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레짐 시프트]'셀프 회장 신설 논란' 이정희 의장 "회장할 일 없다"회장직 신설은 빅파마 도약 차원…"렉라자 상업화까지만 소임할 것"
최은수 기자공개 2024-02-21 13:49:42
[편집자주]
'지배하지 않는다'로 압축되는 유일한 정신으로 100년 역사를 가진 유한양행이 변하고 있다. 30년만에 회장 및 부회장직을 신설하는 한편 누군가는 수년째 고위 경영직에 자리하고 있다. '순혈'을 제치고 외부 인력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변화도 있다. 창업주 유일한 박사가 꾸린 스튜어드십 역린을 건드는 것일까, 글로벌 혁신신약 렉라자의 상업화를 위한 불가피한 결단일까. 더벨은 '레짐 시프트(Regime shift)'를 겪고 있는 유한양행을 들여다 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1일 07:2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진정한 유일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글로벌 혁신신약 렉라자의 상업화를 완수하는 게 제 몫입니다. 회장직엔 절대 오르지 않습니다."창업주 유일한 박사와 그의 최측근 연만희 고문 외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던 '회장' 직함. 유한양행은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30년 만에 회장직을 부활시킨다. 글로벌 폐암 혁신신약 '렉라자' 출시 원년으로 전망되는 2024년 회장직을 신설한다는 것은 내부에서도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유한양행에선 찾을 수 없던 관행과 제도가 새롭게 생겨나면서 '지배하지 않는다'는 기존 시스템에 변화가 예고됐다. 오너십 없는 유한양행에 이른바 '왕좌'가 관측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누가 회장이 될 것이냐'가 화두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고 그 중심엔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사진)이 섰다.
◇회장·부회장직 신설 논란, 빅파마 도약 위한 것 vs 지배체제 만드는 것
20일 더벨과 인터뷰 한 이 의장은 최근의 논란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경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핵심은 본인이 회장에 오를 일은 추호도 없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회장직은 일신의 영달이 아닌 유한양행이 글로벌 혁신신약을 배출하는 '빅파마'로 나아가기 위해 안정된 경영 기조를 안착하는 차원이라는 얘기다.
이 의장은 "나와 관련한 여러 논란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사안을 엄중하게 생각한다"며 "내가 회장에 오를 것이라는 세간의 전망은 억측이고 유한양행에 계승되고 있는 '유일한 정신'을 왜곡한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가 회장직을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건 100년 가까운 유한양행 역사를 돌아볼 때 특이한 이력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장은 6년의 임기를 끝으로 2021년 사장에서 내려온 후 유한양행의 이사회 멤버로 남은 초유의 인물이다.
이 의장과 비슷한 사례로는 연 고문 정도가 있다. 그러나 연 고문은 1988년 사장직에 올랐다가 1993년 직을 내려놓고 유한양행을 떠나 유한재단 이사장으로 근무했다.
특히 연 고문의 경우엔 창업주 유일한 박사를 직접 가까운 거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유일한 정신을 계승하는 첫번째 임무를 맡았던 상징적 인물이다. 공식 사장 임기를 초월해 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건 연 고문에게만 부여되는 '특전'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내부적으로는 이 의장과 연 고문의 사례를 비교하며 동일선상으로 놓고 보는건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의장은 이와 관련해 "과거 국산신약개발에 역량을 한정할 때는 사장 임기가 길지 않은 게 당연했지만 혁신신약은 개발까지 십수년을 매진해야 한다"며 "경영진이나 이사회 멤버의 교체로 신약 의지가 지속되지 않는 건 오히려 비효율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중지를 모아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외부인력 영입하며 고위직 늘어, 직급체계 변화 필요"
그럼에도 이 의장은 '회장직'으로 추대될 가능성은 절대 없다는 점을 못을 박았다. 이사회 의장으로 경영에 참여한 건 어디까지나 국산 항암신약에서 첫 글로벌 지위 획득을 앞둔 렉라자의 탄생까지란 얘기다. 렉라자를 위해 마지막 소임을 다하는 차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의장은 "최근 유한양행에 고위임원이 늘어나면서 정관을 새롭게 만지게 됐는데 이를 두고 여러 오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유한양행은 렉라자 출시가 가시권에 들어온 걸 기점으로 외부 인력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면서 고위직이 늘어 현재 사장 2명, 부사장 6명 총 8인 체제다"고 말했다.
세부적으로 유한향행은 사장직으로 현재 대표이사인 조욱제 사장과 함께 작년 외부에서 영입한 김열홍 총괄 R&D 사장까지 2명이다. 부사장으로는 이영래(생산본부장)·오세웅(중앙연구소장)·임효영(임상의학본부장)·유재천(약품사업본부장)·이영미(R&BD본부장)·이병만(경영지원본부장)이 있다.
이 의장은 "유구한 전통을 현재의 관점과 시대 변화 맞춰 계승한 작업이 곧 렉라자, 그리고 제2·제3의 혁신신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지금의 유한양행을 만들었다"며 "회장직 신설과 이사회 내 변화 모두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는 유일한 창업주의 정신을 온전히 계승하는 작업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유한양행 안에서 시도한 변화를 두고 많은 반대와 비토를 겪었지만 현재는 '글로벌 혁신신약 플레이어'의 목전에 다다랐다는 점을 주목해달라"며 "순혈을 중시하는 전통 역시 의미가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진정한 경쟁력을 얻으려면 이 또한 좋은 측면에서 극복하고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의장의 회장 선임 여부 등은 오는 정기 주주총회 및 이사회 등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회장직과 부회장직을 신설했지만 이 의장이 스스로 '고사' 의견을 냈기 때문에 정관상 형식만 갖추고 자리는 비워둘 가능성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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