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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패러다임 대전환' 준비 완료 이동식 공장, 이동식 크레인 등 설비 현대화 돋보여… 경쟁사 대비 투자우위로 업계 1위 수성

울산=강용규 기자공개 2023-03-27 11:43:03

이 기사는 2023년 03월 26일 09: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중공업은 한국 조선업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와 울산 미포만의 지도를 들고 따낸 차관으로 선박 건조와 조선소 공사를 동시에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일화를 넘어 신화로 여겨진다. 1972년 3월23일, 현대중공업(당시 현대조선중공업)은 울산의 백사장에서 닻을 올렸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창립 51년쨰를 맞았다. 반세기 동안 원유운반선이나 컨테이너선, 각종 가스운반선 등 상선 분야에서 세계 1위 조선사의 입지를 구축했다. 다만 현대중공업이 50년 기업에서 100년 기업으로 넘어가야 하는 현 시점에서 글로벌 조선업계에는 친환경 연료 전환 및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신형 선박 개발의 압력이 강하다.

현대중공업은 이러한 변화에 충분한 대비가 되어 있을까. 기자의 눈으로 확인한 답은 '그렇다'였다. 단순 대비를 넘어 조선업의 격변기를 선도할 수 있을 정도의 기반을 구축해 뒀다.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의 도크 작업 현장.(자료=HD현대)

◇ 철통보안 속 조선소 관람… 51년 역사가 만든 1위 자부심

끝없이 넓다. 현대중공업의 울산 조선소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규모에 압도된다. 9개의 조선 도크와 1개의 해양 도크, 이외에도 각종 공장들까지 자리잡은 부지의 넓이는 모두 443만㎡(134만평, 군산 제외)다. 이동은 기본적으로 차량 탑승이다.

조선소는 엄격한 보안을 자랑한다. 이는 선박에 적용되는 기술뿐만 아니라 선박의 설계조차 보호해야 할 자산이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세계 1위의 상선 건조 조선사다. 2022년에는 세계에서 발주된 선박의 10%를 수주했다.

가장 먼저 선각공장(블록 생산공장)을 지났다. 블록은 선박을 구획에 따라 나눈 건조작업의 기본 단위다. 이곳에서 완성된 블록들은 특수차량 '트랜스포터'에 실려 도크로 옮겨진 뒤 용접을 통해 선박의 형태가 된다. 대형 선박 1척을 건조하는 데 보통 250~400개의 블록이 필요하다. 공장 근처 야적장에 줄지어 놓인 작업 대기 블록들에서 일감의 풍족함이 느껴졌다.

대조립공장(선수와 선미 등 휘어진 블록을 생산하는 공장)을 지나는 도중 생산 공정에 따라 움직이는 이동식 공장 '쉘터'가 보였다. 날씨에 따라 제한되는 야외 공정을 실내 공정처럼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생산성을 높이는 설비다.

1도크와 2도크, 그리고 현대중공업에서 가장 큰 3도크(100만톤급) 등을 지났다. 선박 건조작업이 진행 중인 도크에는 골리앗 크레인이 우뚝 서 있다.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에는 10개(조선 8개, 해양 2개)의 골리앗 크레인이 설치돼 있으며 필요에 따라 레일을 통해 도크에서 도크로 이동이 가능하다. 가장 높은 것은 높이가 109m(아파트 36층 높이)에 이른다. 보고 있으면 아찔함이 느껴질 정도다.

안벽에 도착했다. 안벽은 도크에서 선체 조립을 마친 선박을 정박시키고 의장(전기장비 설치 및 내부공사) 등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는 곳이다. 현대중공업의 안벽은 전체 길이가 7.6km에 이른다.

기자가 승선한 LNG운반선.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승선 기회를 만들기 위해 보수적인 선주사들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선박의 이름이나 상세 재원 등의 노출을 최소화해달라"고 보안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료=HD현대)

안벽에서 작업 중인 선박에 승선해 봤다. 17만4000CBM(입방세제곱미터) 크기의 초대형 LNG운반선이었다. 이 선박의 건조 프로젝트를 담당한 이만수 현대중공업 조선PM(프로젝트 매니저)의 설명에 따르면 이 선박은 길이가 299m, 높이가 35.5m, 너비가 46.4m다. 선수 쪽에 서서 선미 쪽을 바라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거대한 선박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승선 정원은 고작 34명이다. 이 PM은 "선박 내 대부분 장치에 자동화 기술을 적용해 많은 인력이 필요 없다"며 "이런 기술력 덕분에 현재 150척이 넘는 수주잔고 중 3분의 1 이상(53척)이 고부가 LNG운반선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어조에서 현대중공업을 향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이 PM은 1983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뒤 설계직군을 거쳐 생산직군으로 옮긴 40년차 베테랑이다. 올해 창립 51주년을 맞은 현대중공업 역사의 80%를 함께 했다. 현대중공업은 창사 이후 지금까지 모두 2272척의 선박을 건조했다. 이 가운데 이 PM의 손길을 거쳐간 선박이 60~70여척이라고 한다.

건조를 끝낸 선박을 인도할 때의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뿌듯하죠. 항상…"이라며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기자가 승선한 선박은 올해 상반기 중 인도될 예정이다. 곧 또 하나의 뿌듯함이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에 새겨진다.

◇ 오션 트랜스포메이션의 실행기지, 투자로 비교우위 지속

HD현대그룹(옛 현대중공업그룹)은 오너 3세 정기선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2022년부터 2년 연속으로 세계 최대 전자제품 박람회 CES에 참여했다. 2023년의 행사에서 정 사장은 직접 연단에 올라 '오션 트랜스포메이션(바다의 대전환)'을 선언했다.

정 사장이 꺼낸 오션 트랜스포메이션의 화두는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 등 인류에게 닥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바다의 잠재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접근 방식이다. 현대중공업은 HD현대그룹의 주력 조선계열사로서 오션 트랜스포메이션의 달성을 위해 친환경 미래선박 분야에서 앞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임무를 짊어졌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R&D 투자다. 국내 조선 3사인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중 한국조선해양이 해마다 가장 많은 R&D 투자를 집행한다.

한국조선해양의 R&D 투자는 산하 3개 조선계열사의 연결기준으로 집계된다. 다만 단일 조선사 기준으로도 현대중공업의 투자금액이 가장 많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이 745억원, 삼성중공업이 616억원을 각각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동안 현대중공업은 1039억원을 투자했다.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이날 현대중공업에서 2억마력째의 생산을 달성한 대형엔진은 메탄올-디젤 이중연료 추진엔진이다. 세계 최초의 초대형 메탄올 엔진이기도 하다. 현재 이중연료 추진선박의 대세 엔진이 LNG-디젤 엔진인 가운데 현대중공업이 가장 빠르게 선박연료의 '포스트 LNG' 시대로 들어서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LNG나 메탄올 등 저탄소 연료를 넘어 수소나 암모니아 등 무탄소 연료의 추진엔진까지 개발 중이다. 글로벌 해상 환경규제가 갈수록 강력해지는 상황에서 미래 선박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무탄소 선박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R&D 투자가 미래 경쟁력를 위한 것이라면 조선소 설비 투자는 눈앞의 경쟁력을 위한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이 측면에서도 경쟁사 대비 큰 규모의 투자를 통해 생산성의 비교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2022년도 사업보고서에 공개된 주요 설비투자를 기준으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조선소 설비 현대화 등에 총 8662억원의 투자계획을 준비했다. 이 가운데 올해 잔여 투자분인 791억원과 기존 투자분인 1670억원을 제외한 6201억원이 2022년 한 해에 쏟아부어졌다. 이 기간 대우조선해양은 1524억원, 삼성중공업은 578억원의 보완투자가 집행됐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은 이날 행사에서 기자들에게 "최근 수주도 많이 해 뒀고 스마트 조선소 구축 등 미래 대비도 착착 해 나가고 있다"며 "앞으로 2, 3년 안에 정말 좋은 HD현대그룹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선박시장은 2021년부터 발주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현대중공업은 2020년 41억달러의 수주실적을 기록했으나 2021년에는 108억달러, 2022년에는 116억달러로 연간 수주금액이 급증했다. 2월 말 기준으로 현대중공업의 수주잔고는 261억달러(33조6300억원가량)에 이른다. 척수 기준으로는 152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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