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06월 15일 08시20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본가 근처 시장에는 오랜 떡집이 하나 있다. 꽤 인기가 좋아 명절에는 떡과 만두를 사려는 손님들로 인산인해다. 이 풍경이 깨진 것은 근방에 또 다른 떡집이 생기면서부터다. 인근에 시장 떡집 한 곳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독과점이 좋다고 할 수 없으니 나쁜 일은 아니다.문제는 떡집의 가격인하였다. 동네 떡집들은 암묵적으로 떡 1팩에 2000원, 조금 더 손이 가는 떡은 3000원에 팔고 있었는데 그 떡집은 '2팩에 3000원'이라는 파격조건을 걸었다. 자연스레 주변 가게에 발길이 끊겼다. 인근 떡집의 떡 가격이 2팩에 3000원으로 통일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출혈경쟁이다. 단가 맞추기가 어려우니 공장제 떡도 은근슬쩍 가판대에 올랐다. 25년전 기억에도 있으니 그 이상은 운영됐을 시장 떡집도 결국 과일가게로 변했다. 파격조건을 걸었던 가게도 속앓이는 마찬가지였던지 얼마 뒤부터는 가격이 슬금슬금 올랐다. 동네 떡집이 하나둘 문을 닫거나 맛이 영 없어진 뒤였다.
최근 펀드 사무관리업계 수수료 다툼은 떡집의 지나친 경쟁과 몰락을 연상케한다. 업계는 3년째 수수료 출혈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 삼성·NH아문디운용의 사무관리사 선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신한아이타스가 던진 수수료 인상 움직임이 오히려 인하의 단초가 됐다. 자산운용사들은 인상을 받아들이는 대신 새 사무관리사를 찾았고 결과적으로 업체들의 가격 인하경쟁으로 이어졌다.
이 틈에 한 사무관리사가 자산운용사에게 제안했던 수수료가 교본처럼 굳어졌다고 관계자들은 토로했다. 2팩에 3000원 수준의 파격조건이었다. 사무관리업계가 받는 수수료는 1bp 가량이다. 경쟁에 불이 붙으면 부가 서비스가 더해지기 시작했다. 실질 수수료가 1bp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자산운용사들도 수수료 인하를 부추겼다. 가격이 최우선 평가요소다. 저렴한 곳을 찾는 것을 지적하긴 어렵지만 사무관리의 고도화보다 가격에 집중하고 있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사무관리업계가 받는 돈만큼만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격무에 시달리지만 주요 수익원의 수수료가 워낙 박하다보니 금융권 대비 급여는 현저히 낮다. 당연히 사무관리사 인력은 어딜가나 태부족이다. 악순환의 반복인 셈이다.
동네 가게의 알력다툼과 한 업계를 비교하자면 비약이지만 적어도 출혈경쟁이 상생보다 몰락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사무관리업계 관계자는 "결국 다들 망하는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씁쓸해했다.
'떡집이 망했다'는 문장은 짧지만 망하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했다. 사무관리업계가 그 과정을 똑같이 밟고 있는 것은 아닐까. 떡집에 딸린 식구는 한 가족이었지만 사무관리업계는 그렇지 않다. 어디 식구뿐이랴, 수수료를 끌어내린 자산운용사들도 사무관리사와 상생 없이는 밥을 먹지 못한다. 꼭 저렴한 떡만이 좋은 것일까. 떡집이 하나둘 문을 닫고 옛맛을 잃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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