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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바이오 클러스터 기행|대전]혁신신약 꿈, 오픈이노베이션 커뮤니티 '살롱'서 싹튼다③이승주 오름테라퓨틱 대표 "교류 단절서 커뮤니티 필요성 절감"

대전=차지현 기자공개 2024-04-29 08:17:38

[편집자주]

바이오 클러스터의 아이콘 미국 보스턴. 한 세대 이상 구축된 각종 신약개발 인프라는 세계 내로라하는 바이오텍들이 보스턴을 '글로벌 바이오 메카'로 지목하는 배경이다. 한국의 보스턴을 꿈꾸는 바이오 클러스터들 또한 아직 초기 단계지만 각자의 역량과 매력을 앞세워 기업 유치에 혈안이다. 산학연 그리고 임상 병원의 유기적 연계가 갖춰진 전국 각지의 'K-바이오 클러스터'를 찾아 경쟁력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4월 26일 07: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가 한데 모인 장면이 나온다. 이를 가능케 한 게 '살롱 문화'다. 1920년대 당시 프랑스는 귀족 호스트인 마담이 자신의 저택에서 살롱을 여는 사교계 문화가 절정에 달한 시기다. 여러 문인과 예술가가 교류하는 과정 속 문화가 꽃피웠다. 프랑스인은 이 시기를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라고 부른다.

21세기 한국에서 살롱이 부활했다. 혁신신약살롱은 혁신신약의 열망을 품은 이들이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오픈이노베이션 커뮤니티다. 오프라인 모임은 대전에서 출발해 현재 전국 각지로 확대됐고 페이스북 그룹 가입자는 7000명을 넘어섰다. 혁신신약살롱을 처음 기획한 인물이 이승주 오름테라퓨틱 대표다. K-바이오의 새 지평을 연 이 대표를 대전 오름테라퓨틱 본사에서 만났다.

◇전국 각지로 퍼진 '초대형' 커뮤니티, 출발지는 대전

평일 오후 6시 퇴근한 이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온종일 일에 치여 피곤할 법도 한데 참가자들의 눈은 어느 때보다 빛난다. 혁신신약이라는 공통 분모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눈다. 신약개발에 대한 열정과 교류에 대한 갈증은 더 심도 있는 토론이 이어지는 뒤풀이 자리에서 채워진다. 전국 각지 혁신신약살롱 오프라인 모임의 모습이다.

이 대표는 혁신신약살롱을 처음 만들었다. 그는 연세대 생화학과 학사 과정을 마친 후 미국 UC버클리에서 생물리학 박사를, 스탠포드대에서 화학과 포닥을 수료했다. 이후 LG생명과학에 입사해 5년간 연구원 생활을 하다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로 자리를 옮겼다. 혁신신약 네트워크를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사노피의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었다.


네트워크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예상 밖 단절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연구소장으로서 여러 대학과 연구소, 기업을 다니며 혁신신약 전문가들을 만났는데 서로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아쉬움을 느꼈다. 모두 함께 만나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대표는 "혁신신약이라는 도전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가 저마다 자리에서 뛰고 있는데 정작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몰랐다"면서 "국내 혁신신약 연구의 중심지인 대전 안에 모두 함께 있었는데도 말이다"라고 회상했다.

일단 소수라도 모여 교류를 시작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2012년 8월 대전 유성구 전민동 한 횟집에서 모임을 열었다. 지인을 불러 연구자들의 지적 교류를 위한 저녁 자리를 마련했다. 첫 모임에는 약 10명이 모였다. 그때그때 적절한 주제를 선정해 한 사람이 논문이나 자기 연구 성과를 발표하면 이를 토대로 토론하는 형식이었다.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한층 깊은 대화가 오갔다.

살롱이라는 이름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그는 "살롱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아내가 의심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며 "17세기 프랑스에서 다양한 사람이 모여 교류하고 지식을 나눴던 살롱 문화가 우리 모임과 성격이 완전히 똑같다고 보고 이름을 붙이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은 바이오 업종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혁신신약살롱에 대해 들어봤을 정도로 규모가 꽤 커졌다. 판교, 오송, 송도, 대구 그리고 서울 등 각지로 퍼져 오프라임 모임이 개최 중이다. 온라인 활동 기반인 페이스북 그룹 가입자는 이달 기준 7400여명에 달한다. 룸살롱이나 헤어살롱 등 덧씌워진 이미지를 벗고 본연의 의미와 역할을 되찾은 셈이다.

◇혁신신약살롱 지탱 원동력 '혁신신약' 분명한 목적성

혁신신약살롱의 가장 큰 특징은 자발적, 독립적, 비상업적 순수 민간 주도 모임이라는 점이다. 정부나 특정 기업이 주도하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스스로 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이로써 모임이 지속된다. 정기적으로 스폰서십을 받지도 않는다. 뒤풀이 등 비용도 십시일반으로 해결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타나지도 않는데 돈을 내면서까지 사람들이 찾아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대표는 살롱을 지탱하는 가장 큰 동력을 분명한 정체성에서 찾는다. 제약바이오 및 헬스케어 등 폭넓은 업권에서 혁신신약으로만 범주를 좁혔다. 업계에서 가장 도전적인 목표다. '세상에 없던 약을 개발하겠다'는 공동의 목표와 연대 의식으로 똘똘 뭉친 덕분에 커뮤니티가 발전하고 유지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처음에는 바이오업계 전문가 모임이니까 '바이오살롱'을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면서도 "이는 범위가 너무 넓다고 판단했고 오히려 함께 도전하는 세밀한 주제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좁은 분야에 집중했기에 커뮤니티가 발전하고 유지될 수 있던 거 같다"며 "이는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살롱을 지탱할 가장 중요한 힘"이라고 덧붙였다.

2012년 대전에서 시작된 혁신신약살롱은 현재 판교, 오송, 송도, 서울 등 전국 각지로 확대됐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같은 업종에 기반한 공감대가 있더라도 상대는 경쟁자다. 혁신신약 관련 전문 지식부터 신약개발 노하우나 실패 경험담 등을 거리낌 없이 공유하는 게 가능한 걸까.

이에 대한 그의 답은 명확하다.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혁신신약의 특징이 모두가 협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 대표는 "혁신신약 분야는 나는 성공하고 저 사람은 실패해야 한다는 식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 풀릴지 안 풀릴지조차 모르는 난제를 풀고 있으니 서로 도와 좋은 결과를 내보자는 마인드가 전반에 깔려 있다"면서 "서로가 잠재적으로 경쟁하는 상태긴 하지만 목표가 워낙 어렵기에 혼자 허들은 넘기가 매우 힘들고 그래서 서로 돕는 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혁신신약 개발에 있어 실패 경험의 축적과 공유는 특히 중요하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드는 기간과 비용은 평균 10년, 1조원가량이다. 정보기술(IT) 업계처럼 최소기능제품(MVP)을 내놓고 테스트한 뒤 빨리 수정하는 게 불가능하다. 한 번 할 때 잘 만들어야 한다. 그는 혁신신약 업계에서 이미 비슷한 연구를 해본 사람의 노하우나 연구 실패 및 성공담을 솔직하게 듣는 건 시험 전 족집게 강의를 듣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그는 "사실 이미 시행착오를 겪은 신약 개발자는 후발주자에게 자신이 어떤 부분을 놓쳤는지, 어떤 부분이 가장 큰 암초인지를 알려줄 필요가 없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 공유를 통해 향후 협업에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고 결국 구성원 본인의 연구에도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기에 기꺼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살롱의 꽃 '마담', 철저한 원칙 하에 각 모임 주도

덩치가 커질수록 고민도 느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명확한 철칙을 세워두고 있다. 장소 협찬이나 경비 후원 등 소정의 스폰서십을 받을 수 있지만 이벤트에 전부 써야 하고 회계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혁신신약살롱 행사는 단독으로 개최돼야 한다. 다만 혁신신약살롱의 운영은 지역의 자율에 맡긴다.

이렇게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커뮤니티를 풍성하게 만드는 게 바로 살롱의 꽃, 마담들이다. 주제를 정하고 강연자나 장소를 섭외하는 게 모두 마담의 관할이다. 마담의 백그라운드나 성격에 따라 모임의 특색이 달라진다. 마담으로 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상무(서울), 양재혁 베스티안재단 대외협력실장(오송),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판교), 김판건 미래과학기술지주 대표(대전)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에 더해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분위기는 혁신신약살롱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학연은 물론 성별이나 나이, 직급 등을 모두 떠나 순수하게 서로 만나서 토론하고 배우는 모임이 돼야 발전이 있고 발전이 있어야 커뮤니티가 계속될 수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적어도 이 공간에서만큼은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 있다는 점도 커뮤니티 매력 포인트다.

이 대표는 "혁신신약살롱 모임은 단상이나 지정 좌석도 없고 별도 의전이나 복잡한 격식도 챙기지 않는다"면서 "그저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토론과 지식 공유 그 자체에 집중하는 구조"라고 했다.

여러 전문가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교류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성과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지식의 상승 작용이 일어나는 데 이어 살롱에 참여한 사람들이 의기투합해 공동 연구를 하거나 바이오텍을 창업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작년 말 코스닥 입성에 성공한 CAR-T 전문 개발사 큐로셀이 대표적인 결실로 꼽힌다.

이 대표가 바라는 혁신신약살롱의 미래는 하나다. 초심을 철저히 지키면서 더욱 활발한 커뮤니티로 성장하는 거다.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국내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 혁신신약이 쏟아지는 꿈을 꾸고 있다.

그는 "혁신신약살롱이 없어지는 날은 우리나라에 혁신신약을 개발하고 싶은 사람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때일 것"이라며 "본연의 가치가 없는 공간이라면 아무리 와달라고 사정을 해도 오지 않는 곳이 될 수밖에 없기에 혁신신약 개발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면서 커뮤니티를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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