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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슈퍼 사외이사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2-06-15 09:00:50

이 기사는 2022년 06월 15일 09: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사외이사는 전문성과 독립성을 다 가져야 한다. 그런데 전문성이라 함은 자신의 직업이나 경험에서 나오는 전문성이라기 보다는 회사의 사업을 이해하고 그를 지원할 만한 전문성도 의미한다. 개인적인 전문성은 회사의 사업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기초에 불과하다. 제한된 시간과 인센티브에도 불구하고 사외이사가 회사의 사업에 전문성을 가질 정도로 익숙해 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문적인 안목이 있다해도 막상 특정 회사의 사업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않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료와 정보다. 그런데 자료와 정보는 문서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서 입수하기 보다는 사람을 통해 습득해야 한다. 회사를 잘 알기 위해서는 회사 사람들과 가깝고 소통이 잘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영진과의 교류는 경영진 감독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협력과 지원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여기서 충돌이 생긴다. 회사 사람을 잘 안다는 것은 회사의 사업에 관한 대화를 통해서뿐 아니라 전반적인 교류와 그에 내장되어 있는 정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만큼 잘 안다는 것이다. 즉, 개인적인 교류가 관건이다. 그러면 독립성이 상실되기 쉽다. 가까운 사람에게 회사 일에 관해 일백퍼센트 사무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는 없다. 결국 사외이사의 전문성과 독립성은 상치된다.

사람들과 가깝지 않아도 고도의 전문성을 발휘해서 회사를 잘 이해할 방법이 있기는 하다. 회사 사업을 잘 이해하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개별 사외이사가 비용이 수반되는 그런 방법을 쓸 수는 없다. 그런데 사외이사들 중에서 그것이 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특정 전문가 그룹에 의해 이사회에 진출한 사외이사다. 더구나 그 전문가 그룹은 회사의 주요주주여서 회사의 사업을 들여다 볼 인센티브가 크다. 바로 행동주의 헤지펀드와 헤지펀드가 이사회에 진출시킨 사외이사다. 미국에서는 이들을 ‘슈퍼디렉터’(Super Director)라고 부른다(Kastiel & Nili).

그러나 슈퍼디렉터는 이사의 의무와 책임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 사외이사는 선임 배경에 무관하게 일단 선임되면 특정 주주가 아닌 회사의 이익을 위해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회사의 이익이라 함은 ESG시대인 지금 전체 주주와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이다.

사실 슈퍼디렉터가 아닌 사외이사가 자신을 추천해 준 사람이나 단체를 반드시 이익 차원이 아니더라도 정보제공을 포함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다. 국내에서 노동조합이 노조 임원이나 노조가 추천하는 사외이사를 이사회에 진출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정보와 단체의 이익 때문이다.

사외이사의 기원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투자은행의 선구자들은 남북전쟁 이후 대규모 철도 건설이 시작되자 철도회사가 발행하는 회사채를 유럽의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철도사업은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회사채로는 한계가 있어 주식을 통한 자본 투자자들을 유치하게 되었다. 수익이 큰 사업이었지만 위험했다. 당시 미국 자본시장은 사기와 범죄가 횡행하는 위험한 곳이었고 법원과 의회도 그다지 믿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투자은행들은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임원들을 투자대상 회사 이사회에 파견해서 회사 경영에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서 특정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했다.

경영진 추천 사외이사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의 한 실증연구에 따르면 대다수 회사에서 신임 사외이사후보는 현직 이사들을 통해 발굴된다. 2003~2014년의 기간 동안 미국에서 선임된 9801인의 이사들 중 69%가 이사회 현 구성원들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Cai et al.). 국내에서는 오너나 경영진과의 사회적 인연으로 사외이사후보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 경우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사안에서 추천인과 반대편에 설 수 있을까. 아마도 이사회 밖에서 절충에 노력하거나 최소한 기권이나 불참을 선택할 것이다.

슈퍼디렉터는 경영진과의 긴장 관계 때문에 껄끄럽기는 해도 가장 독립적인 동시에 회사측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도움이 되는 이사들이다. 경영진과 대립해가면서까지 회사의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펀드 소속인 경우 풀타임 사외이사이기도 하다. 유일한 문제가 특정 주주로부터의 독립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지만 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든 사외이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로 본다면 큰 결함은 아니다.

서구에서 ‘이사회 3.0’이 논의되는 취지는 모든 사외이사들이 슈퍼디렉터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다만 슈퍼디렉터는 단기 재무적 이익을 추구하다가 목표가 달성되거나 포기하게 되면 임기에 관계없이 홀연히 떠나버릴 위험도 있는 특수한 사외이사임만 잊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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