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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주식회사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4-08-23 16:27:02

이 기사는 2024년 08월 23일 16:2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미국 주식회사의 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게도 충실의무를 부담하는지에 대한 판례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 문제는 주로 중소형 회사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드는 소송으로 이어지기가 어렵다. 판례는 누군가가 그 비용을 부담했기 때문에 생성된다. 더구나 최고법원까지 사건이 이어져 판례가 나오는 것은 더 어렵다. 통상 원고가 자력이 크지 않고 인센티브도 많지 않은 소수주주라는 사실도 한몫한다. 특이한 사실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서 판례의 보편적 설득력도 그다지 높지 않다.

2022년에 텍사스주 대법원에서 관련 판례가 한 건 생성되었다(Estate of Poe, No. 20-0178, Tex. June 17, 2022). 비상장회사에서 발생했고 역시 사실관계가 특이했던 사건이다.

사건은 텍사스주 엘파소 소재 투자회사(PMI)의 1인 이사였던 오너(Dick Poe)가 사망하면서 발생했다. PMI는 자동차 판매회사들을 관리하는 회사다. 오너는 사망하기 몇 주 전에 PMI가 다량의 신주를 발행하도록 조치했고 본인이 320만 달러에 해당 주식을 모두 취득해 지배주주가 되었다. 회사에는 또 다른 주주가 1인 있었는데 오너의 아들이다. 이 조치로 오너 사망 후 회사의 경영권은 아들이 아니라 변호사와 회계사로 구성된 유산관리인단이 가지게 되었다.

해당 거래에 대해 알지 못했던 아들은 오너 사후에 소송을 제기한다. 해당 신주발행은 첫째, 이사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에 반하는 위법한 자기거래이며, 둘째, 회사의 이사가 주주에게 부담하는 충실의무도 위반했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원고는 고인이 해당 거래를 집행하는 데 필요한 판단 능력을 결했기 때문에 회사를 탈취하려는 주변 인물들의 농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유산관리인들은 주식회사의 이사가 주주에게도 충실의무를 부담한다는 아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고인이 원고의 경영 능력에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덧붙였다.

1심 소송 배심원들은 아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원피고 쌍방이 항소해 2심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쌍방은 다시 대법원에 상고했다. 결과는 아들 패소.

텍사스주 대법원에 따르면 텍사스주 법률이 거래 당사자 쌍방간에 비공식적인 충실의무가 존재함을 일반적으로 인정하기는 하지만 주식회사의 이사와 주주간에 그러한 의무가 존재한다는 것은 한 번도 인정된 바가 없다. 주식회사에서는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한 충실의무를 부담할 뿐이며 충실의무가 인정되는 관계는 충실의무의 중대성에 비추어 함부로 인정될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개별 주주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는 결코 인정될 수 없다.

위 텍사스주 판례와는 달리 미국과 영국의 판례에는 주식회사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인정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대개 위 사건에서 등장한 것과 유사한 가족기업, 소수의 주주들이 있는 비상장회사에 관한 것이다. 그런 회사에서는 대주주인 이사와 다른 주주들 사이의 관계를 대형 상장회사의 이사와 다수 소수주주들간 관계와는 다르게 보고 법률관계를 구성할 여지가 크다.

미국 50개 주 회사법의 모델인 델라웨어주 회사법도 주식회사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인정한다. 우리 현행 상법이 그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다르다(제399조). 그러나, 판례는 의외로 많지 않다. 무슨 이유로든 주주가 경영진과 이사회를 비난하는 데 정치, 사회적 어필 수단으로 활용될 수는 있지만 법률적 수단으로서의 실체는 분명치 않다. 로스쿨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과서나 판례집에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경영대학에서 기업윤리를 다룰 때 등장하는 정도다.

사실, 주주의 수가 수십만이고 자산이 수백조 원인 상장회사와 주주 3인에 자산 수백억 정도인 비상장회사를 단지 양자 모두 주식회사라는 이유만으로 동일한 지배구조 원칙과 법률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주주의 수가 늘어날수록 경영진, 이사회와 개별 주주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일반적인 계약당사자 쌍방의 관계가 기초로 하는 ‘신뢰’의 입지가 어쩔 수 없이 좁아진다. 주식시장에서 대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이사회 구성원들의 능력이나 정직성을 신뢰해야 하지만 그것이 개별 이사들과의 1:1 관계에서 법률적 효력을 발휘할 정도의 신뢰라는 해석은 어렵다.

한편, 주식회사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사의 회사 ‘이해관계자 전체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이 제안되고 있다. ESG 조류의 일부다. 이사는 회사와 주주뿐 아니라 종업원과 나아가 사회 전체에 대해 ‘법률상의’ 의무를 진다는 주장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회사법은 이해관계자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이미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15 Pa C.S.A. §515(a)).

2022년 10월에 미국에서 한 행동주의 주주가 저커버그의 메타에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는 회사와 저커버그를 포함한 이사 9인 전원이다. 원고는 피고들이 회사의 주주뿐 아니라 회사의 기관주주들이 투자하고 있는 다른 회사와 그 주주들에 대해서도 충실의무를 진다는 새로운 주장을 내세웠다. 왜냐하면 현대의 기관들은 의무적으로 분산투자를 하기 때문에 투자수익이 한 회사가 아니라 다수 회사의 실적에 좌우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원고에 따르면 메타의 이사회는 전반적인 경제와 사회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사로 있는 회사와 주주들의 이익만을 위해 일했으므로 법률상의 의무를 위반했다.

원고는 여기서 길게 설명할 필요 없는 다양한 이론을 내세워 이사의 충실의무 확장을 주장했으나 2024년 4월 30일에 델라웨어주 법원은 101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판결문을 통해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McRitchie v. Zuckerberg, C.A. No. 2022-0890-JTL). 법원은 지금까지 델라웨어주 판례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지 않은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물고기는 물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투표권을 포함해 한 사람이 한 개의 발언권을 가진다. 세금을 많고 적게 내는 것도 그 원칙을 바꾸지 못한다. 정치의 영역이다. 대조적으로 주식회사의 주주들은 한 주에 의결권 한 개다. 경제의 영역이다. 주주의 의결권은 회사에 대한 자본적 기여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주주가 동등하게 대우받는 곳이 있다. 주주총회장과 법정이다. 주식 보유기간, 주식 수 불문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2023년 기준으로 1% 미만을 보유한 소액주주가 4,672,039명이다. 이 숫자는 우리나라 인구의 10% 정도에 해당하는데 주식투자는 성인들이 하기때문에 거의 다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 정치에서는 1인이 1표이고 따라서 이 주주들이 정치에서는 1주주 1 목소리를 낸다. ESG가 기업경영에서 정치의 영역을 크게 확장하고 있는 추세에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은 기업지배구조의 정치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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