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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08년 07월 25일 08: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시장에 위기감이 감돌면 어김없이 투자한계선의 기업들이 블랙 리스트에 오르고 가혹한 테스트가 이루어진다. 소위 ‘꼬리 자르기(Devil take the hindmost)’를 우려하는 것이다. 시장의 테스트를 견디지 못하여 곤경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시험에 든 많은 기업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끈질기게 버텨낸다. 반면 엉뚱하게도 블랙 리스트 밖의 기업이 돌연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영국에서 문제가 되었던 노던록은 흥미(?)로운 사례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영향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랐지만 사실 모기지 자체는 그렇게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워낙 시장성 자금조달 비중이 높아 자본시장의 변동성을 당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은 자금부족이 예금인출사태(Bank-run)로 이어지며 사실상의 국유화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카드위기 상황을 되새겨 보자. 카드위기가 터진 것은 2003년 3월이지만 시장은2002년 가을부터 마녀사냥에 나섰다. 4대 카드사 가운데 가장 작고 약해보이는 외환카드가 ‘약한 고리’로 지목되면서 자금조달이 끊기고 채권투매가 벌어졌다. 하지만 실제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가장 신용등급이 높았던 LG카드였다.
평가사의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다. 평가사는 펀더멘탈을 기준으로 신용등급을 부여하고 기업을 서열화한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이러한 신용등급과 부도율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형성되어 신용평가의 신뢰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단기적인 금융위기에서는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가 먼저 덫에 빠져드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바로 유동성리스크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펀더멘탈이 취약한 기업들은 위기의 초기 국면에서부터 자금압박에 시달리면서 극단적인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비용을 줄이고 보유자산 매각을 통해 최대한 유동성을 확보한다. 외형도 줄고 수익성도 나빠진다. 따라서 신용등급도 흔들린다.
하지만 현금만큼은 움켜쥐고 있다. 시장에서의 자금조달은 어려움을 겪지만 극단적으로 자금수요를 최소화하고 틈새시장을 최대한 활용하여 버티기에 들어간다. 말라버린 웅덩이 바닥 깊숙이 몸을 묻고 비가 내릴 때까지 몇 개월을 견뎌내는 사바나의 악어와 흡사하다.
반면 상대적으로 펀더멘탈이 좋은 기업들은 안팎으로 여유가 있다. 자연히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오히려 한계기업이 헐값으로 내놓은 자산을 능력이 되는대로 사들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차입금(주로 단기)이 늘어나고 점차 유동성리스크가 커진다. 그래도 신용등급이 좋은 이 기업들을 주목하는 투자자는 별로 없다.
하지만 신용위기가 깊어지면 시장은 더 각박해진다. 처음에는 한계선에 있는 기업들만 의심하다가 점차 산업 전반으로 두려움이 확산된다. 바야흐로 자금조달이 끊기면서 전혀 의외의 기업이 갑자기 약한 고리로 부상하기도 한다. 물이 빠지면서 누가 벌거벗었는지 드러나는 양상이다. 펀더멘탈이 아니라 유동성이 이슈가 되는 순간이다.
최근 건설회사 CP잔액(ABCP 포함, 실질차주 기준)을 살펴보면 이런 양상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한계선으로 지목된 A3-업체들의 CP잔액은 축소 후 횡보하고 있는 반면 신용등급이 높은 기업들의 CP잔액은 급증하고 있다. 유동성리스크에 민감한 CP시장의 속성을 감안하면 약한 고리는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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