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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60년 히스토리]치열했던 생존경쟁, 첫 30위권에서 9개사만 남았다①대그룹 건설사 위주로 힘 쏠려, 현대건설·DL이앤씨 10위권 유지

고진영 기자공개 2021-09-06 07:13:54

[편집자주]

건설업계에선 해마다 시공능력을 줄세우는 성적표가 매겨진다. 항목별 점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업계의 '파워 시프트(Power Shift)'를 짐작해볼 수 있는 연례 이벤트와 다름없다. 특히 대형사들에게는 상징성 싸움이자 자존심 문제로도 의미가 있다. 도입 60년, 시공능력평가를 통해 시장의 판도 변천사를 되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1년 09월 02일 08:3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시공능력평가제도는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시작되기 직전인 1961년 도입됐다. 이듬해 최초로 평가결과가 공개됐으니 올해로 만 60년을 맞은 셈이다. 격세지감, 경제·사회적인 격동기를 겪으며 건설업계 역시 그간 엄청난 변화를 맞았다.

첫 명단에서 상위 30위권을 차지했던 건설사 가운데 지금은 단 9곳 만이 살아남았다. 나머지는 생존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흡수합병으로 명맥이 끊겼다.

◇60년대 첫 도입, 대그룹 위주 약진

국내 건설시장은 1960~1970년대 1·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거치면서 빠르게 덩치를 키웠다. 이런 고도성장 속에 시공능력평가 제도는 발주자에게 업체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를 알려 부적격 업자의 입찰 참여를 제한하고, 도급한도액을 설정해 중소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1962년 처음 발표된 시평 순위를 보면 몇몇 업체를 제외하고는 이름조차 생소한 건설사들이 여럿 포진해 있다. 1위에 현대건설, 2위에는 대림산업(현 DL이앤씨)이 올랐고 삼부토건과 동아건설산업이 뒤를 좇았다. 이밖에 대한전척공사, 삼양공무사, 한국전력개발공단 등이 10대 건설사군을 형성했는데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명들이다.

10여년 뒤인 1970년대에도 현대건설과 DL이앤씨, 삼부토건 등을 위시한 상위업체들의 집권은 비슷하게 이어졌다. 극동건설, 삼환기업, 한신공영 등이 새롭게 10위권에 진입했는데 특히 삼환기업의 기록은 업계의 마일스톤이라 할 만하다.

이 때는 1973년과 1979년 2차례에 걸친 오일쇼크 위기를 지나면서 건설업계의 해외진출이 시작된 시기였다. 삼환기업은 197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하며 국내 건설사 중 처음으로 중동 시장에 진출했다. 이른바 ‘중동 붐’을 이끈 계기가 됐다.

당시 횃불을 켜고 철야작업을 하자 근처를 지나던 파이잘 사우디 국왕이 “저런 사람들에게 공사를 더 주라”고 지시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삼환기업은 부침을 피하지 못했다. 경영난을 맞으면서 2012년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2015년 상장폐지의 위기를 거쳐 2018년 SM그룹에 인수됐다.

이밖에 대우개발(대우건설)과 협화실업(코오롱글로벌), 미륭건설(동부건설), 동산토건(두산건설) 등이 1970년대 30위권에 뉴페이스로 등장했다. 반면 대한전척공사, 삼양공무사, 협화조, 제일건설공업 등은 등록 말소에 따라 시평 명단에서 퇴출됐다.


대우건설과 삼성건설(삼성물산)의 위상 변화는 1980년대 본격화했다. 현대건설의 독주는 마찬가지였으나 그 밑에서 대우건설, DL이앤씨, 동아건설산업, 한국중공업(두산중공업), 삼환기업, 한양 등의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특히 대우건설은 1973년 영진토건사를 인수하면서 설립됐는데 불과 7년 만인 1980년 5위까지 올랐다. 1982년에는 2위로 점프하는 등 가장 역동적인 성장세를 보인 기업이다. 또 1989년 지금의 삼성물산인 삼성건설이 처음으로 5위권에 진입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보다 큰 틀에서 흐름이 바뀌었다. 건설산업이 단순 시공에서 기획과 개발 단계까지 확대되면서 자금조달력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는 대그룹소속 건설사들의 득세가 두드러지기 시작한 배경이 됐다. 반대로 한양, 삼환기업, 극동건설 등 그 전까지 10위권 내를 지키던 비그룹소속 건설사들은 점차 설 자리가 좁아졌다.

◇혼란의 시기, 워크아웃·법정관리

1990년대에 와서도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삼성물산, 동아건설산업, DL이앤씨 등은 여전히 상위 5위권을 견고하게 형성했다. 그러나 이들의 위기는 1990년대 말 줄줄이 찾아왔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대우건설과 쌍용건설, 동아건설산업을 비롯한 굴지의 대형 건설사들이 무더기로 워크아웃 또는 법정관리 절차를 밟았다. 대우건설의 경우 1999년 8월 대우그룹이 무너지면서 워크아웃에 돌입했으며 이듬해는 기어코 그룹에서 분리되는 고초를 겪었다.


극심한 혼란의 시기를 지나 2000년대, 동아건설산업이 근 40년 만에 10위권에서 밀려났다. 시공능력평가제 도입 이후 줄곧 10위권을 떠나지 않았지만 2000년 8위를 마지막으로 더는 머물 여력이 부족했다.

동아건설산업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설회사 중 하나로 손에 꼽힌다. 1945년 설립돼 동아그룹의 핵심계열사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2001년 파산선고를 받으면서 모그룹과 관계가 끊겼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동아그룹 역시 같은 해 해체됐다. 이후 동아건설산업은 2008년 프라임그룹, 2016년 SM그룹으로 다시 주인이 바뀌면서 경영정상화의 기회를 찾았다.

◇위기 부딪힌 현대건설, 치열한 왕좌 다툼

그러나 2000년대 가장 큰 이슈는 동아건설산업보다 현대건설의 부도와 매각이라고 볼 수있다. 현대건설은 2000년 1차 부도를 맞고 이듬해 워크아웃 돌입과 함께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왔다. 2006년 워크아웃을 졸업했으며 2011년 4월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됐다.

현대건설이 쇠약해진 틈을 타 2000년대 초에는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대우건설이 1위 자리를 두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2004년 현대건설이 시평 도입 이후 처음으로 선두를 놓쳤고 삼성물산이 그 자리를 꿰찼다. 2006년 다시 1위가 대우건설에 넘어갔다가 2009년 현대건설이 재탈환하는 등 왕좌의 변화가 가장 변화무쌍했던 시기다.

포스코건설의 약진 역시 짚고 가야 한다. 포스코그룹 내 엔지니어링과 건설분야를 통합해 1994년 포스코개발로 출범했다. 그 뒤 초고속 성장을 계속하면서 1997년 10위권 진입에 성공했다. 2011년 4위, 2012년 3위까지 순위가 쭉쭉 올랐다. 해외사업 악화로 7위까지 떨어지기도 했으나 올해 다시 4위를 되찾은 상태다.

이밖에 2000년대에는 한화건설과 부영, 계룡건설산업, 타이세이건설 등이 30위권내 진입했다. 다만 일본계인 타이세이건설의 경우 오래 머물지 못했다. 2000년 말 국내시장에 들어와 막대한 자본금을 배경으로 10위권 안팎을 오갔으나 2009년 9월 폐업신고후 철수했다. 타이세이의 퇴장을 끝으로 10대 건설사 중 외국계는 자취를 감췄다.

실제 국내 건설시장에서 외국계 건설사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개방 초기 미국 벡텔 등 세계적인 업체가 건설업 면허를 발급받는 진출 움직임을 보였으나 실제 이뤄진 수주는 없다. 하도급 등 복잡한 네트워크로 이뤄진 국내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데다 입찰을 비롯한 계약·도급 등 일련의 과정이 복잡한 탓으로 여겨진다.


도입 수십년이 지난 2021년 현재 시평 순위를 1962년과 비교해보면 기존 30위권 업체 가운데 9개사만 아직 시평 순위 한 석씩을 지키고 있다. 현대건설(2위)과 DL이앤씨(8위), 극동건설(66위), 삼부토건(67위), 경남기업(75위), 삼환기업(85위), 동아건설산업(93위), SG신성건설(132위), 풍림산업(225위) 등이다. 특히 10대 건설사 위치를 계속 유지한 업체는 현대건설과 DL이앤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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