공모였던 크래프톤도 연달아 철퇴를 맞았다. 올 6월 25일 금감원이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역시 기관수요예측 직전(6월 28일~7월9일)이었다. 크래프톤도 기업가치(밸류에이션) 논란이 있었다. 공모가 희망밴드 기준 26조2590억~28조193억원으로 국내 게임대장주인 엔씨소프트 시가총액(약 18조원)을 8조~10조원 상회했다. 크래프톤은 엔씨소프트보다 이익은 소폭 적게 낸다.

IB업계에선 사실상 금감원이 밸류에 관여한 행위로 보고 있다. 다만 금감원은 두 개 딜에 정정 요구를 하면서 밸류에 대한 지적을 직접적으로 하진 않았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당국이 가격형성에 관여한 사실이 알려질 경우 거센 반발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공모주 열풍이 시작된 지난해부터 IB들을 대상으론 고평가된 공모주들에 대해선 주의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논란을 의식해 개별 딜에 대해서만 훈수를 두지 않은 것이다.

한 초대형IB 고위관계자는 “금감원이 지난해부터 바이오나 특례상장기업들 공모가가 과대평가되는 경우가 많다며 적정 가격을 위해 IB가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며 “SD바이오센서와 크래프톤 모두 직접적으로 밸류를 문제 삼진 않았지만 사실상 가격을 낮추라는 요구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감원이 가격 결정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기관수요예측 기능 상실…당국 개입 옹호론도

금감원 가격 개입은 투자자 입장에선 당연히 긍정적이다. 유망한 기업 주식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를 글로벌 히트 시킨 대단한 기업이긴 하지만 공모가는 비쌌다”며 “주가 상승여력을 보고 베팅을 하는데 크래프톤 공모가는 그 상승여력을 모두 체운 가격”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감원 정정을 계기로 밸류를 SD바이오센서와 때와 마찬가지로 크게 낮췄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IB 일각에서도 옹호하고 있다. IB들은 발행사와 투자자를 중재해 합리적 가격을 도출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보수를 발행사로부터 받기 때문에 현실은 권한이 크지 않다. 발행사가 원하는 밸류를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들은 못하는 제동을 금감원이 해줬다는 설명이다.

특히 기관수요예측의 가격형성 기능이 무너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당국 개입이 필요해 졌다는 주장이다. 가격형성 기능 상실은 공모주 열풍에 기인한다. 우선 발행사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지난해 SK바이오팜을 시작으로 카카오게임즈, SK바이오사이언스까지 ‘따상’을 기록했다. 후발주자들 입장에선 넘치는 유동성과 공모열기를 확인했다. 공모가를 계획보다 더 비싸게 잡아도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변화된 인식을 처음으로 반영한 빅딜이 올 5월 상장한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다. 공모가를 공격적으로 제시했다고 평가받았지만 기관수요예측에서 오히려 사상 최대 경쟁률(1882.88대 1)을 달성했다. SKIET 직후에 나선 SD바이오센서와 크래프톤이 보다 과감하게 공모가를 제안한 이유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기관들마저 시류에 편승했다. 공모가는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상장 후 더 비싼 가격에 사줄 투자자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왜곡된 시장 가격을 받아들였다. 수요예측 기능이 상실됐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또 다른 IB관계자는 “SKIET 기관수요예측 직전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 대표들의 의견을 물었는데 모두 지나치게 비싸다고 지적했다”며 “그런데 대다수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도 상장 후 엑시트(자금회수)가 가능할 것 같으니 그 가격을 받아들이고 확약까지 걸어 청약했다. 행여 따상이라도 기록하면 편입하지 않은 것이 손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과적으로 공모주 열풍 탓에 기관에 의한 가격결정 기능이 상실된 것”이라며 “금감원의 가격 개입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제2의 쿠팡 양산 가속화 비판도

다만 전문가 의견은 다르다. 시장경제 체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자율적으로 형성되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다. 당국의 가격 개입은 시장 질서를 흩뜨릴 수 있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설명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IPO 공모가도 기관투자자(수요)와 발행사(공급) 의견을 종합(수요예측)해 결정되는 것이 가장 정확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이라며 “일련의 상황은 금감원이 사실상 가격 결정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 맞다. 시장경제 원칙을 중요시하는 체제에서는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공모주 시장 과열로 인해 수요예측 기능이 상실된 부분에 대해서도 성숙한 자본시장을 형성하기 위한 성장통으로 봐야한다는 설명이다. 금감원은 투자자들이 스스로 성숙할 기회를 뺏은 것일 수 있다.

황 위원은 “금감원 입장에선 상장 직후 주가가 크게 하락한 빅딜이 나올 경우 공모주 과열현상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는 비판이 두려울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는 금감원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 투자자가 성숙해져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모주로 따상이나 무조건 수익이 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상 현상이 문제”라며 “일반투자자도 청약에 참여하면 투자에 대한 실패도 감수해야한다. 더불어 공모가 고평가 지적이 나오는 기업은 투자하지 않는 안목도 길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부 IB들은 금감원의 가격 개입이 제 2의 쿠팡 양산을 가속화 시킬 수도 있다고 본다. IB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미국 상장을 한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자신들이 희망하는 밸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금감원의 잇딴 빅딜 가격개입은 잠재 유니콘이나 데카콘 기업이 국내 상장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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