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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벤더 파이낸싱(Vendor Financing) 도입했더라면... 인수금융 확실성보장 및 FI 최대 활용가능 ...해외에선 자주 사용

현상경 기자공개 2008-09-23 08:30:03

이 기사는 2008년 09월 23일 08:3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6조~8조원짜리 M&A 메가딜에는 대한민국 금융회사가 전부 참여해야 합니다"

은행, 연기금, 증권사를 막론하고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참여한 재무적 투자자(FI)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글로벌 신용경색과 최근 자금시장 동향을 보면 매우 당연하게 들린다. 그러나 여기에는 "FI들이 왜 인수 후보들을 대신해 '대리전'을 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담겨 있다.

일부 정부(캠코)지분이 포함됐지만 대우조선해양은 명목상 공개경매 입찰방식을 택한 커머셜 딜(commercial deal)이다. 관건은 가격싸움. 한푼이라도 높은 가격을 제시하 려면 자금력이 좋은 기업도 차입금을 활용하고 최대한 많은 FI를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나 미국, 유럽과 달리 국내의 경우 FI라고 불릴만한 대형 투자회사가 열 손가락 안에 꼽히다 보니 후보기업은 이들을 '나눠먹기' 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FI들도 피곤하긴 마찬가지. 차입금리, 만기조건, 담보자산, 풋백옵션 등을 놓고 경쟁 FI 및 후보기업과 끝없는 '눈치보기'와 '기싸움'을 벌여야 한다. 갖가지 루머와 뒷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국내 대표적인 투자자인 국민연금마저 무리한 투자조건이 도마에 올라 비난을 사고 있다.

교원공제회 등 일부 FI는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면 그때가서 투자하고 싶다"고 까지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매각자인 산업은행은 "형평성 차원에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이후에는 극히 소액투자라 해도 FI 추가 참여나 제외 등 컨소시엄 변경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상황이 이러니 모든 FI가 그저 '대우조선해양'에 투자하고 싶을 뿐인데 '승선'(乘船)을 위해 포스코나 GS, 한화 등을 골라야 하는 리스크를 지게 된다.

인수금융 전문가들과 투자자들은 차라리 이런 딜은 '벤더 파이낸싱'(vendor financing)을 도입하는 게 낫지 않았느냐는 아쉬움을 표한다.

벤더 파이낸싱은 말 그대로 매도자 혹은 매도자가 주선한 기관이 인수금융을 직접 제공하는 방식이다. 비소급(비상환) 차입금융 (non-recourse debt financing), 즉 후보기업이 당장 차입금에 대한 지급보증 책임을 지지 않고 매물의 주식이나 자산을 담보로 잡아 미리 자금을 마련해 두는 인수금융 스킴이다.

특정매물에 투자하고 싶은 시중은행, 연기금, 증권사들이 매각자의 주선으로 미리 협약(covenant)을 맺어놓은 뒤 후보 기업별로 차입금(투자금)에 대한 금리, 만기 및 옵션 조건만 차별화한다. 한마디로 인수금융의 기본 틀을 매도자가 마련하고 인수 후보군들을 초청해 이를 제안하는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방법이지만 해외 대형M&A 경매입찰에서는 벤더 파이낸싱이 자주 활용돼 왔다. 지난 2006년말 미국의 발전업체인 미란트(Mirant)가 그간 보유해온 필리핀 발전소들을 패키지로 매각했을 때가 대표사례다.

당시 한국전력도 입찰에 참여했었고 일본 도쿄전력(Tokyo Electric Power Co. Inc.)과 마루베니(Marubeni Corp.)가 최종승자가 됐던 이 딜의 규모는 총 15억달러.

매각자인 미란트는 후보군들에게 매물인 필리핀 발전소가 지급보증을 서는 조건으로 7년 분할상환 6억5000만달러(Tranche A, Libor+255bp), 7년 만기일시상환 6억달(Tranche B, Libor+255bp), 5년 분할상환 2억5000만 달러(Tranche C, Libor+250bp)의 인수금융을 마련해 줬다. 이를 활용해 인수에 성공한 일본 전력회사들은 현재 필리핀 민간발전사업자 1위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송성훈 맥쿼리증권 기업금융부 전무는 "후보기업들이 매각자가 제공하는 인수금융을 공통으로 사용하고 각사의 신용도(Credit) 차이에 따른 비용은 따로 지불하는 구조"라며 "여기에 후보군들이 추가자금을 더 모아 붙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벤더 파이낸싱은 입찰자들이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에 비해 인수금융을 미리 확실하게 짤 수 있고 후보기업들이 FI를 일일이 설득하느라 들이는 시간적 제약과 비용을 줄인다는 장점이 있다.

매각자 측에서는 가격인상도 기대할 수 있다. 기본적인 인수금융 구조를 수용한 후보기업들이 남는 여력으로 가외의 FI를 끌여들여 더 높은 인수가격을 제시할 수도 있기 때문.

FI들 역시 미리 '승자'를 점찍어 도박하듯이 투자를 집행하는 대신 매물가치에만 집중해 투자금액과 조건을 마련할 수 있다.

연기금 관계자들은 "대우조선의 경우 지분 투자를 고려하는 FI들 대부분이 국민연금이 각각의 후보기업에게 제시한 수익률과 비슷한 수준의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며 "벤더 파이낸싱이 도입됐다면 모든 FI들이 무리한 금리조건이나 옵션요구 없이 골고루 대우조선에 투자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물론 벤더 파이낸싱에도 어려움이 있다. 국내 대형M&A에서 시도되지 않았다는 점, 또 차입인수(LBO)의 배임죄 적용 우려 때문에 매물 기업이 확고한 지급보증을 서주기 힘들다는 점 등이다.

더구나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예비실사와 본입찰만 남겨둔 터라 현재로서는 벤더 파이낸싱을 활용하기 힘든 '사후약방문'이란 점도 아쉬움을 더한다.

하지만 대우조선 이후에도 현대건설, 하이닉스 등 정부나 채권단이 관여하고 규모가 큰 메가딜들이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과 연기금들이 그때마다 또 다시 후보 기업과의 짝짓기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통해 국내 인수금융 구조에서도 좀 더 창의적이고 새로운 시도의 도입이 필요함을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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