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08년 07월 24일 12: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미분양 적체로 몸살을 앓고 있는 충남 조치원의 신규 입주 단지. 아파트 공급이 일시에 몰리면서 빈집이 넘쳐나자 가격을 최초 분양가보다 20% 낮춰 계약자를 찾고 있다.
모델하우스에서 만난 건설사 관계자는 층과 향이 좋은 데다 가격까지 저렴한 좋은 물건이니까 다른 임자가 나타나기 전에 계약금을 치르라고 재촉한다. 그러면서 이회사가 불러준 계약금 납입계좌를 살펴보니 입주자 모집공고에 나온 것과 다른 번호다.
아파트 분양대금은 시행사, 은행, 시공사 등이 공동으로 계좌를 관리하도록 돼 있다. 분양 계약자들이 납입한 돈이 주택건설 외에 다른 용도로 쓰여지는 걸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이 공동계좌에 들어오지 않은 분양대금은 시공사가 부도가 나더라도 대한주택보증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그 자금의 쓰임새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건네받은 것은 놀랍게도 시공사가 단독으로 관리하는 계좌였다.
#중견건설사들의 무덤이 되고 있는 울산의 또 다른 분양 사업장. 모델하우스 근처에다 사무실을 차린 한 부동산업자가 일반인들로부터 주민등록등본을 사고 있다. 누구든 개인신상명세서를 내주면 적게는 5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까지 현장에서 지급해준다.
이렇게 매집한 개인정보는 곧바로 인근 미분양 아파트 계약서 작성에 쓰여진다. 건설사들이 실계약자를 구할 때까지만 이름을 빌리는 것이다. 이같은 업체의 노력(?)은 곧바로 분양률 상승으로 이어진다. 또 계약자마다 중도금 대출이 일어나 건설사들은 공사비와 대출원리금을 충당할 현금을 마련할 수 있다. 당분간은 돈을 꿔준 금융권 감시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문제는 단돈 100만원에 명의를 판 ‘가짜 계약자’. 시간이 지나도 본인 이름으로 계약된 물건의 임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분양대금을 몽땅 떠안아야 한다. 시공사가 부도가 나면 더욱 낭패다. 타인 명의로 원장정리를 받을 길이 아예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 출근을 준비하던 이른 아침 모 은행의 주택사업 프로젝트파이낸싱 담당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새벽 인터넷 뉴스에 유동성 압박이 심한 건설사로 언급된 몇몇 주택업체의 회사명을 알려달라는 전화다.
기자가 알아도 말해줄 수 없다고 하자 리스크 관리차원에서 어느 회사인지 알아만 두려고 한다며 취조(?)를 계속했다. 상관으로부터 건설사명을 알아내라는 특명(?)을 받은 담당 부장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기자’와 ‘취재원’의 역할이 180도 바뀌어 있었다.
건설사 줄도산설이 나돌고 있는 요즘 벌어지고 있는 진풍경이다. 한쪽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어떻게든 자금을 확보해두려 하고, 또다른 한쪽은 금융부실을 최소화 하기 위해 리스크 관리의 끈을 바짝 조이고 있다.
결국 건설사와 금융사간의 시선이 가 있는 건 유동성이다. 그러나 오늘날 유동성 압박은 건설사와 금융사가 만들어낸 작품이나 다름없다. 부동산 불패신화에서 비롯된 묻지마식 사업 관행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건설사들은 공급과잉이란 우려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용지 매입과 지방 아파트 분양에 열을 올리면서 오늘날 유동성 위기를 키웠다.
금융권은 건설사 유동성 위기의 책임에서 더욱 자유롭지 못하다. 시공사 신용과 지급보증에 의존한 원시적인 프로젝트파이낸싱 구조가 건설사 연쇄부도라는 고리를 만들어냈다. 순수하게 사업성만을 고려하는 개발금융으로 접근했다면 적어도 이처럼 많은 미분양 사업장과 부실 건설사들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올 하반기 외화채권 만기가 대거 돌아오는 금융권의 돈가뭄은 극에 달할 전망이다. 이와 동시에 회사채나 대출 만기가 겹치는 건설사들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최악의 경우 정부가 간접보증으로 상황을 풀어야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그 부담은 일반 국민들 몫이다.
견고할 것만 같았던 부동산 불패신화에 서서히 틈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시장은 그 틈을 메울 새로운 주택금융구조를 원하고 있다. 건설사와 금융사 모두 오늘날 유동성 위기를 가져온 원인과 대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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