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의 딥체인지, AI]고비마다 꺼내든 '승부수', AI 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①전략사업 'BBC' 중 반도체만 현금 창출...'AI 대전환' 맞춰 투자 집중
정명섭 기자공개 2024-07-09 07:23:11
[편집자주]
'회장님의 어떤 것'은 특별하다. 최고 경영자가 주목한 기술이나 제품이 곧 기업의 미래이자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거나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오너의 역할은 아니겠지만 의사결정권자의 무게감은 더없이 막중하다. 더벨이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진들이 낙점한 기술·제품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7월 04일 16:4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그룹 총수들의 가장 큰 고민은 미래 대비다. 빠르게 변화하는 대내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회와 위기 요인을 내다보고 끊임없이 전략 구상에 몰두해야 한다.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시선도 늘 성장동력 발굴에 있었다. "총수가 계열사의 모든 것을 판단하는 시스템은 경쟁력이 없고 가능성도 없다"는 그의 지론이었다. 10년 후 미래를 보고 사업을 확장해야 한다는 고 최종현 선대회장의 경영 방향을 계승했다.
최 회장은 1998년 3대 회장에 취임할 당시 에너지와 통신 중심이던 그룹의 주력사업을 2020년 전후에 배터리와 바이오, 반도체로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내수에서 탈피한 사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최 회장은 올해 들어 노선을 전면 재검토할 수밖에 없었다. 전략 사업 중 당장 돈이 되는 사업은 반도체가 유일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생성형 AI를 경쟁적으로 선보이면서 'AI 대전환' 시대가 열리자 이를 구현할 AI 반도체 시장이 급격히 커진 영향이다.
◇2017년 '딥 체인지' 선언으로 출발한 BBC 투자
최 회장이 '딥 체인지(근본적 변화)'를 처음 언급한 시기는 2017년 초다. 강력한 혁신으로 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변화하지 않으면 '서든데스(돌연사)'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경영 방침이었다.
이는 SK그룹의 체질을 바꾼 일성이 됐다. SK그룹은 이후 배터리와 바이오, 반도체 등 이른바 'BBC' 사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 시작했다. 2017년 이후 그룹 투자의 80%가 이 세 분야에 집중됐다. SK그룹이 2022년 발표한 5년간의 투자계획을 보면 247조원 투자금액 중 반도체에 142조원, 배터리 등 그린 사업에 67조원, 바이오 12조원을 책정했다.
SK그룹은 그간 정유와 통신 중심의 내수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BBC 전환은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하겠다는 선언과 같았다.
SK이노베이션은 당시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후발 주자였기에 빠르게 대량생산 체계를 구축하는 수밖에 대안이 없었다. 배터리 분리막 사업까지 확대하면서 해마다 조 단위 자본적지출(CAPEX)이 집행된 것도 이때부터다. 배터리 사업부가 SK온으로, 분리막 사업부가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로 각각 분사한 이후에 투자 속도는 더 빨라졌다. 작년 말까지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소재 설비 투자에 투입한 자금은 23조원에 달한다.
반도체 사업의 경우 SK하이닉스와 시너지를 낼 소재사 OCI머티리얼즈(현 SK머티리얼즈), LG실트론(현 SK실트론) 등을 차례로 인수하고 도시바메모리(현 키옥시아) 지분 투자,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 등이 단행됐다.
비슷한 시기에 투자형 지주사인 SK㈜를 중심으로 해외 바이오 투자가 본격화했고, SK바이오팜, SK바이오사이언스, SK플라즈마, SK팜테코 등 바이오 기업들이 연이어 출범했다. 신약과 백신, 의약품 위탁생산(CDMO) 사업 등은 코로나19를 계기로 크게 성장했다. 바이오 투자 규모는 배터리와 반도체 대비 작았지만 미래 성장동력으로서 선제 투자 대상에는 늘 이름을 올렸다.
◇돈 되는 건 아직 반도체뿐...AI 만나 유일하게 '고성장'
2024년 상반기가 지난 현재, BBC 사업 성과를 돌아보면 냉정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배터리 사업은 국내외 완성차 브랜드와 협력과 400조원의 수주 규모를 발판으로 외형 성장에는 성공했으나 전기차 산업의 성장세 둔화와 대규모 설비투자로 아직 잉여현금흐름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SK온은 2021년 출범 후 10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이달 부로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바이오 또한 속도조절 대상이 됐다. SK팜테코를 자회사로 둔 SK㈜는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 등과 경쟁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 소재 CDMO 기업 인수에 조 단위 투자금을 쏟아부었으나 예상보다 수익성이 올라오지 않은 탓이다.
BBC 중 유일하게 체면을 세운 건 SK하이닉스였다. 지난해 반도체 산업의 다운 사이클로 7조730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4분기부터 회복 조짐을 보이더니 올 1분기에 영업이익 2조8860억원을 기록했다. 전분기 대비 734%나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률은 23%에 달했다.
오픈AI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경쟁적으로 생성형 AI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이를 구동하는데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반도체(HBM) 수요가 급증한 게 반전의 계기가 됐다.
최 회장이 6월 경영전략회의 이후 AI와 반도체 투자 확대를 내세운 건 현 상황에서 별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바이오와 배터리 등의 분야는 단기간에 반등이 요원한 상황이라 당장 돈이 되는 분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이 향후 집중적으로 투자할 분야는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AI 서비스(개인형 AI 비서 등)로 압축된다. AI 반도체는 SK하이닉스, 나머지는 SK텔레콤이 담당한다. AI 산업의 밸류체인은 크게 'AI 인프라'와 'AI 전환', 'AI 서비스' 등으로 구분된다. 이 중 인프라와 서비스 부문이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 사업에 해당한다.
SK하이닉스는 지난 경영전략회의에서 2028년까지 103조원을 투자하는 안을 발표했는데 이 중 80%인 82조원을 HBM 투자에 쓰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구체적인 투자 규모를 밝힌 계열사는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뿐이었다. 당분간 SK그룹이 가용할 있는 자원을 AI와 반도체에 집중할 것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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