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 왜 미등기 임원을 선택했을까 이사회 중심 경영 판 깨지 않으면서 굵직굵직한 의사결정 참여 가능
조은아 기자공개 2022-02-23 09:14:49
이 기사는 2022년 02월 21일 12:5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텔레콤의 미등기 회장으로 선임된다. 최 회장은 현재 SK㈜에서는 대표이사 회장으로서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는 반면 SK이노베이션과 SK하이닉스에서는 미등기 회장으로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SK텔레콤에서도 미등기 회장에 오르면서 사실상 그룹의 주력 계열사 모두에 발을 담그게 됐다.SK그룹은 21일 최 회장이 SK텔레콤의 미등기 회장직을 맡아 AI(인공지능) 사업과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하는 데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이 SK텔레콤에 적을 두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 회장은 그간 다른 계열사와 달리 SK텔레콤만큼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왔다.
일각에선 최 회장이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조하면서 주력 계열사 경영에 상당 부분 관여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 회장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SK그룹이 최 회장의 SK텔레콤 회장 선임을 알리는 보도자료에 재차 '조력자'를 강조한 이유 역시 이런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보도자료에서 '조력'이라는 단어만 6차례 등장했다. 보수를 받지 않기로 한 점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대체적으로 그룹 총수가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걸 보는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막대한 영향력은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배구조 평정기관에서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살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안 중 하나가 바로 대주주의 책임경영이다. 오너 경영인이 등기 임원에 올라 경영에 책임을 지는 게 바람직한 사례라는 것이다.
최 회장이 이같은 비판의 목소리를 알면서도 미등기 임원으로 복귀한 이유는 뭘까.
우선 현실적으로 등기 임원으로 복귀하려면 주주들의 승인이라는 관문을 거쳐야 한다. 주주총회를 통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잡음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총수 한 명이 여러 회사의 등기 임원으로 한꺼번에 재직하는 데 따른 비판도 있을 수 있다. 국내 재벌 총수들은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면 책임경영을 회피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반대로 여러 계열사의 등기 임원으로 이름을 올리면 문어발식 겸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존 이사회 중심 경영을 깨지 않기 위해 미등기 임원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높다.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SK텔레콤 등에서 이미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이 분리되고 이사회 중심 경영이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스스로 이사회 구성원이 돼 기존 판을 깨기보다는 이사회 바깥에 머물면서도 굵직굵직한 의사결정에는 관여할 수 있는 지금의 방식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이미 SK그룹의 지주사인 SK㈜에서 지배구조 모범을 보이고 있다. 최 회장이 SK그룹에서 등기 임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계열사는 SK㈜가 유일하다.
최 회장은 2016년 SK㈜ 대표이사에 오른 뒤 2019년 초 이사회 의장을 신임 사외이사였던 염재호 고려대 총장에게 넘겼다. 현재까지 SK㈜의 이사회 의장은 염재호 사외이사가 맡고 있다. 최 회장이 대표이사로서 책임경영은 다하고 이사회 의장은 외부인사가 맡아 이사회를 견제하는 방식이다. 지배구조 평정기관이 가장 모범적으로 여기는 지배구조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이 SK텔레콤 회장을 맡게 되면 회사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전방위적인 혁신에 힘이 실릴 것"이라며 "또한 단기 성과를 넘어 중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에 대한 강한 추진력을 확보함으로써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11월 박정호 SK텔레콤 대표이사 부회장이 SK스퀘어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유영상 사장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SK스퀘어로 주요 인력을 내준 데다 대표이사의 직급도 낮아지면서 SK텔레콤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이 SK텔레콤에 적을 두면서 이런 우려를 완전히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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