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2월 20일 07:4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상반기 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의 최대어로 꼽힌 오아시스가 결국 철회를 결정했다. 공모가 밴드 하단보다 30~40% 낮은 가격을 감수하고 상장을 강행하는 것을 막판까지 고심했으나 주요 주주인 유니슨캐피탈을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오아시스보다 먼저 예비심사를 통과한 ㈜컬리는 공모 전에 상장 중단을 결정했다. 벌어질대로 벌어진 투자자와 경영진의 밸류에이션 격차를 좁힐 수 없다면 공모를 시작하기 전에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두 이커머스(E-Commerce) 플랫폼의 연이은 상장 철회를 지켜보며 지난해 한 증권사 IPO 실무자와 나눴던 대화가 불현듯 떠올랐다. 이 실무자는 강한 어조로 "이커머스 IPO는 죽었다. 앞으로 절대 성공할 수 없고 성공해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커머스 IPO를 부정하는 논거로 터무니없는 밸류에이션을 들었다. 대규모 적자에 허덕이는 이커머스 플랫폼이 주가매출액비율(PSR)과 EV/Sales 방식을 통해 조단위 공모가 시가총액을 내놓는 것은 시장 전체를 기만하는 술수이자 명백한 사기라고 주장했다.
1위 플랫폼만 살아남는 시장 구조도 IPO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종합쇼핑은 쿠팡과 네이버가, 여행·숙박은 야놀자가, 음식 배달은 우아한형제들이 각각 해당 영역에서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현실을 언급했다. 그래서 시장 점유율이 밀리는 플랫폼이 IPO에 나서는 것은 과감한 도전이 아닌 무모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도 했다.
2021년 3월 뉴욕 증시에 입성한 쿠팡 이후로는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의 IPO가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논거는 설득력을 갖는다. 상장 당시 100조원을 넘어섰던 쿠팡의 시가총액이 2년만에 30조원으로 3분의 1토막이 난 것은 투자자를 기만했다는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결과다.
지마켓, 인터파크, 티몬 등 과거 시장을 호령하던 이커머스 플랫폼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버린 것도 그의 주장에 무게감을 더한다.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앞에서 언급한 1위 플랫폼 외에는 상장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 맞는 얘기일 수 있다.
그래도 이커머스 플랫폼 산업 전체를 'IPO 불가' 섹터로 단정짓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고 시장 점유율이 다소 밀리더라도 자신만이 지닌 강점을 통해 살아남는 플랫폼은 IPO를 통해 기업가치를 평가받을 기회를 가져야 한다.
시장 구조 문제는 M&A라는 자정작용을 통해 서서히 개선되고 있다. 일례로 지마켓은 2021년 10월 신세계에 인수됐고 그로부터 두달 후 인터파크는 야놀자를 새 주인으로 맞았다. 원스토어, ㈜컬리, 오아시스 등 철회의 아픔을 겪은 곳들이 M&A를 통해 투자 매력이 높은 플랫폼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정확한 시점을 가늠하긴 어려우나 IPO 시장은 분명 살아난다. 자생력을 갖춘 곳이라면 이 시기에 충분히 상장에 성공할 수 있다. 증시에 유동성이 넘쳐날 때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이커머스 플랫폼을 외면할 투자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앞으로 1~2년 안에 상장에 도전할 이커머스 플랫폼은 11번가, 에스에스지닷컴, 야놀자 정도가 꼽힌다. 모두 자본력과 전문 영역에서 뚜렷한 장점을 지닌 플랫폼이다. 이들이 "이커머스 IPO는 죽었다"는 평가를 뒤집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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