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팹리스, 미래를 묻다]"투자 만큼 중요한 엑시트, M&A 활성화에 답 있다"②팹리스협회 이서규 회장이 말하는 '창업부터 M&A까지'
김혜란 기자공개 2022-10-06 11:24:36
[편집자주]
2000년대 초반, 한국 자본시장에 팹리스 투자 붐이 일었다. 200여 곳의 유망주들이 스타팹리스를 꿈꿨다. 그러나 해외 진출에 실패하며 줄줄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팹리스 불모지'로 남았다. 20년이 흐른 지금, 다시 팹리스에 돈이 몰리고 있다. 과거엔 승부처가 모바일 칩에 몰려 있었다면 지금은 서버 등에 들어가는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치열하다. '제2의 엔비디아', '제2의 퀄컴'을 꿈꾸며 도전에 나선 국내 팹리스들을 차례로 만나본다.
이 기사는 2022년 10월 04일 14: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벤처·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가 성장하기 위해선 외부 투자 유치가 필수적이다. 또 투자금을 받는 것 만큼이나 엑시트(투자금 회수) 플랜을 잘 짜는 게 중요하다. 창업과 성장, 회수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재투자가 활발해지고, 규모의 경제를 갖춘 팹리스가 늘어나 전체 생태계가 건강해진다.이서규 한국팹리스협회 회장(픽셀플러스 대표이사)도 최근 팹리스에 돈이 몰리는 현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인수·합병(M&A)으로 엑시트하는 사례가 많아져야 팹리스 생태계가 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민간 투자자들의 엑시트 방법으로) 한국에선 기업공개(IPO)가 대부분인 반면, 미국은 M&A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팹리스 스타트업도 M&A를 할 수 있는 근간이 될 신기술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며 "그 다음 다른 큰 기업이 인수하든, 팹리스끼리 합병하든 M&A가 활발해져야 하고, 이를 통해 개별 회사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팹리스 스타트업, IPO만 아니라 M&A도 중요한 성장 수단
최근 몇 년간 벤처캐피털(VC), 전략적 투자자(SI) 등 민간 자금이 팹리스에 몰리는 경향은 뚜렷하게 보인다. 중견 픽셀플러스부터 스타트업 리벨리온과 오픈엣지테크놀로지, 스카이칩스, 모빌린트, 딥엑스 모두 최근 몇 년 새 각각 수백억원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민간 투자가 활성화하는 건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팹리스 육성이 국가적 과제가 된 만큼, 엑시트를 통해 생태계를 키울 수 있는 방안도 정부와 민간이 촘촘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회장은 "꼭 IPO까지 안 가더라도 M&A를 통해 중간에 엑시트할 수 있는데, 한국에선 꼭 IPO를 가야 안정적으로 엑시트가 가능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반면 해외에선 창업한 뒤 양산까지 가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라 상용화할 만한 기술과 IP(지적재산권)를 확보했을 때 M&A를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팹리스 스타트업이 가진 설계 기술을 접목했을 때 시너지 창출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인수를 추진할 수 있다. 매도자인 창업자는 매각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고, 이렇게 확보한 자금으로 재투자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국내 기업이 팹리스를 인수하는 사례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대기업의 경우 M&A보단 직접 기술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팹리스 M&A 시장이 활성화해 있지 않다 보니 민간 투자를 유치할 때도 양산 전후 IPO를 엑시트로 약속하는 경우가 많다.
팹리스 간 M&A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유효한 전략이다. 팹리스협회가 정부에 요청하는 것도 모태펀드 등을 활용해서라도 팹리스 간 M&A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래야 개별 팹리스의 규모가 커질 수 있다. 영세한 팹리스의 경우 수십명의 인원이 정부 지원 과제를 받아 수행하는 식으로 경영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러면 글로벌 기업으로 클 기회를 잃게 된다. 원천 기술을 확보했더라도 규모의 경제가 안 되다 보니 결실을 맺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마침 정책자금을 굴리는 한국벤처투자에 최근 반도체 전문가로 손꼽히는 유웅환 전 청와대 인수위원회 위원이 신임 대표로 선임됐다. 유 신임대표 측 관계자는 "반도체 팹리스, 소재·부품·장비 업체 간 투자 활성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의 입법적 지원도 중요하다. M&A를 위한 대규모 자금조달에 수반되는 대주주 지분율 하락을 막고 경영권을 보장하기 위한 차등의결권 도입 등이 필요하다는 게 협회의 주장이다.
◇팹리스-세트 협의체 필요하다
반도체는 전자, 자동차 기업 등이 만드는 완성품(세트)에 들어가는 부품이다. 팹리스와 세트 기업 간 긴밀한 협력이 중요한 이유다. 단순히 삼성전자나 LG전자뿐 아니라 자동차, 바이오, 로봇 등 반도체와 깊은 연관이 있는 거의 모든 산업 분야와 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다. 팹리스들이 반도체가 필요한 이들 산업과 연계해 공동개발 체제를 구축하고, 나아가 팹리스가 반도체를 공급하면 실제로 제품에 장착되도록 긴밀한 고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 회장은 "한국자율주행산업협회와 팹리스산업 협회의 기술 교류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출범한 자율주행산업협회는 조성환 현대모비스 대표이사 사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데, 자울주행관련 기술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여러 기관과 함께 소통하며, 사업 방향을 함께 모색해나가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단체다.
자울주행산업협회 입장에서도 자국 팹리스와 긴밀하게 협력해 세계 최초의 반도체 제품을 만들고, 이를 통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게 중요하다. 팹리스협회와의 협력이 윈윈할 수 있는 모범사례가 될 수 있다. 자율주행산업협회에는 픽셀플러스, 텔레칩스 등 팹리스도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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