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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 선 삼성 리더]경계현 사장, 위기의 장수일까 게임체인저일까유례 없는 반도체 불황에 메모리 위기설…'시스템 2030' 전략 총괄까지

김혜란 기자공개 2023-09-25 10:20:36

[편집자주]

재계 서열 1위 삼성은 거버넌스나 사업 측면에서 다른 대기업보다 의사결정의 무게감이 남다르다. 삼성이라는 거함을 움직이는 리더들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대물림 경영을 끝내겠다고 선언한 이재용 회장은 앞으로 이행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인 만큼 각 사업 부문 전문경영인들은 차세대 생존 전략을 제시해야 할 때다. 이 회장을 필두로 삼성의 주요 경영진의 과제를 짚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9월 21일 07: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반도체를 통해 인공지능(AI)이라는 6번째 산업혁명 물결이 실현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장(대표이사 사장)은 최근 한 대학 강연에서 삼성전자 반도체의 '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경 사장은 누군가에겐 꿈의 대상이다. 삼성전자 출신이지만 계열사 사장으로 떠났다가 2년 만에 DS 수장으로 복귀하는 최초의 사례를 만들었다. 계열사로 빠지더라도 능력을 나타내면 언제든 삼성전자 수장으로 발탁될 수 있단 점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경 사장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2021년 말 정기인사로 막 취임했을 때만 해도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이 이어지고 있었으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며 전례 없는 다운턴(하강국면)을 겪었다. 시스템 반도체 부문(파운드리, 시스템LSI)에서도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등' 전략을 추진하는 만큼 대만 TSMC, 미국 퀄컴 등 거인들과 맞서야 한다.

경 사장이 '역대급' 불황에도 메모리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 투자를 늘린 이유다. 경 사장이 꿈을 이루고, 업계의 판을 바꿀 수 있을까.

◇유례 없는 메모리의 위기, 어떻게 극복하나

경계현 DS부문장(사장)
삼성전자 DS부문의 올해 2분기까지 영업손실은 약 9조원에 달한다. 지난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감산 규모를 확대해 실적 개선 시점을 앞당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지만, 업계에서는 올해 안에 DS부문의 흑자전환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DS부문이 이처럼 깊은 침체를 겪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의 실적 부진은 글로벌 경제 침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등 여러 대외적 환경 탓이지만, 그룹은 수장에게 위기의 시대를 헤처 나갈 책임과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

또 하나는 경 사장이 말한 대로 AI 시대 대응력을 강화하는 것인데, 삼성전자의 메모리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AI 시장 성장에 맞춰 대규모 AI 처리를 지원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며, 여기에 맞춰 투자를 늘리고 있다.

다만 HBM의 경우 SK하이닉스에 선두 이미지를 넘겨주며 세계 1등 메모리 업체 삼성전자로선 자존심을 구긴 상황이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보다 먼저 5세대 HBM3E 양산 계획을 발표했다.

낸드 시장에서도 삼성전자가 시장점유율 1위지만, 안심할 수 없다. D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이 세계 시장을 과점하고 있지만 낸드는 일본 키옥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 중국 YMTC까지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기술적으로도 마이크론, SK하이닉스와 서로 최고층 적층 타이틀을 주고받으며 기술우위를 다투고 있다.

경 사장은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에서 '장수'로서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을 넘어 미래 생존 전략을 제시하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하는 셈이다.

◇"3년, 5년 후 미래 대비해야"…불황에도 투자 늘렸다

경 사장은 여느 글로벌 반도체 기업 수장보다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DS는 메모리 사업 외에도 파운드리, 시스템LSI(시스템 반도체 설계)까지 다 하고 있다. 각각 사업부장이 따로 있으나 전체 사업 부문을 진두지휘하며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를 조율하는 건 경 사장이다.

현재 메모리 세계 1등을 유지하는 것만도 쉽지 않은 일인데,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 시스템LSI) 분야에서도 2030년에는 세계 1위에 오른다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2019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직접 선언한 비전이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도 170억달러를 들여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지난해 첫 삽을 떠 내년 말 완공 예정이다. 경 사장 임기 내 시작한 사업인 만큼 텍사스 공장을 잘 가동하는 게 그의 중요한 과업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갈 길이 먼 만큼 투자도 늘렸다. 지난해 한 해 DS부문에만 47조9000억원의 투자가 집행됐다. 2021년 투자금액은 43조6000억원이었다. 올해 불황에도 투자를 줄이지 않았다. DS부문만 상반기 누적투자액 23조2000억원으로 단순 계산으로는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 집행됐다. 메모리와 파운드리에 골고루 투자가 이뤄졌다.

경 사장이 당장 성과를 노렸다면, 투자를 줄여 영업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했을 수 있다. 투자가 확대되면 감가상각비가 늘어나 영업이익이 줄어든다. 하지만 그는 취임 후 불황에도 투자를 지속했다. 전문경영인으로서는 어려운 결단일 수 있는데, 어렵다고 투자를 하지 않으면 반도체 사업 특성상 호황이 찾아왔을 때 먹거리가 그만큼 적어진다.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경영 철학을 읽을 수 있다.

이제 삼성전자는 메모리 사업만 잘해선 안 되고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서도 추진력을 보여줘야 한다. 6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으며 삼성전자에 때아닌 메모리 위기설도 돌고 있다. 삼성전자에는 이윤우 전 부회장, 황창규 전 사장, 김재욱 전 사장, 권오현 전 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SAIT(옛 종합기술원) 회장 등 반도체 신화를 만든 주역들로 꼽히는 인물들이 많다. 경 사장이 써나가야 할 역사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게 복잡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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