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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 & Lab]"전기차 충전기도 건강검진…예방보전 기술로 승부수"SK시그넷 CTO 김희욱 연구개발본부장 인터뷰

제주=김혜란 기자공개 2023-05-30 11:10:50

[편집자주]

제조업이든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든, 출발점은 Fab(공장)과 Lab(연구소)다. 여기에서 얼마나 고도화된 공정 개발이, 기술 연구가 이뤄지느냐가 최종 제품의 질을 좌우한다. 더벨이 기업의 산실인 제조 공장과 연구·개발(R&D) 센터 현장을 찾았다. 또 Fab과 Lab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와 연구소장, 엔지니어 등을 직접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5월 25일 14:1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금까지 전기자동차 충전기의 진화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충전속도와 품질. 충전속도는 더 빨라지고 고장률은 낮아진 신제품을 시장에 지속적으로 내놓아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SK시그넷 최고기술책임자(CTO)인 김희욱 연구개발본부장(사진)은 여기에 더해 '예방보전(Preventive Maintenance)' 기술을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사람이 건강검진을 해 병을 미리 알고 예방하듯 전기차 충전기도 상시적으로 상태가 어떤지 살펴보고 문제가 생길지 미리 알 수 있는 게 가장 좋다"며 "올해부터 충전기의 '건강'을 모니터링하는 기술을 충전기에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AI)을 적용한 예방보전 기술은 조만간 나올 SK시그넷의 400kW(킬로와트)급 초급속 충전기 'V2'에 처음 탑재돼 세계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23일 제주 서귀포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국제전력전자학술대회(ICPE)에서 김 본부장을 만났다. 그가 SK시그넷 CTO에 취임한 후 국제학회에 참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 본부장은 "세계 시장에서 SK시그넷과 회사의 기술을 알리고 리크루팅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참여했다"고 말했다.

오는 8월 SK시그넷의 새 종합 연구·개발(R&D) 센터가 문을 여는데, 이에 맞춰 세계적인 인재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김 본부장에게 R&D센터 운영 전략과 기술 로드맵에 대해 들어봤다.

◇충전기 기술의 핵심은…성능과 품질

전기차 충전기의 성능을 결정짓는 건 충전속도다. 전기차 충전기 업체들은 그동안 충전속도 단축에 사활을 걸었다. 글로벌 2위 사업자 SK시그넷은 충전시간을 10분대로 확 낮춘 400kW급 초급속 충전기 V2를 개발했으며, 오는 7월 양산을 앞두고 있다.

기존 SK시그넷의 350kW급 초급속 충전기로 현대자동차의 대표적인 전기차 아이오닉5을 충전하는 데 20분 정도 걸리는데, 신제품 V2는 이 시간을 15분으로 줄였다. 출력용량이 높아지면 그만큼 한 번에 많은 전력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충전속도가 빨라진다.

V2는 SK그룹이 SK시그넷(옛 시그넷이브이)을 인수한 뒤 250Kw급 V1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이자 김 본부장이 CTO를 맡아 설계부터 양산까지 총괄한 첫 완성품이기도 하다. 시그넷이브이 시절 개발돼 판매돼 왔던 제품들은 350kW급 초고속충전기였다. 기존엔 고객사 발주에 따라 맞춤형 제품을 주로 생산했다면 리드타임(발주부터 납품까지 소요시간)을 줄이기 위해 표준형 제품을 개발해 판매를 점차 늘리고 있는데 그게 V시리즈다.

V2는 땅이 넓어 장거리운전이 많고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등 큰 차가 많은 미국 시장에서 특히 수요가 많을 것으로 점쳐진다. 김 본부장은 "400kW급을 개발한 것도 고객사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충전 속도의 경우 완성차 업체들의 개발 상황을 봤을 때 승용차 기준으론 400KW급이 맥시멈일 것 같다"며 "그 다음부터는 아예 ㎿(메가와트)급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성능만큼 중요한 게 품질이다. 품질이 좋아진다는 건 고장률을 확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SK시그넷의 급속 충전기는 미국 전역에 2300여대가 설치돼 있다. 고장률이 1%면 약 20대가 고장 난 상태란 얘기다. 앞으로 SK시그넷이 미국에 충전기 2만대를 판매하면 확률적으로 200대가 고장나게 된다. 200대를 고치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예방보전 기술 추가…기술 경쟁력 과시

그래서 중요한 게 예방보전 기술이다. 상시로 AI와 데이터분석을 기반으로 유지·보수 서비스를 사전적으로 시행해 고장을 예방하는 기술을 말한다. 예를 들어 특정 부품이 어떤 증상을 보였을 때 고장 날 확률이 높다는 정보를 수집하면 부품을 미리 교체하는 식의 예지 정비를 할 수 있다.

V2는 기존 350kW급 제품이나 V1에 비해 충전속도가 단축됐을 뿐 아니라 예방보전 기능도 추가됐다. 미국은 워낙 넓어 충전기가 고장 났을 때 수리하거나 검진하러 다니는 데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AI를 통해 효율적으로 원격으로 검진할 수 있다면 비용 절감에도 유리할뿐더러 고객사의 충전기 가동률도 확 올릴 수 있다.

김 본부장은 "충전기의 '헬스 모니터링'을 올해 개발 중"이라며 "아픈 다음 병원 가서 수술하는 게 아니라 건강검진을 통해 미리 알고 치료하는 게 중요한 것처럼 전기차 충전기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선제적으로 예방보전 기술을 도입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적 차별화를 내세울 수 있을 것으로 김 본부장은 기대하고 있다.

◇부천 R&D 센터 어떻게 운영하나

김 본부장은 R&D센터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김 본부장은 "(R&D센터의 개소 목적은) 실험할 환경을 만드는 게 첫 번째였다"며 "(전기차 충전기) 개발 과정의 절반이 불량을 잡는 등 시험 과정이 차지한다"고 말했다.

V2 신제품을 내놓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이다. 김 본부장은 "성장하는 회사일수록 제품 설계보다 테스트 기간이 더 길게 걸린다"고 말했다. 시장에 제품을 내놓더라도 피드백을 받아 성능과 품질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무결에 가깝에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는 "전기차 충전기가 굉장히 하이파워 제품이다 보니 실제로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환경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려웠다"며 "이번에 새로 만든 4층 규모의 R&D센터의 1, 2층은 테스트 공간을 포함한 실험실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충전기가 설치될 위치나 환경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영하 40도에서 55도 범위 등을 비롯해 다양한 조건 속에서도 동작하는지를 수차례 시험해야 한다. 이런 실험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신제품 개발까지 2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부천 R&D 센터는 SK시그넷의 기술적 도약을 이끌 발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3일 ICPE에서 전기차 충전기의 글로벌 트렌드를 주제로 발표 중인 김희욱 본부장(사진=김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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