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선 삼성 리더]승계 포기한 이재용 회장, '한국형 지배구조' 어떻게 만드나선언 이후 이행 방안은 없었다…'반도체 신화' 선대회장 이은 JY의 과업
김혜란 기자공개 2023-09-21 11:41:17
[편집자주]
재계 서열 1위 삼성은 거버넌스나 사업 측면에서 다른 대기업보다 의사결정의 무게감이 남다르다. 삼성이라는 거함을 움직이는 리더들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대물림 경영을 끝내겠다고 선언한 이재용 회장은 앞으로 이행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인 만큼 각 사업 부문 전문경영인들은 차세대 생존 전략을 제시해야 할 때다. 이 회장을 필두로 삼성의 주요 경영진의 과제를 짚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9월 19일 08:2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2020년 5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4세 경영' 포기를 공식화했다. 그로부터 3년 6개월여가 지났지만 기존 오너 경영 체제를 대체할 시스템에 대한 청사진이 구체화한 것은 없다.
이 회장 재임 기간 최대 과제는 '이재용 이후' 삼성전자의 미래를 책임질 경영 승계 틀을 짜는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오너 일가를 중심으로 소유와 경영이 이뤄졌던 '한국 재벌'의 궤적을 바꿔놓는 일,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형 전문경영인 체제'를 창조하는 일. 이것이 이 회장이 이뤄내야 할 과업이란 지적이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전문경영인 체제, 어떻게 확립하나
이 회장이 3세 경영을 끝으로 대물림 경영을 끝내겠다고 선언한 만큼 1969년 창업 이후 오너 경영 체제에 길들여진 삼성에 새로운 전문경영인 체제가 스며들게 만드는 작업을 재임 기간 구축해 내야 한다.
'총수 없는 대기업'의 경우 이사회 중심 경영이 정착한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의 사례를 롤모델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재계에선 이사회 중심 경영이 뿌리내리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일각에선 오너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되면 외풍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한다. 포스코나 KT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되는 등 '주인 없는 회사'의 폐단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소유 분산기업'(지분이 분산돼 있어 지배주주가 없는 회사)이 정치 외풍과 압력이 작용하는 한국 재계 풍토에서 얼마나 큰 부작용을 만들어 낼지는 예견되는 일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결국 이 회장은 오너 일가가 지분을 소유하면서 대주주로서의 경영에 대한 견제와 지원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 이와 동시에 외풍에는 휘둘리지 않는 확실한 자율경영 체제를 만들어 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정치적 압력을 차단할 수 있게 외부에 독립된 견제·규제 기구를 만드는 대안을 모색할 수도 있어 보인다. 현재 운영 중인 삼성 계열사의 자율협약기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모델에서 착안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단일안을 만들어 내기까지 이 회장은 우호적이지만은 않은 여론도 만날 수 있다. 난관이 예상된다.
경영권은 포기하더라도 추후 이 회장이 갖고 있는 삼성그룹 보유 지분이 오너 일가로 상속될 경우 지분율이 희석될 수 있단 점도 생각해야 한다. 이 경우엔 포스코나 KT 등처럼 국민연금 등이 주요주주가 돼 경영에 깊숙이 개입하는 형태가 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아직 4세 승계 포기 선언 이후 전문경영인 체제를 어떻게 할지 이후에 이행방안에 대해선 내부에서 나오는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 앞서 2020년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삼성생명 3개사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지배구조 개편 용역을 의뢰했으나 해답을 얻을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4세 승계 포기 선언의 이행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논의해야 하는 주요 이슈이자 이 회장과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행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한다면 준법감시위원회와 함께 삼성의 컨트롤타워 격인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가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주사, 새 컨트롤타워가 필요할까
일각에서 제기하는 새 컨트롤타워의 부활과 지배구조 개편도 이 회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일까. 우선 현재 사업지원TF는 말 그대로 TF다. 과거 삼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의 부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금은 각 계열사를 조율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우려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오너가 4세 승계를 포기한 이상 이사회 중심의 전문경영인 체제가 자리 잡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전문경영인은 오너와는 그룹 내 역할과 위상이 다르다. 오너 중심 체제에선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지만 전문경영인 체제에선 계열사별 독립 경영 체제가 보다 강화될 수밖에 없다.
지배구조 단순화 문제는 어떨까. 현재 삼성의 지배구조는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의 연결고리로 이뤄져 있다. 삼성물산이 사실상의 지주사라 삼성물산을 지주사로 전환하는 지배구조 개편을 단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삼성물산이 지주사가 되면 공정거래법에 따라 삼성전자 지분을 30%까지 늘려야 하는데, 삼성물산이 수십조원의 지분 매입 자금을 감당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삼성물산의 지주사 전환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삼성에 요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해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누는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안착시켜 가는 과정에서 대안 중 하나로 제기될 수 있어 보인다. 지주사가 전문경영인 중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삼성은 이제 거버넌스의 새 그림을 그려나가야 한다. 한국의 환경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운영할 수 있는 전문경영인체제는 무엇일까. 선대회장이 '반도체 신화'로 리더십을 보여줬다면 이 회장의 과업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되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율경영체제의 틀을 세우는 데 있다는 점, 이를 통해 한국형 지배구조의 새 길을 개척하는 데 있다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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