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11월 01일 07:3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0.02%. 엑손모빌 이사진 교체를 요구한 신생 자산운용사 엔진넘버원이 보유한 지분율이다. 단 0.02% 지분만으로 이사 2명을 갈아치웠다.엔진넘버원은 엑손모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친환경 에너지 개발과 관련한 사업 계획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배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엑손모빌과 같은 정유회사들의 수익성이 악화할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엔진넘버원의 정확한 진단과 분명한 메시지는 여러 연기금, 대형 운용사의 지지로 이어졌다. 캘리포니아 교직원 연금, 뱅가드, SSGA, 블랙록 등이 표에 힘을 실어줬다.
이 사건은 장기 성장을 위한 메시지가 분명하다면 지분율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줬다. 물론 외국 기업이 국내 기업보다는 지배주주 지분율이 높지 않아 가능했던 해프닝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앞으로 이러한 소수 지분을 보유한 국내외 헤지펀드들의 주주행동주이 활발해질 거라는 점이다.
얼마전에도 한 외국계 헤지펀드가 국내 대기업 계열 상장사를 상대로 배당 확대, 이사진 교체 등을 요구하며 주주서한을 발송했다. 해당 회사 지분율이 5% 미만인 탓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엔진넘버원 사례와 마찬가지로 소수 지분일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기업들도 더 이상 이러한 요구를 단순히 주가를 부양하고 자금을 회수해 도망가려는 세력 정도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만일 국민연금이 소수 지분을 보유한 행동주의 전략 펀드의 주장에 동의할 경우 제2의 엑손모빌 사례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국민연금은 내년까지 전체 자금의 절반 이상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련 투자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개별 기업 투자 비중이 지금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대형 연기금인 캘리포니아 교직원 연금이 엔진넘버원의 주주행동 메시지에 공개적인 지지를 선언하면서 대형 운용사들도 하나둘 엔진넘버원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한국에서도 국민연금과 같은 대형 기금이 규모가 작은 운용사나 헤지펀드의 주주제안에 공감한다면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위 위탁운용사들의 의견도 자연스럽게 국민연금을 따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국내 자산운용사, 연기금이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지는 사례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방만한 경영을 일삼는다면 단호하게 반대표를 던질 여지가 커졌다.
다만 주주행동을 제안하는 운용사들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성장에 도움되는 주주관여활동을 펼칠 필요가 있다. 엔진넘버원 역시 장기적인 성장과 동행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엑손모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수십장의 자료를 발표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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