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의사결정 체계, 책임경영 문제없나 ⑦오너일가 등기임원 無, 권한과 책임 '괴리' 지적…중대재해법도 부담 요소
고진영 기자공개 2021-08-03 08:14:12
이 기사는 2021년 07월 30일 16:1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구본식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희성그룹 시절부터 '은둔'을 선호하는 기조가 두드러졌다. 독립한 뒤에도 이런 경향이 반영된 탓일까. LT그룹 지배구조는 지금의 ESG 트렌드에 상당히 뒤쳐지는 편이다.상장사가 전무하다 보니 계열사 대부분은 의사결정 과정, 경영시스템 등에 대해 매우 제한적인 정보만 공개되고 있다. 특히 등기임원 명단에서 오너일가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책임경영 차원에서 아쉬운 부분으로 꼽힌다.
◇그림자 경영 고수, 5년째 LT삼보 '미등기'임원
현재 LT그룹에서는 LT삼보만 주주 500인 이상의 외부감사대상 법인으로 사업보고서를 내고 있다. 이사회 구성을 보면 사외이사제는 도입하지 않았으며 사내이사 3명뿐이다. 대표는 장태일 사장이 맡고 있고 CFO인 이상덕 전무, 국내영업담당 황진석 상무가 나머지 두 자리를 채웠다.
총수인 구본식 회장의 경우 LT그룹이 출범할 때부터 이른바 그림자 경영,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2대주주로 올라선 2017년 이후 임원으로 기재되긴 했으나 미등기임원이라 이사회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LT삼보를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들은 사업보고서 제출 대상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미등기임원에 대해선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이사회 멤버는 등기를 통해 확인이 가능한데 모두 LT삼보와 체계가 대동소이했다.
계열사별로 살피면, 덩치가 LT삼보 바로 다음 규모인 LT메탈은 노석호 대표를 포함해 총 9명의 사내이사를 뒀다. 이사 수가 많은 이유는 일본 다나까귀금속공업㈜ 측 인사 4명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LT메탈은 해당 회사와의 합작투자계약으로 설립된 회사다.
LT정밀의 경우 박철호 대표와 김진국 대표 등 사내이사 3명, 그 자회사인 LT소재는 이주동 대표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으로 꾸려져 있다. 또 동동이엔씨는 신현욱 이사 1명만 등기임원으로 기재됐다.
눈 여겨 볼 부분은 LT정밀 김진국 대표가 LT소재의 감사를 겸하고 있다는 점이다. 감사의 독립성에 의문이 따라올 여지가 있다. 김 대표는 2019년까지 LT삼보 감사도 겸직했으나 지난해 3월 사임했고 지금은 최정식 전 금정세무서장이 LT삼보 감사를 담당 중이다.
결론적으로 감사, 이사를 포함해 어디에도 구 회장 일가의 이름은 올라있지 않았다. 이처럼 기업 총수가 ‘미등기’인 사례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책임 회피에 유리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미등기임원으로서 전문경영인보다 훨씬 많은 보수를 받는 케이스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평가다. LT삼보 역시 구본식 회장이 대표이사인 장태일 사장보다 높은 급여를 받고 있다.
실제 작년 한해 동안 구본식 회장은 급여 18억2200만원, 상여 2억7400만원 등 총 20억9600만원을 보수로 수령했다. 대표이사인 장태일 사장이 받은 급여 5억2600만원, 상여 6600만원 등 5억9200만원보다 15억원 이상이 더 많다.
배당금 역시 따로 가져갔다. 지난해 LT삼보는 주당 210억원을 배당했으며 이에 따른 구본식 회장(45.28%)의 몫은 약 31억5000만원이었다. 아들 구웅모 과장(48.28%)에게도 33억6000만원 가량이 돌아갔다. 구 과장은 LT삼보 최대주주지만 아직 LT메탈에서만 근무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등기임원 여부와 보수 책정 이슈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명목상 이사회지만 십중팔구는 총수가 최종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권한과 책임을 일원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면 등장 왜 망설이나, 중대재해법 영향도?
이런 경영 형태는 LT의 모태인 LG그룹과도 차이가 크다. LG그룹은 경영에 참여하는 총수일가가 전부 등기임원으로 올라 있다. 대그룹의 경우 사회적 관심이 몰리기 때문에 재계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LT그룹은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다 보니 변화의 필요성을 덜 느낀 것으로 보인다.
법적인 문제도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구 회장이 재계 전반에 불고 있는 ESG 강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등기임원직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목된다. 이 법은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의 형사처벌을 가능케 하겠다는 취지로 뼈대를 요약할 수 있다.
약 반년 뒤인 내년 1월 시행되는데 적용을 앞두고 오너 리스크 줄이기에 기업들의 초점이 쏠리는 중이다. 게다가 시행 초기에는 본보기로 법을 강하게 집행하려 할 수 있기 때문에 1호 사례가 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특히 '경영책임자'의 개념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부분이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우선 법은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처벌의 대상이 되는지를 분명히 파악하기엔 의문을 남기는 설명이다.
그간의 판례를 보면 법원은 산업안전법상 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 대해 "명칭의 여하를 불문하고 당해 사업장에서 사업의 실시를 ‘실질적으로’ 총괄⋅관리하는 권한과 책임을 가지는 자"로 정의한 사례가 있었다. 이에 비춰서 중대재해법을 해석해보면 회장 등의 직위를 가진 오너의 경우 비록 대표이사가 아니더라도 경영책임자에 해당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구 회장이 사내이사에 오를 경우 책임주체가 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종합건설업 확대 추세…안전사고 리스크도 'UP'
시기적으로도 LT삼보는 불안이 클 수밖에 없다. LT삼보는 해상공사 등에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전문건설사지만 최근에는 종합건설업 진출에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공공공사에서 종합건설업과 전문건설업간 업역이 폐지됨에 따라 전문건설 시장 파이가 더 좁아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종합건설로 사업규모를 확대하면 하청업체 안전사고 등을 관리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국내 전문공사 영역은 도급액이 100억원에 불과한 소규모 현장이 대다수라 상대적으로 안전사고 위험이 낮았으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이에 따라 LT삼보 내부적으로도 걱정하는 시각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법무법인 율촌 등 로펌으로 부터 관련 세미나도 여러 번 받았다는 후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법률이 이제 막 시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참고할 사례도 없고 처벌 대상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며 "이미 등기임원에 오른 총수도 직을 내려놓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나오는 와중인데 지금 구 회장이 사내이사직을 맡기에는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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