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03월 11일 07시49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공지능(AI)을 차세대 먹거리로 여긴 SK텔레콤의 행보는 반도체 개발로 이어졌다. 애플, 구글 등 글로벌 인터넷기업이 그랬듯 SK만의 독자적인 AI 기능을 구현하고자 자사에 최적화된 칩을 만들기 위해서다. 자체 AI 반도체 사피온(APEON)을 개발한데 이어 아예 별도법인으로 분사시켰다. SK스퀘어, SK하이닉스가 여기에 지분 투자하면서 SK ICT 연합의 첫 작품이 탄생했다.

사피온 본사는 미국 실리콘밸리로 내정됐다. 미국을 겨냥한 포석이다. 반도체 관련 인프라가 풍부하고 AI 산업이 급성장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AI 반도체는 기존의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와 인공지능 생태계가 융합된 새로운 분야로 2025년까지 글로벌 시장규모가 700억달러(약 86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SK ICT 연합의 첫 공략지로 꼽혔다.

◇SK식 맞춤형 AI 반도체 '사피온' 개발

AI는 복잡한 대규모 연산을 통해 업무를 수행하는 프로세스를 갖고 있어 모델 트레이닝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일반 연산에 비해 많은 양의 컴퓨터 자원과 전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최적 개발한 장치가 아닌 기존 CPU와 GPU로는 폭증하는 AI 수요에 부응하기엔 성능과 전력 사용량 측면에서 비효율적인 면이 있다.

무엇보다도 전력소비가 상당히 큰 데 AI 반도체가 2025년까지 전 세계 전력의 15%를 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대로 두면 AI는 가상자산과 함께 기후온난화의 주범이 될 수도 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탈탄소 경영의 세계화 추세와 맞지 않는 방향이다.


또 기성복 같은 범용칩으로는 자사만의 서비스를 구현하는데 한계가 있다보니 애플, 구글 등 글로벌 IT기업들의 경우 맞춤복 같은 자체 칩 개발에 나섰다. IT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가 고객 니즈를 맞춰도 생산규격이란 게 있는 만큼 맞춤복 수준까지 맞춰줄 순 없다"며 "반도체 개발을 위해 막대한 비용과 많은 인재가 필요하지만 이를 감당한 역량이 있는 기업은 아예 자체 칩을 개발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의 사피온도 비슷한 맥락이다. 2017년부터 4년간의 연구 개발을 통해 2020년 11월 데이터 센터용 AI 반도체 인 사피온 X220을 선보였다. 기존 GPU 대비 딥러닝 연산속도가 1.5배 빠르고 가격은 절반 수준, 전력 사용량은 80%로 줄였다.

◇美팹리스-ICT기업 협력체계 구축 등 경쟁력 확보

SK텔레콤, SK스퀘어, SK하이닉스는 지난 1월 사피온 분사를 결정하고 각각 62.5%, 12.5%, 25% 지분율대로 총 800억원을 투자했다. 법인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세운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주요 산업이 가장 급성장하고 관련 인프라가 풍부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차세대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SK의 접근성도 좋다. AI 반도체는 아직 초기단계 시장이라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SK하이닉스를 비롯, 국내 반도체 산업을 시스템 반도체로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사피온은 미국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AI 반도체 관련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설계 전문기업(팹리스)과 글로벌 ICT 기업과의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등 적극적으로 글로벌 밸류체인에 손을 뻗을 계획다.

SK텔레콤은 5G와 데이터 분야에서 축적한 R&D 역량으로,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으로, SK스퀘어는 AI 반도체 스타트업 투자 등으로 사피온에 힘을 실어줄 예정이다. 이를 위해 1조원 상당의 글로벌 투자자본 조성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