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09월 02일 07:4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퉤! 이거 중국산 배춥니다."2016년 여름의 끝무렵. 강원도 태백에서 고랭지 배추 농사만 30년째였던 김동규(가명)씨는 식당 밑반찬이 나오자 혀를 차며 느닷없이 김치가 담긴 그릇에 침을 뱉고 물까지 부었다. 함께 식사를 하던 나로선 김치에 젓가락을 대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뜨악한 식사 후 고랭지 배추 농사 작황을 보러 그의 배추밭을 방문했다. 당시 봄부터 극심한 가뭄과 이상 고온현상이 겹친 터라 배추가 귀했다. 다만 해발 1200미터에 있는 약 800평의 큰 밭, 고도가 약 50미터 정도 낮은 곳에 약 600평의 작은 밭을 가진 김 씨의 배추 농사는 풍작이었다. 곳곳에 어린아이 몸통 만한 배추가 지천이었다.
현지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 주간 기사를 마감했다. 당시 주요 언론에선 배추대란으로 빚어질 추석 차례상 물가 대란, 김장 비상사태를 노래하고 있었다. 문득 김 씨의 남은 배추밭은 수확을 잘 끝냈나 싶어 연락했다.
뜻밖에도 800평의 밭은 수확을 포기하고 갈아엎었다고 한다. 그는 버무려진 배추김치를 보고도 국산 여부를 가늠할 만큼 배추를 잘 안다. 더불어 작황에 구애받지 않는 탁월한 농사기술이 있었는데도 수확을 접었다. 봄 작황이 좋지 않자 특수를 노리고 너나할 것 없이 대거 여름 배추 농사에 뛰어들어 배추 시장가격이 무너진 결과였다.
다만 김 씨는 노련한 농사꾼이었다. 배추농사 외에 유통업 경험이 있던 그는 만일을 대비해 작은 밭은 밭떼기(포전거래)를 일찌감치 맺어뒀다. 유통업자들은 김씨의 배추가 다 자라기도 전, 노란 속이 들어찬 정도인 결구력만 보고 거래를 체결했다. 배춧값이 폭락한 중에 그가 최악의 손실을 피한 배경이었다.
바이오텍의 신약 개발은 농사와 일면 닮았다. 다만 농사는 해마다, 혹은 앞서 배추처럼 계절마다 결실이라도 얻는다. 신약은 더 긴 R&D 호흡을 갖고 막대한 돈을 쏟아야 소출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신약 영업과 마케팅이라는 또 다른 산도 넘어야 매출이 난다.
호황을 등에 업고 들불처럼 일어선 국내 바이오텍들의 신약개발 전략은 어떠한가. 이미 설립 후 펀딩을 받은 바이오벤처만 4000여개. 이곳 중에 사업 전략을 30년 농사꾼인 김 씨의 배추 재배 노하우보다 면밀하게 세운 곳은 몇이나 될까.
아직까지는 R&D 바이오텍들이 훌륭한 기술을 가진 창업자(혹은 교수 출신 대표)의 이름값을 사업화 계획보다 앞세우는 게 펀딩 트렌드로 보인다. 일부 대표들 사이선 회사와 재직 중인 연구실을 동일시하는 듯한 분위기도 적지 않다.
바이오텍은 기술이 다일 것 같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다만 투심 악화의 끝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전략을 고수하다 펀딩난, 즉 무서운 여름을 경험한 곳이 적지 않다. 그런데 다시금 바이오텍의 적자생존을 요구할 혹독한 겨울은 벌써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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