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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er Match Up/HMM vs Maersk]해운업과 오너십⑦[지배구조]머스크, 전문경영체제에도 오너 영향력 강화…HMM 주인 물색 '3파전'

고진영 기자공개 2023-09-04 07:43:12

[편집자주]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8월 30일 08:46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해운업계는 전통적으로 가족경영이 우세한 시장이다. 세계 최대 해운국인 그리스만 봐도 선주 대부분이 철저한 가족경영 체제로 굴러간다. 거대 선사들이 모여 있는 유럽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었다.

2000년대 이후론 머스크가 전문경영인 시스템을 도입, 오너경영을 고집하던 MSC까지 머스크 출신 CEO를 영입하는 등 유럽 대형선사들을 중심으로 변화가 일었다. 하지만 노 잡는 사공이 달라졌을뿐 선장은 그대로다. 소유구조를 보면 여전히 오너일가가 압도적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강력한 오너십의 강점은 물론 리더십이다. 전문경영과 오너경영을 두고 어느 쪽이 무조건 낫다 말하긴 어렵지만 호불황이 반복되는 해운업 특성상 리더십이 중요한 가치라는 데 이견이 없다. 주인을 찾는 중인 HMM에 절실한 부분이기도 하다.

◇머스크가 남긴 '오두막'

"머스크그룹이 지금 당장은 불리(less rewarding)해 보이는 결정을 장기적 관점에서 감행할 수 있는 것은 가족 중심의 소유구조 덕분이죠."

머스크 창업자의 손녀인 아네 우글라 AP묄러홀딩스(AP Moller Holding) 의장이 10년 전 지주사 설립 이후 했던 이야기다. 그는 머스크그룹에 대한 오너 차원의 관여, 그리고 머스크 최대주주를 가족소유 재단으로 유지한 점이 경영권 공격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오너중심의 지배구조가 약점이 아닌 이점이라는 의중을 분명히 한 셈이다.

머스크그룹은 그간 외견상 소유형태는 달라졌지만 소유권 자체가 흔들린 적은 없었다. 우글라 의장의 부친 매키니 묄러(Maersk Mc-Kinney Moller) 회장은 1965년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뒤 38년간이나 회사를 직접 경영했다. 그러나 2003년 12월 제스 소더버그 전 CEO에게 자리를 넘긴다. 머스크그룹이 처음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때다.

당시 묄러 회장은 경영진 50여명을 집으로 초대해 "나는 다리를 떠나지만, 내 오두막은 남겨둡니다"라고 말한다. 경영권을 내려놓되, 가족소유 재단(AP Moller Foundation)의 헤드 자리는 유지하겠다는 의미였다. 이 재단은 머스크 지분 41.51%(의결권 51.09%)를 가지고 있었다.

회사를 확고한 통제 하에 두려는 묄러 회장의 뜻은 딸 세대에서도 이어진다. 아네 우글라 의장은 2013년 지주회사인 AP묄러 홀딩스를 설립, 재단이 가지고 있던 머스크 지분을 이전했다. 이로써 재단이 지주사 지분을 전부 보유하고, 지주사가 머스크를 거느리는 형태가 됐다.


이 개편은 머스크의 전환점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1953년 AP묄러 재단이 만들어진 뒤 내내 변함이 없었던 소유구조가 60년만에 달라졌기 때문이다. 함축된 의미 역시 작지 않았다. 우글라 의장이 새로운 지주회사를 세운 것은 머스크 이사회와 더 자주 소통하면서 적극적으로 소유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과거와 달리 그룹 외부에 대한 지주회사의 투자, 인수활동이 가능해졌다는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현재 머스크는 회사 경영을 책임지는 '경영진 리더십 팀'과 감독업무를 하는 이사회로 구조가 이원화돼 있다. 이사회의 경우 작년 초까진 아네 우글라 AP묄러홀딩스 의장이 머스크에서 부의장을 담당하고 의장은 따로 두고 있었다.


하지만 2022년 아네 우글라 의장은 머스크 이사회를 떠나 지주사 의장직만 유지했다. 대신 아들 로버트 머스크 우글라(Robert Maersk Uggla, 사진)가 머스크 의장으로 선임되면서 기존의 짐 하게만 스나베 의장은 고문으로 물러났다. 승계와 함께 오너일가 통제력을 한층 단단히 한 셈이다. 로버트 우글라 의장은 2016년 9월부터 AP묄러홀딩스 CEO도 맡고 있다.


◇오너십 vs 주주 이해상충

머스크 오너일가의 통제력 강화에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사업 개편과 관련한 불만이 있다. 머스크는 2015년 이후 컨테이너와 물류, 항만을 제외한 다른 사업을 차례로 정리해왔다. 석유·사업은 외부에 팔았고, 조선소는 폐쇄했다. 그런데 머스크드릴링 등 일부 기업은 지주사에 넘겼다. 올해 3월에도 MSS(Maersk Supply Service)를 AP묄러홀딩스가 인수했다.

일각에선 머스크가 '선택과 집중'을 결정해놓고 다른 한편(지주사)에서 또다른 거대복합기업(conglomerate)을 만들고 있는 그림이 아이러니하다는 말이 나온다. 나머지 소액주주들의 이해관계가 머스크 관계와 상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해 '물류종합회사'로 변모하겠다는 머스크의 전략은 애초 오너가족의 리더십이 아니었더라면 밀어붙이기 어려웠을 계획이다. 해운업에 오너경영이 과연 유리한 게 맞는가에 대해선 말이 갈리지만, 머스크뿐 아니라 업계 1위 MSC와 3위 CMA CGM이 모두 강력한 오너 지배력 아래 있다는 점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

MSC의 경우 2020년 말 스카웃한 소렌 토프트 CEO가 오너 디에고 아폰테(Diego APONTE) MSC그룹 사장, 지안루이지 아폰테(Gianluigi Aponte) MSC그룹 회장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구조다. 또 CMA CGM은 선박왕 자크 사드(Jacques Saade)의 아들 로돌프 사데(Rodolphe Saadé)가 회장 겸 CEO로 있다. CMA CGM은 자크 사드가 1978년 설립한 회사다.

◇HMM·한진해운의 리더십 부재

그렇다면 2017년 한진해운 파산에선 왜 오너 소유의 지배구조가 실(失)로 작용했을까. 한진해운은 최고결정권자였던 최은영 현 유수홀딩스 회장의 지분율이 낮았던 데다 고(故) 조양호 회장과의 경쟁까지 겹쳐 오너십 기반이 약했다. 경영권 방어에 신경쓰느라 해운업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웠다.

한진해운이 무너지면서 유일한 국적원양선사가 된 HMM도 비슷하게 리더십 부재의 문제를 안고 있다. HMM은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사실상 국유화됐다.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HMM의 지분 20.69%와 19.69%를 각각 보유 중이다. HMM이 빤히 다가오는 해운업 불황에도 이렇다할 신사업 발굴을 하지 못한 데는 채권단 관리 하에서 투자에 보수적 입장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일각에서는 HMM의 황금기를 분할 전 현대그룹 내에서 독자경영이 이뤄지던 현대상선 시절로 꼽기도 한다. 이제 해운산업 자체가 너무 거대해지면서 유연한 대처가 힘들어진 탓도 있지만 주인의식, 책임경영에 대한 그리움이 엿보인다. 전문경영인의 존재와 별개로 선장이 너무 자리를 오래 비웠다.

주인 물색에 나선 HMM 인수전은 현재 3파전으로 압축된 상태다. HMM과 같은 '디얼라이언스' 소속인 하팍로이드는 적격인수후보에서 탈락했고 LX그룹과 하림, 동원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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