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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자동차와 자유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3-10-24 09:00:30

이 기사는 2023년 10월 24일 08:3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독일의 아우토반은 속도 제한이 없는 구간들로 유명하다. 실제로 한 운전자가 전화 통화를 하면서 300km 넘게 과속으로 달리는 장면이 카메라에 찍혀 TV 뉴스에 나왔던 것이 기억난다. 시청자 반응은 “뭐 하는 사람이야?”와 “차종이 뭐야?”로 나뉘었다. 다음 미팅에 늦은 세일즈 맨이라는 추측이 가장 많았고 차는 메르세데스였다. 그 차가 사고를 냈다는 뉴스는 없었다. 베를린 인근의 고속도로를 대상으로 한 2006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차량의 30%가 시속 150km를 넘었고 시속 170km를 넘었던 차량의 비율도 15%였다고 한다.

아우토반에 속도 제한이 없는 배경은 역사적인 것이다. 독일 사람들은 극단적인 국가규제 시대였던 나치독일에서 해방되면서 규제 완화에 올인했다. 나치는 전쟁에 써야 할 연료를 절약하기 위해 80km로 속도를 제한했었다. 1952년에 서독 의회가 속도 제한 철폐법을 통과시켰다. 속도 제한 재도입 논의가 없지 않았으나 1970년대 독일 자동차클럽의 모토가 ’자유 시민에게 자유 주행을!‘이었다. 도입하는 정부는 다음번 선거를 걱정해야 했다. 독일에서 이 문제는 미국의 총기 소지 자유 논의 수준이다. 그러나 속도 제한은 조금씩 도입되어 왔다. 나중에는 레스토랑에서의 금연과 같이 어느새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들 예상한다.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는 자동차가 이상한 자유 논란에 엮였다. 미국 북동부에 있는 뉴햄프셔 주에서다. 미국의 모든 주에는 공식 모토가 있는데 뉴햄프셔는 다소 비장하게 ‘자유 아니면 죽음을’(Live Free or Die)이다. 1945년에 채택된 이 모토는 프랑스혁명 때도 쓰였다(‘Vivre Libre ou Mourir’). 독립전쟁의 영웅 중 한 사람인 뉴햄프셔 출신 스타크 장군이 베닝턴 전투 기념일 행사에 건강상 이유로 직접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건배사로 보냈던 것이다.

문제가 생겼다. 1971년에 뉴햄프셔 주 의회가 주민들이 자동차 번호판에 의무적으로 주의 모토를 새기도록 결의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각 주마다 자동차 번호판이 다르다. 주 표시가 있고 거기에 주의 공식 모토를 병기한다. 번호판이 제작되어서 교부될 때 자동으로 수령하게 된다. 이제 모든 뉴햄프셔 자동차가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고 다니게 되었다. 독일 자동차클럽이 반가와 할 일이다. 정치적 모토지만 자동차들이 달고 다니면 좀 다른 느낌을 준다. 마치 과속 단속하지 말라고 시위하는 것 같다.

메이너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신의 승용차 번호판에 새겨진 모토에서 ‘죽음을’ 부분을 가리고 다녔다. 경찰에 단속당하고 형사소추되었다. 사건은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가 1977년에 판결이 내려진다(Wooley v. Maynard). 메이너드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여호와의 왕국이 영생을 준다고 믿기 때문에 해당 문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대법원은 6대 3으로 메이너드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때 “자동차는 자유이니까..”라는 광고가 유명했었다. 챗GPT에게 자동차가 왜 자유의 상징인지 물으면 “자동차는 독립감과 모빌리티 감각을 주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언제든, 어디로든 이동하게 해준다. 주행 경로도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자유의 세기라고 불렸던 19세기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은 전혀 개인적이지 않은 기차였고 개인에 대한 국가와 단체, 경제의 온갖 규제와 제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세기가 개인적인 자동차의 시대다. 자동차는 현대인에게 탈출구일 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무한히 넓혀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자유와 성장의 통로다.

자동차가 유독 미국에서 크게 발달한 이유도 미국 사회 특유의 모빌리티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인들은 땅이 넓은 탓도 있지만 인생 전체와 하루하루의 움직임이 자유롭기 그지 없다. ‘선데이 드라이브’라고 불리는 미국 문화가 보여준다. 특별한 목적도 목표도 없이 휴일에 차를 끌고 나가는 드라이브다. 덕분에 ‘쓸데없이’ 도로를 많이 건설해야 했지만 광활한 미국 땅에서는 별 문제가 안되었다. 미국인들은 자동차가 자신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유인 ‘내 시간을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도 가져다 주었다고 생각한다. 프라이버시는 덤이다. 최근까지..

운전면허증과 생애 첫 차는 젊은이들의 꿈이었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자동차를 자신의 개성과 결부시켜 특정 모델과 평생을 같이하는 유행도 있었고 드라이브스루 맥도널드를 지나 공원에서들 모여 시원한 여름밤을 대화나 영화로 같이 보내곤 했다. 청년기의 낭만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인터넷이 바꾸어 버렸다. 자동차가 없어도 친구들을 언제든지 쉽게 만날 수 있어서 외롭지 않고 사회에서 소외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운전은 소셜미디어에 방해가 되는 행동이다. 취업을 해도 온라인 근무나 업무가 많다. 물건은 택배로 받는다. 꼭 내 차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빌리티가 필요하면 자전거가 있다.

자유의 수단으로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의미가 상대적으로 작아지고 있다. 더해서, 자동차의 기계적 성격과 매력에 심취했던 세대들이 떠나면서 디지털 세계에서 태어났고 환경 의식이 놀랄 만큼 강한 세대가 온다. 자동차는 자동차가 아니라 디지털 장비들과 경쟁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러려면 자동차 자체가 디지털 기기가 되어주면 좋다. 전기자동차와 수소차는 역사적 필연이다. 인간은 이런저런 새 숙제를 다 해낼 것이다.

인간이 키가 최대 2미터 정도이고 백 미터를 20초 정도로 달려서 이동하고 물과 식량과 휴식 없이는 장거리를 갈 수 없는 생물체인 한 모빌리티의 최종병기인 자동차는 없어지지 않는다. ‘자유’의 미래적 개념에 정합하는 적응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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