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 변천사]'고객가치' 강조하는 구광모 LG 회장, 그 시작은…고(故) 구인회 회장부터 이어져온 경영이념
김위수 기자공개 2022-06-13 07:08:34
[편집자주]
시대가 달라지면 기업가정신도 달라져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인구절벽 등 전에 없던 새로운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기업과 사회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기업들이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해결책을 함께 모색할 것. 이것이 바로 '신기업가정신'을 선포한 이유다. 더벨은 신기업가정신을 위해 서로 손을 맞잡은 대기업의 기업가정신을 살펴보고 미래에 한국 재계가 걸어갈 길을 모색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6월 10일 14:3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사진) 취임 후 발표된 신년사에서 매년 빠지지 않는 키워드는 '고객'이다. 매년 초 발표되는 총수의 신년사는 그룹이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4년 연속 신년사 주요 키워드로 고객을 제시한 데에서 고객 중심 경영을 실현하겠다는 구광모 회장의 강한 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고객 중심 경영은 고(故) 구인회 회장의 경영이념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구인회 회장은 아무도 하지 않는 일로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제품을 제공할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철학으로 사업을 키웠다. 필요한 물품을 공급해 국민 생활에 기여하려는 마음가짐이 밑바탕에 있었다. '페인 포인트(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에 집중해 고객 가치를 창출하자는 구광모 회장의 구상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고객이 원하는 바를 고민하라"
구인회 회장이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한 시점은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가 설립된 1947년보다 더 앞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1년 진주에서 문을 연 '구인회상점'이 첫 시작이다. 구인회 회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보다 사람들의 취향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고 원하는 상품을 내놓기 위해 노력했다.
LG그룹이 내세우는 고객중심 경영의 시작인 셈이다. 그렇게 구인회 회장은 사람들이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기 위해 기술도 시설도 전혀 없는 우리나라에서 '최초' 제품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화장품 '럭키크림', 플라스틱 빗·칫솔, 라디오·전화기·세탁기 등 각종 제품의 국산화를 시도하고 최초의 국산 제품을 내놓으며 우리나라 산업화의 초석을 닦았다. 실제 구인회 회장은 "남이 안 하는 일 가운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되, 어디까지나 국민경제에 유익하고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인회 회장의 장남인 고(故) 구자경 회장(사진)은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기업공개가 실시된 1970년대는 기업공개가 기업을 팔아넘기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시기였다. 임원들이 나서 기업공개를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공개가 선진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추진했다. 기업공개를 통해 투명경영을 실천할 수 있었고, 고객들에게 신뢰 향상으로 이어졌다. 1990년에 접어들어서는 고객을 위한 경영을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라는 개념으로 재정립했다. 당시 한국에서 고객가치 경영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구자경 회장은 고객가치 경영을 통해 기업 경영의 축을 공급자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직접 임직원을 만나 경영 혁신의 필요성을 알리고 이해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또 금성사(현 LG전자) 서비스센터를 찾아 불편사항이나 의견을 경청했다. 매년 4월을 '고객의 달'로 선포해 한 달 동안 각 사마다 다양한 고객의 달 행사를 실시하게 하기도 했다.
고(故) 구본무 회장은 'LG웨이'를 선포하며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를 가장 근본적인 경영철학으로 뒀다. LG웨이는 LG인의 모든 행동은 항상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느냐'에 둬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며, 자기주도성을 가지고 창의력을 발휘하며 일할 때 진정한 의미의 고객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바탕으로 구본무 회장은 강도 높은 경영혁신과 신규 사업개발에 나서 '글로벌 LG'의 기틀을 만들었다.
◇고객 가치 창출에 집중, ESG까지 확대
구광모 회장도 고객중심 경영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올해 신년사를 통해서는 '가치 있는 고객 경험'을 키워드로 내세우며 고객중심 경영을 한층 강화하는 모습이다. 고객을 제품 구매자로 한정 짓지 않고 사용자로 인식해 제품을 사용하는 모든 단계의 경험에서 감동을 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애플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자체적인 생태계를 구축해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 고객을 '락인' 시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애플은 여러 논란 속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기반으로 전세계 시총 1위 기업의 자리를 지키는 중이다. 구광모 회장의 고객경영은 LG그룹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입장으로,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성장을 이어갈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위해서 구광모 회장은 고객과 긴밀히 소통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경험을 위해 계속해서 제품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고객가치 혁신을 독려하기 위해 LG그룹 차원에서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고객가치 관점에서 혁신적인 제품·기술을 개발하거나 사업 성과를 낸 사례를 선정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상을 수여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일부 계열사들은 고객을 연구하거나 고객사의 불편사항을 해결하는 조직을 별도로 두고 있다. 구광모 회장 주재로 진행 중인 올해 상반기 전략보고회에서도 고객가치에 기반한 미래준비를 위해 실행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주요 논의 주제로 다뤄진다.
고객가치 창출에 집중하는 LG그룹은 그 범위를 사회로 확대,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에는 제품을 생산하는 자체가 고객가치로 이어졌다면, 최근에는 제품의 전 생애주기에서 개인은 물론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제품이 '가치 소비' 제품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LG그룹은 지난해 계열사 이사회에 ESG위원회를 설립한 상태다. 2050년까지 국내외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RE100' 가입도 논의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RE100 가입을 선언했고, 다른 계열사도 RE100에 대한 검토를 진행 중으로 알려졌다. 그룹의 ESG 경영 목표를 설정하고 성과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LG ESG 인덱스'를 개발 중이며, ESG 인덱스를 성과평가(KPI)에 연계하는 방안토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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