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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북극과 남극의 지정학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3-12-15 09:00:51

이 기사는 2023년 12월 15일 08:2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광대한 북극해와 가장 긴 연안으로 접하고 있는 나라가 러시아다. 러시아는 대부분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북극해 연안에서 채굴해 길고 긴 파이프라인으로 실어 보낸다. 그래서 러시아는 북극해 이해관계에 가장 민감하다. 2007년에 러시아 잠수함이 북극점 아래 해저에 러 시아 국기를 놓고 왔다.

러시아는 2018년에 야심 차게 북극해 개발계획을 공표했다.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인 UAE와 중국이 합세해 ’북극 실크로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9억 달러를 들여서 ‘폴라 익스프레스‘라는 12,600km 길이 광섬유 케이블도 항로를 따라 설치되었고 해저 준설작업도 완료했다. 그간 방치해놓았던 50여 개의 소련 시절 군사기지들을 재정비하고 있다.

2017년에 러시아 유조선 한 척이 쇄빙선 도움 없이 북극해를 통항한 적이 있다. 중국까지 19일 걸렸는데 48일이 걸리는 수에즈운하 루트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북극해 항로가 크게 열리면 무르만스크로는 부족할 것이라서 러시아는 타이미르반도 서쪽 카라해 연안에 새로 대형 항구를 건설하고 있다.

푸틴이 러시아국영TV에서 주무부처 장관과 대화하는 영상이 있다. 대통령이 항구 건설에 예산이 얼마나 들겠냐고 물으니 장관은 10조 루블(1,500억 달러) 정도라고 답한다. “그 돈은 러시아 GDP의 2% 나 되는 액수 아닌가?” 하고 푸틴이 되묻자 장관은 그 항구는 러시아 GDP가 2% 이상 성장하게 해 줄 거라고 답한다. 각본대로 주고받는 대화였던 것 같다.

러시아의 국영기업 로사톰은 세계 최초로 원자력발전선박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원자력 추진 선박이 아니라 항행하는 원자력발전소다. 첫 선박이 2019년 12월에 러시아 최북단 해안 도시 페베크에서 가동을 시작했고 추가로 일곱척이 북극해 연안에서 석유가스 탐사와 주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지원할 계획이다.

북극해는 러시아 독점 영역이 아니어서 다른 나라들도 관심을 보인다. 2022년 1월에 NATO 항모 2척이 북극해에 전개되었는데 냉전 종식 이후 최초였다. 북극해에 영유권을 주장하는 국가는 8개국이다. 미국과 러시아 외에 노르웨이, 덴마크(그린란드), 핀란드, 스웨덴, 아이슬란드, 그리고 캐나다다. 북극해의 얼음이 녹을수록 이들 간 각축전이 치열해 질 것이다.

북극해의 지구 반대편에 남극대륙이 있다. 미국의 약 1.35배 크기 무주지다. 국제법 원칙 중에 무주지는 선점하는 국가의 영토가 된다는 것이 있었다. 옛날에는 국기를 꽂아둔다든지 같이 데리고 갔던 공증인의 입회하에 자국 영토라고 적혀있는 동판을 설치하거나 묻고 기록으로 남기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그걸로는 좀 부족하고 실효적으로 지배해야 주인이 된다. 그러나 실효적 지배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고 다툼이 있을 수 있다. ‘오지’에 정착하기로 마음먹는 종교인이나 의료인들이 큰 역할을 했다.

어쨌든 힘이 센 쪽이 박약한 증거를 내세워도 그 나라의 땅이 된다. 불만 있으면 전쟁밖에 없다. 국제법을 강자의 법이라고 했던 이유다. 무주지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는 뜻이 아니라 국가 주권이 없는 곳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원주민은 의미가 없는 것으로 처리되었고 현지의 사회조직도 무시되었다. 국제법은 서구 국가 간 교통정리를 위한 것이지 토착민들과는 무관했다.

토착민도 없는 남극대륙에는 19세기 후반에 최초의 상륙이 이루어졌다.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깃발을 꽂고 탐사기지를 세운 다음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대륙의 크기가 너무 커서 다 할 수는 없고 필요도 없어서 일부씩 그렇게 해오다가 분란이 일어났다. 그러자 아직 남극에 갈만한 여유나 능력이 없는 국가들이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남극은 심해저처럼 ‘인류공동유산’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늘날의 남극 체제가 정립되게 된다.

남극대륙은 1959년에 체결된 남극 조약으로 2048년까지 중립지대다. 특히,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영국, 프랑스, 아르헨티나, 칠레, 노르웨이, 호주, 뉴질랜드 등 7개국이 그 전에 대륙 일부를 자기 땅이라고 각각 선포해 놓았는데 조약 때문에 그냥 조용히 있다. 조약 제4조가 조약은 이미 선포된 영유권을 포기하는 근거로는 쓸 수 없다고 기득권 구제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스페인 식민지였던 점은 싫으면서도 남극은 스페인이 1534년에 처음 영유권을 주장했다고 강조한다. 남극에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워서 관심과 욕심도 가장 큰 것 같다. 오늘도 평화로운 남극이지만 사이가 별로인 나라 간에 신경전도 벌어진다고 한다. 현재 남극에는 30개국이 진출해 있고 여름에는 5천, 겨울에는 1천 명 정도가 거주한다. 남극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다.

한국은 1980년대 들어 본격적인 남극 탐사와 연구에 뛰어들었다. 남미대륙과 가까워서 기지가 가장 많은 남극반도 끝부분 킹 조지 섬에 세종과학기지가 있다. 1988년에 현대가 16개 동을 지었다. 현대 엔지니어링이 설계와 감리, 현대중공업이 건설자재와 장비의 운반, 현 대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극지연구소가 운영한다.

2014년에는 빅토리아랜드에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장보고과학기지를 하나 더 세우면서 한국의 존재감이 커졌다. 세종은 호주와 뉴질랜드 방면에 있는데 장보고는 남미 방면에 있고 서로 거리가 멀다. 세종은 섬인데다가 남미와 가까워서 상대적으로 따뜻하지만 장보고는 본격적인 극지다. 낮은 기온때문에 주변에 다른 기지들이 없어서 외로운 곳이다. 한국이 북극에는 연고를 만들 수 없지만 남극은 다르다. 극지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팀을 격려하고 지원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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