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4월 28일 08: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 우리가 아니면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해서 뛰어들었습니다.”‘슈퍼 섬유’로 불리는 ‘메타 아라미드 페이퍼(Meta-Aramid Paper)’ 개발에 나선 한정철 엔바이오니아 대표에게 추진 배경을 묻자 이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언뜻 덤덤하게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단호한 의지가 엿보였다.
아라미드 페이퍼는 강철보다 5배 강한 고기능 섬유소재로 400∼500도의 고온에서도 타거나 녹지 않아 내열성, 전기절연성, 가공용이성을 갖췄다. 이 같은 장점을 갖추고 전기차나 수소차 등 친환경 모빌리티 시장이 커지는 환경에서 활용 영역을 넓히고 있다.
문제는 기술이다. 진입장벽이 높아 미국의 듀퐁(DuPont)사가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상황이다. 엔바이오니아도 나홀로 개발은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소재전문 기업 도레이첨단소재가 손을 내밀었다. 엔바이오니아가 보유한 습식(Wet-Laid) 부직포 제조 기술에 주목했다.
엔바이오니아 입장에서 좋은 기회였다. 기술에 자신이 있었고 도레이첨단소재가 제시한 메타 아라미드 원료의 독점 공급도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고민도 뒤따랐다. 2001년 설립해 20년의 업력을 갖추고 2019년 코스닥 상장까지 했지만 아직 규모가 크지 않는 중소기업이기 때문이다.
신사업 도전은 시간과 자금을 필요로 한다. 당장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추가 여력을 내기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경영 안정성을 따진다면 오히려 거절이 자연스럽다. 선택의 순간에 한 대표를 움직인 동력은 수익 가능성과 의무감이었다. 만약 제안을 거절했다면 아라미드 페이퍼는 앞으로도 남의 기술로 남을 가능성이 높았다.
기업의 목적은 사업을 통한 수익 창출에 있다. 최근 사회적 책임을 대하는 인식이 커지고 있지만 ‘먹고사니즘’은 여전히 최우선 순위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도전에 필요한 당위성을 구성하고 행동에 나선 이들의 선택은 박수를 받을 가치가 있다.
소재 산업은 제조업 생태계의 근간을 이루는 분야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IT 산업이 대접받는 시대가 왔지만 오히려 존재감을 키우는 상황이다.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탈세계화 흐름과 함께 소재 분야는 국가의 전략 산업으로서 중요성이 커졌다. 한국도 2019년 일본의 일방적 수출 규제인 ‘화이트리스트’ 이후 소재 자립화는 생존의 필요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국내 경제를 둘러싼 지형은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면서 중대한 변곡점에 놓였다. 기업들이 마주하는 경영 환경도 어려워지고 있다. 비단 반도체만이 아니라 뜻밖의 분야에서 소재, 부품 공급이 막히면서 전략물자로 떠오를지 모를 일이다. 경제의 기초 체력을 지탱할 국산화 작업에 어느 때보다 관심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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