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민의 Money-Flix]불완전 판매는 전세계 금융 소비자들의 영혼을 잠식한다스페인 영화를 리메이크하면서 키코 사태를 접목시켜 주목받은 <발신제한>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공개 2021-07-16 10:43:09
[편집자주]
많은 영화와 TV 드라마들이 금융과 투자를 소재로 다룬다. 하지만 그 배경과 함의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참인 명제다. 머니플릭스(Money-Flix)는 전략 컨설팅 업계를 거쳐 현재 사모투자업계에서 맹활약 중인 필자가 작품 뒤에 가려진 뒷이야기들을 찾아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려 한다.
이 기사는 2021년 07월 16일 10: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이란 무엇인가? 이 간단한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금융에 대한 이해의 정도나 경험 등이 개인별로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그 답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정답은 아닐지라도 막상 듣고 나면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답이 하나 있으니, 바로 금융은 본질적으로 ‘신뢰’라는 것이다.그래서 그 ‘신뢰’를 의도적으로 기망하는 모든 행위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복잡하고 방대한 금융 시스템의 본질을 흔들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에 대한 신뢰를 배신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끊임 없이 발생해왔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금융 사고는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특히 기관과 개인간의 금융거래에서는 필연적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이 발생한다. 금융 상품의 매매에 있어서, 그 상품을 만들고 운용하는 금융기관은 그 상품의 소비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그저 판매를 통한 이익만을 편취하려 하다가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 ‘불완전 판매’로 인해 발생하는 전형적 금융 사고가 사회 전체를 흔들 정도의 큰 파장을 가져온 사례는 한 둘이 아니다. 가장 최근에는 라임과 옵티머스로 대표되는 이른바 ‘사모펀드’ 사태가 불거졌고, 그 뒷수습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그때마다 억울한 피해자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그저 뉴스의 한 켠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삼이사로 등장하고 잊혀져 갔다.
얼마전 개봉한 명품 조연 배우 조우진의 첫번째 주연작 <발신제한>은, 바로 그렇게 금융 사고 뒤에서 그저 불쌍한 피해자로만 그려지고 사라졌던 이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다룬 첫번째 우리나라 영화다. 특히 2008년 발생한 키코(KIKO) 사태의 피해자를 등장시킨 점은 매우 흥미로웠는데, 키코 파생상품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대중문화에서는 거의 다뤄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약 1000여 기업에게 발생한 키코 파생상품의 손실은 3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송 결과 2013년 대법원은 불공정 거래행위가 아니라고 판결하면서 동시에 판매 은행들에게 일부 배상 책임을 적시했다. 그리고 2019년말 금융감독원은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의 피해를 은행들이 보상하라는 권고를 내린 바도 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물론 당사자들에게만 그렇지, 일반 대중들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영화 <발신제한>은 바로 그 키코를 불완전 판매하고 그 사실을 은폐한 은행 지점장(조우진 분)과 그로 인해 가족을 잃은 피해자(지창욱 분)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그들의 입장이 차량 폭탄 사고의 피해자와 가해자로 뒤바뀌는 핵심 모티브로 키코 사태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 설정이 주목받아 마땅한 이유는, 이 영화가 2015년 개봉된 스페인 영화 <레트리뷰션: 응징의 날>(El desconocido)의 매우 충실한 리메이크이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는 키코와 같은 특정 상품이 등장하지는 않고, 투자 상품의 손실로 자살한 가족이 있는 피해자가 그 상품을 불완전 판매한 은행원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만들어진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야기에 키코라는 살아있는 사례를 접목시킴으로써, 관객들을 영화에 더 몰입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발신제한>은 그냥 킬링 타임용으로 보는 오락영화로 치부하기엔 어딘가 아까운 면이 있는 영화다. 후반부에 힘이 급격히 빠지는 원작의 문제를 조금 더 고민해서 개선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흥행 성적도 더 좋았을 것이고, 동시에 금융 사고에 대한 경각심도 높이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가져올 수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첫 주연작에서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 조우진도 더 주목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발신제한>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WSmgHodVqDk
<레트리뷰션: 응징의 날>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KWnJ-TAUhco (본 영화는 티빙에서 관람 가능)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best clicks
최신뉴스 in 전체기사
-
- [북미 질주하는 현대차]윤승규 기아 부사장 "IRA 폐지, 아직 장담 어렵다"
- [북미 질주하는 현대차]셀카와 주먹인사로 화답, 현대차 첫 외국인 CEO 무뇨스
- [북미 질주하는 현대차]무뇨스 현대차 사장 "미국 투자, 정책 변화 상관없이 지속"
- 수은 공급망 펀드 출자사업 'IMM·한투·코스톤·파라투스' 선정
- 마크 로완 아폴로 회장 "제조업 르네상스 도래, 사모 크레딧 성장 지속"
- [IR Briefing]벡트, 2030년 5000억 매출 목표
- [i-point]'기술 드라이브' 신성이엔지, 올해 특허 취득 11건
- "최고가 거래 싹쓸이, 트로피에셋 자문 역량 '압도적'"
- KCGI대체운용, 투자운용4본부 신설…사세 확장
- 이지스운용, 상장리츠 투자 '그린ON1호' 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