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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매입 매직, 미국엔 애플-한국엔 메리츠지주 [K-행동주의 물결]②팀쿡, 세계 최초 3조달러 꿈의 시총 달성

양정우 기자공개 2022-03-29 08:10:51

[편집자주]

행동주의 투자에 나선 토종 헤지펀드 운용사의 기세가 거세다. 국내 대표 하우스부터 신생 운용사까지 각양각색 접근법으로 저평가된 주가를 개선시킬 묘안을 제시하고 있다. 행동주의라는 푯대는 동일하지만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과 전략도 다양하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주축 전략으로 자리잡은 가운데 기지개를 켜고 있는 'K-행동주의'의 현황을 더벨이 조명해 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3월 25일 15:5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토종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맏형 격인 VIP자산운용은 '자사주 매입(소각)'을 최고의 주주 환원책으로 주창하고 있다. 창출된 현금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자본 배분(capital allocation)의 관점에서 자사주 매입은 단기적 주가 부양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재평가 받는 방안이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는 팀 쿡의 애플이 자사주 매입 마법이 제대로 먹혀든 대표 사례로 꼽힌다. 아이폰으로 애플 신화를 쓴 스티븐 잡스의 후계자인 만큼 부담이 컸으나 오히려 자본 배분의 매직으로 '꿈의 시총' 3조달러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에서는 메리츠금융지주가 배당에서 자사주로 주주 환원 정책을 바꾸면서 저평가를 드라마틱하게 해소했다.

◇'팀 쿡표' 애플, 세계최초 3조달러 돌파…신화 중심부에 자사주 매직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업가치를 드러내는 보편적 지표는 자기자본이익률(Return on Equity, ROE)이다. '당기순이익/평균자기자본' 수치인 ROE가 높을수록 일단 동일한 피어그룹에서 기업가치가 우월하고 비슷한 시가총액의 기업보다 투자 가치가 매력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결국 이 ROE를 지속적으로 높이는 것이 주가 상승의 관건으로 꼽힌다.

ROE를 높이려면 순이익이 늘거나 자기자본이 줄어야 한다.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순이익을 키우는 것은 녹록지 않지만 자기자본은 자발적으로 즉각 줄일 수 있다.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 자본항목(자본금 또는 이익잉여금)이 감소한다. 이 때문에 '자사주 매입→소각' 카드에 초점을 맞춘 시장의 현인과 글로벌 행동주의 투자자가 적지 않다.

가장 성공적 사례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애플은 2011년 스티브 잡스 타계 이후 팀 쿡이 새로운 수장으로 취임했다. 전 세계적으로 애플 매니아층을 양산한 잡스가 전설적 인물로 추앙 받는 만큼 후계자를 향한 비관적 시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팀 쿡은 또 다른 측면에서 최고경영자(CEO)로서 신화를 쌓아가고 있다.

과거 스티브 잡스 시절엔 애플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혁신 제품으로 막대한 현금을 창출했으나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취득에 나서지 않는 스탠스를 고수했다. 결과적으로 현금성 자산이 쌓여가면서 ROE는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팀 쿡은 애플 창사 이래 전무했던 방법으로 주주 정책을 이끌고 있다. 취임 후 약 1년 뒤부터 성장성 둔화, 재무구조 개선, 주주 요구 등의 여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대대적 주주 환원 정책에 돌입했다. 애플이라는 기업의 시장가치가 중대한 분기점을 맞이한 순간이다.


애플은 최초로 분기별 배당을 실시한 동시에 2013년부터 공격적으로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실시했다. 주가가 약세를 보였던 2014년, 2018~2020년엔 이런 하락 장세를 활용해 추가적으로 자사주 취득에 나섰다. 저금리 여건을 토대로 차입금까지 동원해 주주 환원 정책을 시행했을 정도다. 지난해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한 규모만 약 855억달러(102조원)에 이르고 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연평균 5.3%(발행주식수 대비)의 자사주를 소각한 결과는 드라마틱하다. 애플은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3조달러(약 3500조원)을 돌파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2012년~2021년까지 9년 간 애플의 순이익은 126% 증가한 반면 자사주 매입 마법에 따라 주가는 820%나 치솟은 것으로 집계됐다.

백만달러(좌), 달러(우)

◇메리츠지주, 주주 정책 전환 '묘수'…ROE 부양 신호, 배당 확대보다 주효

국내 기업 가운데 자사주 매입 효과를 누린 건 메리츠금융지주가 대표적이다. 오랜 기간 메리츠금융지주는 50~90% 수준의 높은 배당 성향을 유지해 왔다. 배당금 규모도 지속적을 늘려왔으나 오히려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의 저평가 상황은 심화돼 왔다.

2020년엔 획기적으로 배당금을 인상해 주가가 95% 올랐으나 추가적인 주가 상승은 오히려 막히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특정된 예상 배당수익률을 기점으로 주가가 오르내리는 장세가 지속될 뿐이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배당 확대에서 자사주 매입으로 주주 환원 정책을 선회하는 결단을 내린다. 지난해 5월 메리츠금융지주와 자회사는 연간 별도 배당성향을 10%로 고정하는 정책을 발표한다. 2020년 별도 배당성향 90%에서 9분의 1 수준으로 대폭 하향 조정하는 강수였다.


그 대신 3차례에 걸쳐 각각 500억원씩 총 1500억원 규모로 자사주를 매입하는 액션을 취했다. 자사주 취득이 완료된 뒤 1000억원 어치의 자사주를 추가 매입하는 수순을 밟았다. 당초 배당성향을 낮추는 결정을 발표하자 일부 증권사의 매도 의견과 함께 주가가 하락하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주가는 150% 이상 급등하는 성과를 냈다.

주목할 대목은 메리츠금융지주의 자사주 매입 이후 일평균 거래대금이 600% 이상 늘어난 점이다. 자사주 취득 후 소각 수순에 유통주식수가 감소했으나 역설적으로 거래대금과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저평가 개선과 주가 부양의 키인 수급 측면에서 자사주 매입 카드가 전향적 변화를 일으킨 셈이다.

WM업계 관계자는 "단기적 주가 하락에 대응하고자 간헐적으로 자사주 매입에 나서는 건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며 "애플처럼 자사주 매입을 확고한 주주 정책으로 밀고 나간다는 신뢰를 얻거나 파격적 규모로 확실한 시그널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선두인 VIP운용은 자사주 매입 정책을 끊임없이 이식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소에 앞장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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