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10월 17일 09: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돈을 빌려주고 원금과 이자를 받는 사업은 대단히 위험한 사업이다. 전적으로 남의 뜻과 건강과 행운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남으로부터 돈을 빌려 뭔가 급한 불을 끄거나 생활을 하거나 그 돈을 활용해서 돈을 벌거나 하면서도 이상하게도 갚고 싶지 않아한다. 독촉하면? 갑자기 안 좋은 사람이 된다. 왜 돈을 제때 갚지 않느냐고 화라도 내게 되면? 슬슬 적개심이 생긴다. 채무자가 채권자를 폭행하는 일도 있다. 친구한테 돈을 빌려주면 돈도 잃고 친구도 잃는다는 말이 괜히 생긴게 아니다.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으면 돈을 빌려서 갚지 말라는 서양의 속담(?)도 있다.채권자가 만일 사망한다면? 얼마나 많은 채무자가 유족과 상속인을 열심히 찾아내서 돈을 갚을까? 한 술 더 떠서 프랑스 왕 필리프4세는 교황과 손잡고 자신의 채권자인 템플기사들을 다 죽여 버렸다. 1312년이다. 돈을 갚기 싫어서 아예 채권자를 없애버린 것이다.
세상에는 채권자보다 채무자가 훨씬 많다. 채무자는 대개 경제적 약자로 여겨진다. 그래서 채권자는 정치적으로도 항상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있는 사람이 너무한다”는 말도 생겼다. 특히 중세시대에는 교회가 이자를 금지했고 유대인들과 같은 멸시받는 소수민족만 돈장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채무자가 오히려 채권자를 업신여겼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돈을 빌려주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원금과 이자를 받는 방법을 잘 생각해야 한다. 우선 담보물이 있다. 담보물은 정치적으로는 인질과 같은 것이다. 저쪽 나라 왕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 자녀들을 자기 나라에 데려다 놓으면 감히 평화협정을 깨지 못한다. 채무자가 귀하게 여기는 재산(주로 주식이다)을 담보로 받아두면 채무변제가 확실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돈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생겨 못 갚게 되기도 하므로 담보가 완전한 대비책은 아니다. 그리고 담보물은 제3자에게 처분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인적 담보인 보증은 또 다른 누군가의 능력에 의존하게 되는 한계가 있다. 채권 액수를 다 채우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돈장사에게 돈이 떼이는 일은 어느 정도 피할 수가 없다. 돈을 빌려주는 사업에서는 일정한 부분을 떼인다고 가정하고 사업을 해야한다. 여기서 두 가지 아이디어가 가능하다. 첫째, 일부는 어차피 떼일 것이니 잘 갚는 사람에게 이자를 높여 받는 것이다. 즉 한쪽에서 난 손해를 다른 쪽에서 메꾼다. 그런데 이 방법은 위험하다. 이자를 무한정 높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돈을 잘 갚는 사람이 알게 되면 거래가 끊어진다. 사실 성실하게 원금과 이자를 갚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불량한 사람들에게 그냥 돈을 주는 셈이다. 둘째, 채무불이행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아예 이자를 전반적으로 낮게 물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번째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 이자에서 비용을 뺀 것이 내 수익인데, 수익이 낮아져서 사업이 무사히 계속 갈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샤일록(Shylock)은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할 위험을 이자를 아주 높게 하는 방법으로 헷지했다. 그리고 잔인한 방법으로 채권을 회수했다. 고리라는 것은 사회악으로 여겨지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없어지지 않는다. 멸시당하던 샤일록이 계속 장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리대가 신용이 나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금융이기 때문이다. 현대에도 미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에서 수많은 가구가 불법 사금융에 의존하고 있고 빌린 돈의 몇 배를 갚아야 하는 처지에 있다. 고리대금업자는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을 위험이 크기 때문에 고리를 물릴 수밖에 없다. 즉 위에서 든 첫 번째 방법을 택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가 살지 못한다.
다른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이자를 높게 하지 않고도 수익을 내는 방법? 있다. 사업을 크게 하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면 이자를 높이지 않고도 수익이 생기며, 이자가 높지 않기 때문에 떼일 염려도 적어서 사업이 지속가능해진다. 악질적인 채권회수나 ‘바사니오의 채무불이행 시, 보증인 안토니오의 살 한파운드’같은 비윤리적인 담보도 불필요해진다. 바로 이것이 금융기관이 탄생한 배경이고 금융기관들이 점점 더 대형으로 성장했고 아직도 그렇게 하려는 배경과 이유다. 니얼 퍼거슨 교수가 말하듯이 악덕 고리대금업자와 존경받는 은행가의 차이는 결국 사업 규모의 차이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발달은 도덕적 해이도 동반했다. 친구한테 빌린 돈, 무서운 고리대금업자에게 빌린 돈은 어떻게든 갚으려 노력한다. 추심도 무섭다. 그런데 많은 사람의 돈을 대규모로 관리하는 간접적인 채권자인 금융‘기관’은 그보다는 무섭지 않다. 종종 일어나는 집단적 채무탕감도 여기에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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