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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을 움직이는 사람들]LG 배터리 역사 '산증인' 김명환 CPO③23년간 배터리연구소장 지낸 '장인', 기술개발·양산 중추적 역할

정명섭 기자공개 2023-04-24 07:19:09

[편집자주]

LG에너지솔루션은 명실상부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선두 주자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아무도 배터리에 주목하지 않던 2000년부터 연구개발을 시작해 연 수천억원대의 적자에도 끈질기게 기술 개발과 사업을 이어온 LG그룹의 집념이자 구본무 선대회장의 의지다. 2022년 1월 코스피에 상장해 단숨에 시가총액 2위 기업으로 거듭난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시장 확산과 주요국 보호무역주의 정책, 업계 경쟁 확대 속에 새로운 기회와 위기를 맞이했다. 더벨은 LG에너지솔루션의 도약을 이끌 리더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이 기사는 2023년 04월 18일 15:5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김명환 LG에너지솔루션 생산·구매 최고책임자(CPO, 사진)는 LG그룹 배터리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996년부터 20년 넘게 배터리 연구에 집중한 인물이다.

김 CPO는 1957년생으로 경복고, 서울대 공업공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공학 석사, 미국 애크런 대학 고분자공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유학 시절부터 남달라던 뚝심

그가 LG그룹에 입사한 시기는 석사 과정을 마친 1982년으로, 럭키 중앙연구소의 고분자연구부문 연구원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김 CPO는 '배터리 장인'으로 불리지만 전공과 경력을 보면 배터리와 거리가 멀다. 그는 연구원 재직 당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분야를 연구했고, 이후 미국 유학 중에도 고분자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미국 유학 당시 주변에선 김 CPO를 만류했다. 고분자학과는 최소 7년은 공부해야 졸업할 수 있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학문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당초 유학 기간을 5년 정도로 생각했던 김 CPO는 계획대로 고분자 전공을 택했다.

김 CPO는 주변의 예상을 깨고 4년 반 만에 졸업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돌아온 김 CPO는 1992년에 LG화학 토너개발팀장으로 복귀했다.

그가 배터리와 첫 연을 맺은 건 1996년에 리온배터리개발팀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다.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이 1992년 영국 출장길에 우연히 본 충전식 배터리가 미래를 바꿀 것이라고 보고 회사에 연구개발을 지시했고, 이후 그룹 차원에서 배터리 독자 개발을 위해 관련 조직을 처음 꾸린 시기다.

회사가 처음 진출하는 분야이다 보니 사내에 전문가가 없었다. 이미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터라, 배터리 개발에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다. 중책은 김 CPO에게 주어졌다. 급변하는 기술 트렌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배터리 첫 양산 이끌어...차량용 배터리 성장성 본 '선구안'

그는 1997년 LG화학 배터리연구소장 역임을 시작으로 배터리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배터리연구소장은 사실상 전지사업 부문의 최고기술책임자(CTO)였다. 배터리 개발은 늘 실패의 연속이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구 선대회장은 김 CPO와 직원들을 격려했다.

LG화학은 우여곡절 끝에 소형배터리 개발에 성공해 1998년 청주에 처음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양산을 시작했다. 당시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충전식 배터리(리튬이온배터리) 양산에 성공한 사례였다. 이후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더 이상 일본 기업들에 배터리 수입을 의존하지 않아도 됐다.

김 CPO는 1997년에 등장한 일본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를 보고 차량용 배터리에 눈을 떴다. 그는 에너지 부족, 환경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전기차 시장이 미래에 급부상할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차량용 배터리가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한국에 강력한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하이브리드차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시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연구개발 조직 수장으로서 선행 개발에 대한 혜안이 돋보였다.

LG화학은 2005년 본격적으로 차량용 배터리 개발을 시작했고, 2009년에 처음 양산에 돌입했다. 그 사이 회사의 배터리 부문은 연 2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해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으나, 구 선대회장의 전폭적인 지지와 결단 덕에 김 CPO는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김 CPO는 늘 차별화를 강조한 기술자였다. 배터리 시장 후발주자가 생존하려면 경쟁사와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그가 개발을 주도한 '스택앤폴딩'과 안전성 강화 분리막 기술은 고민의 결과물이다.

스택앤폴딩은 전극을 셀 단위로 잘라 쌓은 후 수차례 접은 후 전해질을 주입하는 형태로 배터리를 만드는 방식이다. 기존의 김밥처럼 마는 와인딩 방식은 충·방전 횟수가 쌓이면 전지가 변형돼 열이 나는 단점이 있었다. 모양을 변형하고 자르는 것도 불가능해 공간활용에도 한계가 있었다. 스택앤폴딩은 전극을 나눠 쌓고 접는 구조라 독창적인 변형이 가능했고, 오랜 시간 사용에도 성능이 일정하게 유지됐다.

LG화학이 2004년에 독자 개발한 안전성 강화 분리막 기술도 김 CPO 주도로 개발됐다. 이는 배터리 소재인 분리막 표면에 얇은 세라믹 소재로 코딩하는 기술이다. 분리막 외부의 불순물이 섞이는 것을 방지해 화재나 성능 저하 등을 막을 수 있다.

이 기술을 도입할 당시 비용이 많이 들고 공정도 복잡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왔으나, 김 CPO는 배터리의 안전성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봤다. 두 기술 덕에 당시 LG화학 배터리는 내구성과 안전성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LG에너지솔루션 초대 CPO...공정·품질 관리 중책

김 CPO는 2020년까지 총 23년간 배터리연구소장을 역임했다. 그 사이 약 1년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도 겸임해 사업 감각도 키웠다.

그는 배터리 핵심 기술 개발뿐 아니라 GM과 포드, 폭스바겐, 다임러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프로젝트 수주를 확대했고,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확대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에 사장 승진과 함께 당시에 CPO직을 맡게 됐다. 배터리 사업이 LG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우뚝 서기 시작한 시기다. 이후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부문이 물적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으로 출범한 이후 현재까지 CPO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올해 배터리 기술 개발보다는 공정, 생산 등의 설비기술을 개발하고 라인을 구축하는 데 집중할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 이후 북미를 중심으로 글로벌 생산기지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조 단위의 자본적지출(CAPEX)이 투입되는 만큼 설비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생산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조기에 해외 공장을 안정화하는 것도 그의 앞에 놓인 과제다.

김 CPO는 생산과 공정 관련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스마트팩토리로 생산라인을 전환하려는 것도 이에 대한 연장선이다. 배터리 제조 공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품질과 제조 기술 선진화, 원가 경쟁력 확보, 생산성 향상 등에 나서는 게 핵심이다.

김 CPO는 LG에너지솔루션 최고경영자(CEO)인 권영수 부회장과도 가까운 사이다. 권 부회장이 2012년부터 2015년까지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을 지내던 당시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권 부회장은 제품 품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만큼 올해 김 CPO의 역할은 더 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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