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6월 02일 08:08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로,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따라서 무너진다는 의미로 쓰인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물론이고 기업과 기업, 국가와 국가 등 이 세상에서 맺어지는 거의 모든 관계는 상호 의존적이다. 결코 어느 한 편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순망치한의 관계다.요즘 현대차와 SK의 관계가 딱 이렇다. 전기차용 배터리를 만드는 SK온은 최근 현대차로부터 최대 2조원을 빌리기로 했다.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이 보증을 섰다. 대기업끼리 이렇게 조단위의 돈을 빌려주는 사례는 처음인 듯하다. 그만큼 이례적이다.
이 돈은 아마도 현대차와 SK온이 미국에 짓기로 한 배터리 합작 공장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6조5000억원을 들여 2025년 하반기 가동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 바토우 카운티에 연간 35기가와트시(Gwh) 규모의 배터리 셀 생산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아직 영업에서 적자를 내고 있는 SK온은 현대차그룹으로부터의 2조원 조달이 '단비'처럼 느껴질 수 있다. SK온은 배터리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추가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자금이 부족한 SK의 일방적 구애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리 단순해 보이지는 않는다. 현대차도 이가 시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360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전기차 글로벌 톱3'를 노리는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도 배터리 공급을 원활하게 받기 위해 SK온과의 전략적 합작이 중요한 시점이다.
결국 현대차가 '무려' 2조원을 '기꺼이' 빌려준 배경에는 SK온에 대한 기대치가 그만큼 깔려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잇단 수율 개선 노력에다 배터리 업계를 향한 지속적인 수요 확대가 맞물리면서 SK온을 둘러싼 대외 환경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흑자 전환 시기도 임박했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SK온에 대한 기대감은 글로벌 투자자들의 적극적인 투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최근 MBK파트너스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중국계 힐하우스캐피탈과 중동 카타르투자청(QIA) 등 세계적인 재무적 투자자(FI)로부터 1조2460억원에 달하는 자금 유치에 잇따라 성공했다. 글로벌 투자업계에서도 톱티어 배터리 제조업체인 SK온이 매력적인 투자처로 부각된 모양새다.
실제 SK온은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이르면 2025년 무렵 기업공개(IPO)에 나설 계획이다. 단연 최대어로 꼽힐 만하다는 평이다. 투자회수(엑시트) 성과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도 당연히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SK그룹 입장에서도 그동안 쏟아부은 수십조원의 투자금을 일시에 회수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 SK온의 IPO 성공 여부에 따라 SK그룹의 운명이 걸려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래서 현대차가 SK에게 빌려주는 2조원의 의미는 단순히 돈의 크기로 측정할 수 없다. 순망치한의 관계가 '윈윈(win-win)'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지 3년 후 결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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