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10월 04일 09: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회사 경영진이 첨단 신기술을 흡수하기 위해 M&A를 결정한다. 그런데 회사가 대상회사 지분의 100%를 인수하지 않고 80%만 인수한다. 나머지 20%는 회사 오너가 직접 개인적으로 인수한다. 그러자 시민단체가 회사가 100% 인수했어야지 80%만 인수하고 20%는 오너의 개인 이익이 될 수 있게 했는지 따진다. 즉 회사와 소수주주들이 20%를 놓치게 되고 오너가 좋은 사업기회를 편취했다는 것이다.상법은(제398조에 제3항) 오너가 회사기회를 유용하는 것을 규제한다. 지배력과 정보를 개인적인 이익으로 돌리지 말라는 취지다. 그런데 오너가 자신도 위험을 부담하면서 회사와 공동으로 동시에 투자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할지는 의문이다. 상법이 규제하려는 기회는 이익이 실현된 단계의 기회로 보아야 한다.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는 투자를 그에 해당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사실 미국 회사법에서 수입한 회사기회란 개념은 일관되지 않고 예측력도 없는 애매한 개념이다. 이를 상법에 도입한 것은 파격이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초석인 계약자유의 원칙이 다양한 경로로 잠식되고 있는 현상도 반갑지 않다.
정작 회사 소수주주들의 입장은 어떨까. 주주들은 잘 될지 안될지 모르는 단계에서 오너가 개인적인 위험을 안고 같이 들어오면 일단 든든하다. 오너가 회사는 물론이고 자신의 직접적 이해관계 때문에 사업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많이 가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오너가 들어왔다는 사실은 이 사업에 관련된 회사 임직원들을 긴장시키는 효과가 있다. 투자 대상 회사의 거래처들도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제3의 외부 투자자가 있는 경우 그 투자자가 마찬가지 이유에서 오너의 참여를 요구할 수도 있다.
그리고 회사가 하는 투자에 오너가 굳이 나서서 “내 돈도 같이 넣었다”고 말할 때는 자신감, 관심, 책임감, 세상에서 미래지향적이라고 평가하는 해당 사업에 참여하기로 한 개인적인 긍지와 자부심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다. 그러나 언제나 결과로 책임이 논해진다. 수년이 지나 투자가 성공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바로 회사기회 유용이 거론된다. 결과가 나쁘면 아무도 오너가 본 손해를 말하지 않는다. 부자가 본 손해는 누구도 개의치 않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이사회는 이런 상황에서 역할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구다. 사외이사들로만 개최한 이사회가 M&A 규모에 관계없이 공동투자 여부에 대해 판단을 내리면 된다. 이사회는 공동투자가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따져본다. 앞에서 말한 긍정, 부정 양면이 비교 검토될 것이다. 그리고 결정을 내린다.
상법도 회사기회라고 볼 사안을 이사회의 3분의 2 결의로 승인할 수 있게 한다. 이사들의 결정에는 물론 법률적 책임이 따른다. 이사회가 보기에 회사에 꼭 필요한 투자지만 오너 참여 없이는 동력과 신용이 부족해서 성공 가능성이 분명치 않으면 오너의 참여를 환영함과 동시에 오히려 참여 강도를 높여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사회가 애초에 별 생각 없는 오너를 끌어 들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사외이사들이 문제를 다루는 기회를 가지게 되고 중립적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거침과 동시에 모든 것이 기록으로 상세히 남는다. 이사회가 결국에는 오너의 이익을 배려하는 결정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이사회의 양식과 수준에 관한 전혀 별개의 문제다. 예단은 금물이다.
이사회의 관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한 차이가 있다. 모든 것이 투명해진다. 시장에도 공시된다. “햇빛은 가장 좋은 살균제이고, 가로등은 가장 좋은 방범이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바뀌고 기억은 흐려져서 결과만 눈에 보이고 결정 당시의 사정은 잊혀지기 마련이지만 기록이 다 남아 있으면 다르다. 투명하고 기록으로 남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사들의 행동을 좌우한다.
회사와 오너의 공동 M&A 문제에 이사회 요소를 넣어서 외부의 판단 기준으로 삼기로 한다면 우리 기업들의 지배구조에서 이사회가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도 높아질 것이다. 문서주의를 강화한 이사회제도에 기대가 커지면 이사회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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