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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미국의 철도 재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4-01-15 09:00:06

이 기사는 2024년 01월 15일 08:1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는 뭔가 특별하다. 옛날에 많이 듣던 소리여서 그런지 향수도 자극하지만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찬 소리다. 하얗게 내는 연기도 생동감을 더한다. 마음속의 뭔가를 움직인다. 기차 자체가 운송수단 중에서 가장 낭만적인 이미지를 가진다. 그래서 그 역사가 다채롭고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쓰인다. 철도 건설의 역사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스탠퍼드대학교 박물관에 가면 17.6캐럿짜리 순금 대못이 하나 전시되어 있다. 이름이 골든 스파이크(Golden Spike: 황금 돌리개못)다. 1869년 5월 10일에 동쪽과 서쪽에서 각각 건설되어 온 두 철도의 노선이 유타 주 프로먼토리 서밋(Promontory Summit)에서 만났고 두 레일을 연결하는 데 사용된 마지막 스파이크다. 미국 대륙횡단철도의 완성이었다. 이 못이 스탠퍼드대에 있는 이유는 당시 서쪽에서 온 대표단의 단장이자 행사 주관자가 스탠퍼드대 창립자 릴런드 스탠퍼드여서다. 스탠퍼드는 서쪽 노선을 건설했던 서던 퍼시픽의 경영자였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거쳐 상원의원이 되었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1861~1865)으로 황폐해진 미국 전체의 정치적, 경제적 통합을 필요로 했다. 1862년에 설립되었던 유니언 퍼시픽이 유타 주 오그덴에서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까지 노선을 건설했다. 오마하는 미국 철도망의 서쪽 끝이었다. 오그덴에서 캘리포니의 새크라멘토까지 노선은 센트럴 퍼시픽과 서던 퍼시픽이 맡아 건설했다. 후일 후자의 두 회사는 유니언 퍼시픽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최초의 대륙횡단철도 전 구간은 이제 유니언 퍼시픽이 운영한다.

건설 당시에는 프로먼토리 서밋에서 만나기로 한다는 식의 약속이 없었다. 두 회사는 건설하는 노선이 길수록 완공 후 영향력이 커지기 때문에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각각 동과 서로 부지런히 철도를 놓았다. 스탠퍼드가 불리했다. 서부는 산업기반이 상대적으로 부실했고 건설 장비도 동부에서 배로 멀리 남미대륙의 끝을 돌아 실어와야 했다. 지형도 시에라네바다산맥을 넘어가는 난코스여서 요즈음으로 치면 ‘달에 가는 것만큼 어려웠던’ 프로젝트다.

골드러시 시대여서 서부는 인력도 부족했다. 대륙횡단철도의 건설에 중국과 아일랜드계 인력들이 거의 90%로 기여한 이유다. 그러나 철도가 완성되자 저임금으로 열심히 일했던 중국인들에 대한 집단 박해가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시작되었다. 중국인들은 폭행당하고 살 던 곳에서 축출되었다. 그래서 역사에는 중국인 노동자들의 기여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다. 150주년 행사에는 그 후손들이 대거 참여했다.

개통 당시 오마하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야간 운행을 못하는 역 마차로 수개월이 걸렸는데 요금이 1,000달러(지금의 20,000달러)였다. 맹수, 강도, 악천후와 싸워가며 운행했다. 특히 떼를 지어 움직이는 버팔로는 맹수는 아니었지만 대형 장애물이었다. 무사히 도착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러나 기차는 1주일 걸렸다. 성인 요금 65달러로 저렴했고 무엇보다 특히 야간에 안락하고 안전했다.

철도 여행에는 새로운 위험이 따르기도 했다. 자신들 삶의 터전이 훼손된다고 본 인디언들이 공격해왔다. 그래서 기차에는 무장 승무원이 같이 탔다. 버팔로는 여전히 문제였다. 고속의 기차와 충돌하면 탈선을 비롯해 사고가 났다. 기관차 앞부분에는 보호 겸 장애물을 밀 어내는 장치가 부착되었고 주간에는 경종과 기적, 야간에는 전조등이 동원되었다.

이렇게 출발했던 미국 철도는 현대의 미국인들에게는 가장 인기 없는 모빌리티 수단이다. 낙후된 시설, 믿을 수 없는 운행 스케줄, 최악의 서비스 수준 등등으로 여행객들의 외면을 받은지 오래다. 차상위 계층이 주로 이용한다. 그러다 보니 더 외면받는다. 움베르토 에코는 이렇게 썼다. “미국에서 기차는 탈 수도 있고 안 탈 수도 있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기차는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관한 막스 베버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가난한 사람으로 남는 실수를 범한 죄에 대한 벌이다.”

모빌리티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철도는 자동차보다 비효율적이다. 즉, 낙후되어서 외면당하는 것이 아니라 외면당하다 보니 낙후될 수밖에 없다. 누가 측정해 보니 라스베가스에서 LA까지 기차는 4시간 30분이 걸린다. 자동차는 7시간 15분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는 이유는 출발지와 도착지에서의 모빌리티 현실 때문이다. 미국의 도시들은 보행자는 아예 없는 것으로 전제한 곳이 많다. 대중교통 수단도 낙후되어 있다. 차를 렌트하거나 택시나 우버를 이용해야 하는 데 번거롭고 편치도 않다. 시간에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내 마음대 로 할 수 있는 내 공간’인 자동차를 이용하게 된다.

요즘 미국은 고속철도를 중점으로 철도망을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투자계획을 세우고 있다. 예컨대 보스턴에서 출발해 뉴욕의 맨해튼을 거쳐 워싱턴으로 이어지는 노선을 정비하기로 했다. 특히 뉴욕 맨해튼과 허드슨강 건너 뉴저지를 잇는 노선의 정비는 화급을 다툰다.

뉴욕시의 GDP는 약 1조1천억 달러로 미국 전체의 5%이고 멕시코 전체보다 약간 작다. 미국 경제의 심장이다. 그런데도 인프라는 그에 걸맞지 않고 기차와 지하철을 타느니 배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허드슨강 아래를 지나는 터널은 120년 전에 지어진 것인데 2012년에는 허리케인에 침수도 되었다. 바닷물에 심하게 부식 되었고 꼭 오래전에 버려진 방공호나 탄광 갱도 같은 분위기다.

투자계획은 2015년에 오바마 행정부가 우선순위가 높은 사업으로 지정해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이 확보되었다. 50%를 부담한다는 의미다. 2017년에 환경영향평가가 나왔다. 124억 달러짜리 허드슨강 터널과 18억 달러짜리 새 포털브리지가 우선 급하다. 펜스테이션도 59억 달러를 들여 레노베이션에 들어간다. 프로젝트 전체에는 총 259억 달러가 소요되는데 미국 인구의 17%가 사는 보스턴-워싱턴 지역의 철도 인프라가 정비되면 GDP에도 적지 않은 상승효과가 기대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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