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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포트폴리오 리포트]미래차를 대하는 정의선 방식 '창업보다 M&A'선대 회장과 다른 전략, CFO 지위 향상·출자 확대...신규출자 1조원 시대

양도웅 기자공개 2022-11-14 11:43:55

[편집자주]

이제 투자를 빼놓고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을 말할 수 없게 됐다. 실제 대기업 다수의 CFO가 전략 수립과 투자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CFO가 기업가치를 수치로 측정하는 업무를 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상할 게 없다. 더벨이 CFO의 또 다른 성과지표로 떠오른 투자 포트폴리오 현황과 변화를 기업별로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11월 07일 16:25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업을 인수하는 건 남의 불행을 발판 삼아 이득을 취하는 것 같아 싫다. 어떤 업종을 해보고 싶으면 내가 창업을 하면 된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생전에 밝힌 인수합병(M&A)에 대한 견해다. 그는 실제로 M&A를 비롯한 지분투자 등 다른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걸 기질적으로 좋아하지 않았다. 현재 지분투자를 활용한 인오가닉 성장 전략을 펼치지 않는 기업이 없다시피 한 점을 고려하면 큰 차이다.

지금 현대가(家)에서 가장 큰 기업이자 현대그룹 뿌리인 현대자동차도 1946년 정 명예회장이 직접 설립했다. 1999년 기아 인수가 눈에 띄지만, 당시 개인 기준으로 현대차 1대주주인 동생 고 정세영 회장과의 지분 정리 등의 이유가 한몫했다. 특이 사례이지 투자 철학이 변했기 때문은 아니다.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도 아버지와 투자 철학을 공유했다. 현대건설 인수, 옛 한보철강 당진제철소 인수 등 굵직한 투자건이 있지만 신사업 진출 목적 등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특히 현대건설 인수는 정 명예회장에겐 장자로서의 명예를 지키는, 그리고 현대차엔 현대가의 적통이라는 점을 대내외에 알리는 의미의 '과업(課業)'이었다.

(출처=현대자동차 사업보고서)

2세까지 이어진 이러한 투자 철학은 3세인 정의선 현대차 회장 시대에 들어 크게 변화했다. 정확하게는 정 회장이 사실상 현대차를 포함한 그룹의 리더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받는 2018년 9월 수석부회장 선임 이후부터 달라졌다. 현대차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미래 모빌리티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출자했다.

이는 정 회장이 자율주행과 모빌리티 플랫폼 등 미래 차 경쟁력을 내부에서 키우기보다는 지분투자와 M&A로 키우는 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을 보유하고 싶을 때는 지분투자, 더 빠르게 보유하고 싶을 때는 아예 인수하는 방식을 택한다"며 "니즈가 있는 기술의 중요도가 어느 정도인지, 내부에서 확보할 때 기간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지분투자할지, 인수할지 결정한다"고 전했다.

더불어 선대와 달리 '자동차 왕국'인 미국에서 공부하며 다양한 혁신 기업을 간접 경험했다는 점, 글로벌 투자자들과 네트워크를 가진 점도 이러한 변화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 정몽구·정의선 부자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입한 글로벌 3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칼라일의 이규성 전 대표는 정 회장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2018년, 2019년 이후 투자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며 "지분투자와 M&A, 기술협업 가운데 특정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필요한 기술과 서비스에 맞춰 전략적으로 결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현대차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과 2017년 회사가 해외법인을 포함해 다른 기업 지분을 최초로 매입한 규모는 각각 100억원, 872억원 남짓이었다. 출자한 곳의 수도 각각 4곳과 7곳이었다.

하지만 정 회장이 수석부회장에 앉은 2018년 신규 출자 규모는 1087억원, 출자한 곳의 수도 25곳으로 확대됐다. 배달대행 서비스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 지분 9%를 225억원 규모로 취득한 해가 2018년이다. 현재 메쉬코리아는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데 몸값은 현대차가 출자했던 4년 전보다 오른 3000~5000억원 정도로 거론된다.

2019년 신규 출자 규모는 7180억원, 출자한 곳의 수는 43곳으로 급증했다. 올해 현대차가 경영권을 인수한 자율주행 스타트업 '42dot(포티투닷)'에 대한 첫 투자가 이 해에 이뤄졌다. 올해 전기 상용차 출시를 앞둔 영국의 '어라이벌(arrival)'과 인도 최대 차량 호출 서비스 업체인 '올라(Ola)에 수천억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진 해도 2019년이었다.

신규 출자 규모와 피출자 법인 수는 2020년, 2021년에도 확대됐다. 이 가운데 2020년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하며 경영 불확실성이 고조됐음에도 미국 자율주행 합작법인인 '모셔널(motional)'을 세우는 데 1조2678억원을 투자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한 해 타법인 출자액이 1조원을 넘어섰다. 모셔널 포함 22곳에 투자했다. 2021년에는 미국 로봇제조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에 3312억원을 투입하며 연간 24곳에 9228억원을 출자했다.

2022년 신규 출자 규모와 수는 각각 '제로(0)'다. 그렇다고 투자를 멈춘 건 아니다. 기존에 투자했던 곳에 재출자하며 재무 체력을 강화했다. 올해 6월까지 해외법인을 포함해 기존 투자한 곳에 재출자한 규모는 1조원에 육박한다.


흥미롭게도 현대차 투자 철학은 정의선으로의 리더십 변경 및 CFO 지위 향상과 함께 변화했다. 정 회장은 2020년 수석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오른 뒤 CFO를 사내이사에 선임하며 이사회에 참여시키기 시작했다. 김상현 전 CFO와 서강현 현 CFO 모두 이사회에 참여했거나 참여하고 있다. 아버지가 물러나며 생긴 이사회 빈자리에 CFO를 앉힌 것으로 CFO 지위가 향상된 셈이다.

이는 매년 조 단위 투자와 투자 이후 체계적인 관리를 지속하기 위해선 재무 전문가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CFO 직책명도 과거 재경본부장에서 신사업 발굴과 사업 전략 업무도 담당하는 '기획'재경본부장으로 바뀌었다.

서 CFO는 지난달 24일 열린 올해 3분기 실적발표를 겸한 기업설명회에서 "배터리 부품의 경우 전동화 부문의 핵심부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수 있도록 합작법인 설립을 포함해 다각적인 현지화 대응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잠시 멈췄던 현대차의 '신규출자 시계'가 이내 다시 돌아갈 전망이다. 덩달아 CFO가 관찰해야 할 목록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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