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7월 10일 07: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거버넌스상 우리나라 메이저 금융그룹 대부분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비즈니스적으로 보면 바뀐 건 별로 없다. 은행 비중은 여전히 압도적이고 비은행 부문은 항상 키워 나가야 할 짐이다.10여년 전, 금융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은 희망과 기대로 가득차 있었다. 계열사간 정보 교류와 시너지를 최대화 해 글로벌 금융회사로 발돋움하자는 정부의 정책과 맞닿았다. 글로벌 IB 지원 대책이 쏟아진 것도 그 때 전후였다.
반면 제조업 중심의 지주사 전환은 '압박'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 싶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그룹을 중심으로 지주사 전환을 종용했다. 취약한 지배구조 문제를 우려한 경영권 방어, 즉 경제 안보 측면도 있었고 재벌들의 편법 승계 이슈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카드로 활용됐다. 재벌 2세와 3세들이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로 승계 발판을 마련하는 것을 경계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금융그룹과 제조업의 지주사 전환 이슈는 그 의도와 방향성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차이는 희미해지고 잊혀진 듯하다.
글로벌 금융회사로의 도약이라는 청사진은 퇴색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쓴 맛을 보기도 했고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제조업에 들이대는 잣대가 오히려 금융회사 발목을 잡는 경우도 생겼다.
일감몰아주기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계열사간 시너지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적은 비용으로 일관된 생산 라인에서 제품을 생산하면서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시너지가 승계 이슈와 연결될 때다.
승계 이슈와 연관지어 본다면 우리나라 금융그룹은 일감몰아주기 논란과 다소 거리가 있다. 미래에셋과 메리츠 등 증권금융그룹 외 대부분이 확고한 오너 없이 지분이 분산돼 있기 때문이다. 주요 주주나 특수관계인을 위한 일감몰아주기가 아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금융그룹이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받으면서 계열사간 시너지가 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계열사간 정보 교류는 물론이고 회사채 주관이나 인수, 계열사 펀드 등 금융상품 판매 제한, 자금 위탁 비중 제한 등 제조업을 겨냥한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금융회사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왜 계열사가 채권을 발행하면 이를 주선하는 것에 제한을 둬야 할까. 증권사 IB부서가 주선하는 기업의 회사채 인수를 위해 계열사가 동원되는 건 또 왜 문제일까. 이거야 말로 규모의 경제로, 증권사는 기업고객을 확실히 확보할 수 있고 기업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조달을 할 수 있는 윈윈 비즈니스인데도 말이다. 시장금리 왜곡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역시 시장이 만든 금리다. 차이니즈월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다면 문제가 없다. 아니면 차이니즈 월이 지켜지 않고 있다는 걸 시인하는 걸까.
규제를 피해 극단을 간 것이 채권 파킹이다.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피하기 위해 손익에 상관 없이 다른 하우스의 채권을 맡고 맡아주는 꼼수는 여의도 채권쟁이들의 전통이다. 물론 채권파킹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왜곡된 거래가 나올 수밖에 없게 된 자본시장의 환경과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돈이 되면 어디든 틈을 파고드는 게 자본의 숙명이고 운명이다. 당국의 규제가 너무 허술하거나 설득력이 없다면 자본의 큰 흐름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채권파킹 문제만 들쑤시지 말고 금융 비즈니스에서 일감몰아주기 규제 완화를 고민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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