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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산업 人사이트]"美반도체법, 오히려 기회…일본·대만과도 협력고리 만들어야"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김혜란 기자공개 2023-04-12 11:03:01

[편집자주]

반도체와 2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은 한국경제를 떠받치는 대들보 산업이다. 그만큼 중요하지만 지정학적 이슈, 만성적 인력난, 경쟁당국의 견제 심화 등으로 전방위적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 첨단산업 기업의 경쟁력이 지금보다 강해지려면 산업을 둘러싼 대내외적 이슈를 잘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산업과 기술에 대해 이해도를 높이는 것도 필수다. 기업 외부의 전문가들을 만나 첨단산업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과 이슈에 대한 해결 방안, 인사이트를 들어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4월 10일 15: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미국의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의 파고가 한국 반도체 산업을 덮쳤다. 미국 상무부가 과한 보조금 지급 조건을 요구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고민거리를 던졌다.

이제부터는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위기에서 기회를 찾고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 최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반도체지원법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억5000만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초과 수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 문제는 '초과이익'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기업 내부 정보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기업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밀이 많다.

반도체 산업 전문가인 김양팽 산업연구원(KIET) 신산업연구실 전문연구원은(사진) "김 연구원은 "(요구가) 적당한 수준이라면 어떻게든 보조금을 받는 게 (기업경영에 도움이 되니) 낫겠지만, '이렇게 민감한 정보까지 요구하면 보조금을 못 받겠다'라고 오히려 얘기할 수가 있는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한국이 협상력을 높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원은 "더 나아가면 미국에 공장을 지어달라는 건 미국의 요청이었는데, '적반하장'으로 많은 정보를 요구한다면 보조금 신청뿐만 아니라 미국 진출까지도 안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우리는 역카드를 쓸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미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장을 미국에 짓도록 요청해) 역내 생산을 추진하면 결국 한국의 반도체 제조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라며 일본과 대만 등 지리적으로 근접한 나라들과 반도체 협력 고리를 강화해 미국을 견제할 필요성이 있단 점도 강조했다.

김 연구원을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 산업연구원에서 만나 한국 반도체 산업이 당면한 현안과 대안에 대해 들어봤다.

◇부메랑으로 돌아온 美반도체법

미국 상무부는 최근 반도체 보조금 신청 기업에 수익성 지표를 내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 가동률, 소재 등에 대한 정보를 제출하도록 했다.

김 연구원은 "가동률이나 수율을 안다고 (기술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알려졌을 때 마케팅 차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특정 기업의 낮은 수율이 공개되면 고객사가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도 대만 TSMC도 수율을 정확하게 밝힌 적이 없다. 류더인(마크 리우) TSMC 회장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부 조건들이 있다"고 직접적으로 우려를 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 연구원은 "만약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이라면 세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미국 내에 공장을 지어주면 보조금을 준다고 (한국과 대만) 기업에 요청한 것"이라며 "자기들의 필요로 요청해놓고 타당하지 않은 요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왜 이렇게까지 기밀을 요구하는 것일까. 김 연구원은 "미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외국 기업들한테 보조금을 주는 것"며 "그러니 그냥 보조금을 주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하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는 또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중국 내 반도체 생산능력을 10년간 첨단 반도체는 5%, 성숙공정은 10%까지 확대할 수 있다고 했고, 이에 대해 정부와 업계 일각에선 "최악은 피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1년에 늘릴 수 있는 캐파(CAPA·생산능력)는 0.5%에 불과하다. 김 연구원은 "실질적으로 증산이 막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더군다나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로 삼성전자 등이 중국 생산기지에 첨단장비를 반입하기가 어렵다. 김 연구원은 "(중국 생산기지 확장 관련해선) 현재 수준까지만 허용을 해 줄 테니 더 이상은 중국에 투자를 하지 말라는 게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보조금 신청, 안 할 수도 있나

삼성전자는 미국 오스틴에서 파운드리 공장을 가동 중이고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새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SK하이닉스도 미국에 메모리 패키징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보조금을 신청하지 않는 것도 고민할 수 있을까.

정치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라 보조금을 신청하지 않거나, 미국 진출을 원점으로 돌리는 것 모두 현실적으로는 꺼내기 쉬운 카드가 아니다. 김 연구원은 "(미국 정부의 뜻은)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견제하겠다는 것인데 거기에 반하면 미국이 장비 수출을 우리나라에까지 막을 수 있다"며 "그럼 우리는 아예 반도체 생산을 못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달 말 있을 한미정상회담 협상 테이블에서 한국 정부가 최대한 성과를 내는 게 관건이다. 미국 상무부는 보조금 신청 마감 기한은 따로 정해 두지 않았다. 김 연구원은 미국이 한발 물러서 기밀 요구 수준을 낮출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2019년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점검할 때도 기밀을 요구했으나 기업들이 중요한 내용을 공란으로 제출했는데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갔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또 중국 내 14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장비 반입을 막고자 하는데, 이 조치는 1년 유예됐다가 오는 10월 만료된다. 또 미국은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D램은 18나노 이하, 낸드는 128단 이상 중국 내 캐파 확대에도 제동을 걸고 있다. 중국에서 캐파 확대도, 첨단장비 반입도 못 하면 철수 전략을 고민해야 할까. 김 연구원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각각 중국에 투자한 돈이 있는데 회수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외부에서 모른다"며 "외부에서 평가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용인 300조 투자의 의미…"오히려 미국 견제할 필요성"

미국의 요구는 더 거세질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지어달란 요청도 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용인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300조원 투자' 결정이 이 시점에 나온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김 연구원은 "미국 메모리 제조사 마이크론이 능력이 안 되면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에 또 (미국에 공장 건설) 압력을 넣을 수 있는데 삼성전자가 (용인 대규모 투자 발표로) 빨리 잘 움직였다"며 "메모리 반도체를 미국 가서 까지 만들면 공급 과잉이 발생한다고 방어할 수 있다. 미국의 그런 압박에 대한 출구전략이 잘 세워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가 첨단 반도체를 만들려면 (아직 우리 기술이 없는) 일본의 소재와 장비가 무조건 필요하다. 우리가 핵심장비를 만드는 일본하고만 손잡아도 미국 눈치 볼 필요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TSMC는 일본 구마모토현에 후공정 공장을 짓고 있다. 김 연구원은 "한국 후공정 업체들도 대만이나 일본에 공장을 짓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또 팹리스(설계 전문) 등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려면 세트(완성품) 제조경쟁력을 국내를 중심으로 다시 세우는 게 중요하단 점을 강조했다. 해외에 제조기지가 있는 한국 세트업체가 국내에서 부품을 주문해서 가져가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는 "국내에 공장이 있으면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등 수많은 부품을 만드는 팹리스가 성장하고 생태계가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광주에 '미래차 특화단지'를 조성하면 미래차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만드는 팹리스 생태계가 커질 수 있다. 김 연구원은 "수요 산업들이 국내로 빨리 유턴해 주면 시스템 반도체 산업도 좀 더 활성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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