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리더십 시프트]지속된 사법리스크…시간도 명분도 없었던 이재용 회장③매년 변화보다 안정에 방점…'시스템'이 만든 2인자들
조은아 기자공개 2023-12-12 07:35:58
[편집자주]
'물갈이'는 어느 정도 본능에 가깝다. 조직을 이끄는 데 가장 중요하고 또 필요한 건 믿을 만한 '자기 사람'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등 주요 그룹에서 세대교체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한화그룹 등 마무리를 코앞에 둔 곳도 여럿이다. 왕이 바뀌면 신하도 바뀌는 법. 오너와 함께 한 시대를 만들었던 전문경영인들도 세대교체 흐름 속에서 하나둘 그룹을 떠나고 있다. 더벨이 주요 그룹의 오너 교체와 이에 따른 전문경영인들의 '성쇠(盛衰)'를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3년 12월 05일 13:4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재계에서 총수와 그를 보좌하는 2인자와 관련해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많이 남긴 곳이 바로 삼성그룹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곁을 지켰던 비서실장 중 이학수 전 실장과 최지성 전 실장은 이 선대회장만큼이나 잘 알려져 있다.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어떨까. 이 회장은 2014년부터 사실상 그룹 경영을 총괄하기 시작했다. 10년이 다 돼가지만 사실상 내부에 '이재용 사람'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게 재계 안팎의 평가다.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면서 '혁신'보다는 '안정'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기존 인물들을 중용할 수밖에 없었다.
◇7명의 비서실장 뒀던 이건희 선대회장…대부분 불명예 퇴진
총수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빠르게 움직이는 자리. 그러면서도 항상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는 자리. '공(功)'은 모두 총수에게 돌리는 겸손함도 필요한 자리. 흔히 총수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인물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삼성그룹 역대 비서실장들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아버지 이병철 창업주의 곁을 오랜 기간 지켰던 소병해 전 비서실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선대회장은 취임 후 3년간 사실상 소 전 실장에게 경영을 맡긴 채 두문불출했는데 이 때 상속 문제를 정리하고 소 실장을 내보내기 위한 사전 준비를 했다는 후문이다. 실제 이 선대회장은 복귀 직후 소 전 실장을 삼성생명으로 내려보낸다.
당시 비서실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지는 데 대한 경계심 역시 컸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래서인지 회장으로 재직하는 27년 동안 모두 7명의 비서실장을 뒀다. 가장 긴 세월 곁에 둔 인물은 이학수 전 실장이며 그 반대는 이수완 전 실장이다. 끝까지 좋은 관계를 이어가지도 않았다. 이학수 전 실장의 경우 12년이나 자리를 지켰지만 마무리는 좋지 않았다.
유일하게 웃으며 헤어진 인물은 현명관 전 실장으로 알려진다. 감사원 부감사관 출신인 그는 호텔신라와 삼성종합건설 대표를 거쳐 비서실장이 됐다. '신경영'을 위해선 그룹 내부에 뿌리를 두지 않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학수 전 실장은 IMF 외환위기 시기 구조조정에 성공해 삼성그룹의 도약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 역시 이 선대회장의 뜻에 따라 갑작스럽게 삼성그룹을 떠났다.
최지성 전 실장은 이건희 선대회장의 마지막 비서실장이자 이재용 시대를 함께 연 인물로 꼽힌다. 전임들이 대부분 재무통이나 전략통이었다면 최 전 실장은 삼성전자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현장을 두루 거친 실무형이었다. 특히 삼성전자에서 당시 사장이던 이재용 회장과 수시로 경영 현안을 논의할 만큼 긴밀하게 호흡을 맞춰 왔다.
부지런하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성격으로 알려졌는데 이런 이유로 이재용 회장의 경영 스승으로 낙점됐다는 평가다. 그는 2017년 2월 삼성그룹이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면서 다소 불명예스럽게 회사를 떠났다.
◇안정에 방점…기존 인물들 '중용'하는 이재용 회장
이재용 회장이 실질적으로 경영을 총괄하게 된 시기는 이건희 선대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정농단 사태로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기 시작한 건 2016년이다. 실질적으로 삼성을 이끌어온 약 10년 중 대부분을 재판에 대응하며 보냈다.
그러다보니 '변화'보다는 '안정'에 방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국정농단 사태로 컨트롤타워의 부정적 측면이 부각되면서 비슷한 조직을 만들거나 키울 수도 없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이 회장이 '세대 교체'를 완성하지 못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이재용 시대 삼성그룹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을 꼽자면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을 꼽을 수 있다. 1960년 생인 그는 삼성전자 사업지원TF를 이끌고 있다. 삼성그룹 전자 계열사의 '미니'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곳이다.
정 부회장이 밟아왔던 길을 봐도 기존 비서실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11년 이래 미래전략실에서 경영진단팀장과 인사팀장을 지냈는데 이 시기 최지성 전 실장과 함께 근무했다. 사실상 이 회장이 발탁하고 키운 인물이라기보다는 기존 시스템에서 키워진 인물인 셈이다.
비슷한 시기 경영권 승계를 마친 다른 그룹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명확하게 보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수석부회장 취임 이후 3년 만에 기존 부회장들을 내보내고 장재훈 사장, 신재원 사장, 송창현 사장 등으로 새롭게 사장단을 꾸렸다.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회장에 오른 구광모 LG그룹 회장 취임 5년 반 만에 그룹 최고위 경영진의 세대교체를 마무리했다. 권봉석 부회장과 신학철 부회장 등이 대표적으로 구광모 회장의 LG그룹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진다.
최근 삼성전자에서 미래사업기획단이 신설된 점 역시 눈여겨 볼 만한 변화다. 미래사업기획단은 신사업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일각에선 미래전략실의 부활 아니냐는 의심의 시선을 보내고 있을 정도로 앞으로 삼성전자에서 핵심 역할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업지원TF와의 교통정리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업지원TF는 각 사업을 조율하는 역할, 미래사업기획단은 미래 신사업을 발굴하는 역할이라는 점에서 양쪽의 역할 분담이 분명하다는 게 삼성전자의 입장이지만 미묘한 분위기 변화 역시 감지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이 현재 사업지원TF에 몰려 있는 권한을 분산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래사업기획단의 초대 단장으로는 삼성SDI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전영현 부회장이 선임됐다. 그 역시 이재용 회장이 새롭게 발탁한 인물로 보긴 어렵다. 그는 삼성전자를 거쳐 삼성SDI 대표이사까지 지낸 삼성그룹의 대표 전문경영인이다. 예전부터 미래전략실 주요 인사들로부터 두루 신뢰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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