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기사는 2008년 09월 24일 10:4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자산운용사에 근무하면서 Credit 분석과 투자를 병행하던 당시의 일이다. 금호그룹의 대우건설 인수와 관련된 파이낸싱이 종료된 직후인 2007년 초 한 증권사 IB부문으로부터 금호산업의 신용과 연계된 CLN(신용연계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ABS(자산유동화증권) 투자를 제안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이슈는 대우건설 인수에 따른 금호그룹의 실질레버리지 증가에 대한 우려였으며 CLN의 발행자인 리먼브러더스(정확히는 리먼브러더스의 해외 자회사)의 신용은 당연히(?) 논외의 대상이었다. 당시엔 대한민국의 국가신용등급 보다 높은 신용등급을 보유한 리먼브라더스는 국내의 신용평가 잣대로 들이대기가 쉽지 않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인프라 그 자체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 후 1년 반 만에 시장의 인프라라 굳게 믿었던 리먼브러더스가 뉴욕 파산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메릴린치가 BOA에 피인수되었다는 뉴스와 함께. 국제금융허브를 지향하며 자본시장통합법을 통과시키고 한국의 골드만삭스를 키워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우리입장에서는 미국 5대IB중 3개가 사라지고 나머지 2개마저 IB사업모델을 포기하는 듯한 현실을 목도하면서 한순간에 목표를 도둑맞은 듯한 허탈감을 느껴야 했다.
전세계 매스미디어는 레이건 이후 지속되어 온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종말이라며 부산을 떨며 벌써 세계금융시장의 포스트 체제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하느라 정신이 없다. 국내외 금융시장의 혼란속에서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크레딧애널리스트로서 국내 금융기관과 관련된 두 가지 주제에 대하여 논의해 보고자 한다.
◇ 국내 금융기관 신용등급 과연 적정한가?
베어스턴스부터 리먼브러더스까지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유동성 위기에 근본적으로 취약한 금융기관의 속성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금융기관은 업종의 특성상 영업활동을 위해서 신인도를 기반으로 크게는 수십배에 달하는 레버리지(총자산/자기자본)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08년 6월말(일부는 3월말) 기준 국내은행의 레버리지 비율은 16.1배, 증권사는 5.3배, 상호저축은행은 14.5배, 캐피탈사는 7.9배, 카드사는 3.9배에 달한다. 07년말 기준으로 제조업체의 평균적인 레버리지 비율이 A급 이상기업은 1.9배(부채비율 94%), BBB급 기업은2.9배(부채비율 190%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유동성이 결부된 전방위적인 신용경색 국면에 진정으로 누가 취약한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주지하다시피 국내 금융기관들의 신용등급은 대부분 우량등급이라 할 수 있는 A~AAA 범위에 분포되어 있다. 업종별로 신용등급의 정의가 다를 수 없다는 신용평가의 기본원리에 충실할 때 국내 금융기관의 현재 신용등급이 상당부분 과대평가 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선 신용채권의 가격이라고 할 수 있는 스프레드 측면에서 그렇다. 9/23일 현재 카드채(AA0, 3년) 스프레드는 196bp로 등급이 무려 4노치 낮은 A- 회사채 스프레드(190bp) 보다 높다. A0급 3년물 캐피탈채권의 스프레드는 258bp로 2노치 낮은 BBB+회사채 스프레드(271bp)와 비교해 힘겨운 우위를 보이고 있다. BBB+등급이 우량등급과 비우량등급 사이의 높은 심리적/제도적인 경계선상에 놓여 있어 등급간 디스카운트가 가장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캐피탈채권은 소위 등급값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물론 시장가격이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왜곡될 수 있어 스프레드에 내재된(Implied) 신용등급과 실제 신용등급간 괴리가 발생할 소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 인정된다. 또한 현재의 금융시장 환경이 적정한 프라이싱이 힘들 정도의 상당히 예외적인 상황이라는 점도 감안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스프레드 역전현상을 시장탓 만으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다음으로는 신용위험에 유동성위험이 반드시 함께 감안되어야 하는데, 금융기관의 신용등급에는 사실상 업종자체의 고유한 유동성위험은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금융기관은 많게는 자기자본의 수십배에 달하는 부채를 보유하기 때문에 유동성위험을 신용위험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최근 은행권은 리테일마켓(예금) 보다 기관마켓(은행채와 CD)에 더욱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여전사는 글자 그대로 아예 리테일 수신기능이 없다. 차입금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증권사는 오래전부터 투자성격과 무관하게 콜로 자금을 조달하는데 익숙해 있다. 금융업 전반의 유동성위험이 구조적으로 증가하여 외부충격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신용등급의 반영도는 아직 미흡한 상태이다.
최근 은행에 인수된 소규모 캐피탈사가 단박에 A-등급을 획득한 일이 있다. A등급이라는 기본 자격증을 부여 받아야만 시장을 상대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금융기관의 숙명에 대한 신용평가사의 친절한 배려(?)와 대주주 요소에 대한 지나친 가중치에 아쉬움이 느껴진다.
◇ 국내은행의 자산건전성 문제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
서브프라임이 우리가 동경했던 글로벌IB를 단기간에 침몰시키는 것을 바라보며 국내은행은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금융시장에 화두가 되었다. 부실의 깊이와 규모는 다르겠지만 04년 이후 국내 금융시장의 전반적인 그림은 서브프라임과 닮은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은행대전에 의한 과다 레버리지의 후유증과 글로벌IB들의 유동성위기에 따른 불안심리로 변동성을 키웠던 은행채 스프레드는 이제 자산건전성 이라는 마지막 관문 앞에서 시장의 테스트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국가경제의 핵심 인프라이자 국내 금융기관 자산중 60%이상의 비중(자산운용사 제외시 70%, 표1 참고)을 차지하고 있는 은행이 자산건전성 저하에 대한 우려감으로 신인도가 추락한다면 금융시장 뿐만 아니라 국내경제에도 상당히 불행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개괄적인 수준에서 국내 은행권이 감당할 수 있는 자산부실화의 수준은 어느 정도 일까? 우선 좀 무리한 가정일 수 있지만 외환위기 수준의 경제상황은 오지 않는다고 전제한다. 신용카드 버블붕괴 등으로 내수가 침체되었던 01년~04년까지의 평균적인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약 2.52%(08.6월말 0.7%)수준이다. 동 비율을 현재의 총여신(약1,190조)에 적용하면 약 30조원의 부실자산규모가 도출된다. 이는 현재의 부실자산(8.3조) 대비 약 21.7조가 증가한 금액이다. 이 금액은 08.6월말 현재 국내은행의 대손충당금합계 16조와 예상 당기순이익 11조(2000년 이후 평균 ROA 0.72%을 적용한 수치)의 범위 내에서 어렵사리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다분히 비과학적인 방식으로 도출된 이 결론은 07년말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스템 스트레스 모형 구축 및 스트레스 테스트 실시 결과」라는 보고서의 결론(심각한 정도의 충격을 가정한 모든 시나리오에서 BIS비율 8% 유지 가능)과 대체로 일치한다. 물론 IMF에 준하는 수준의 경제충격이 발생한다면 전혀 다른 스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현재 시장에서 가장 우려감이 높은 부동산PF대출의 경우는 어떨까? 08.6월말 기준 금감원이 파악한 은행권 부동산PF대출 잔액은 47.9조원 수준이다. 이는 은행의 총대출 대비는 4.4%에 불과하지만 자기자본 대비는 무려 49%에 달하는 규모다. 이중 실제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아 위험에 노출되었다고 판단되는 금액은 어느 정도 일까? 당연히 추정에는 여러가지 방법과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개괄적인 수준에서 파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은행의 속성상 신용등급을 보유하지 않았거나 BB급 이하인 건설업체에 대출을 집행했을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을 전제한다.
현재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는 건설업체수는 총 78개, 이중 BBB-이하 업체 수는 총 43개로 파악된다. 각 업체에 대한 익스포져 비중이 동일하고 BBB-이하 업체 중 절반에 해당하는 22개 업체가 부도 발생할 경우 부도율은 26.9%(카드사태 당시 실질연체율과 비슷한 수치)로 추정된다. 즉 총PF대출금액(47.9조)의 26.9%에 해당하는 약 12.9조 정도가 위험에 노출된 금액으로 추정된다. 토지 등 담보를 통한 회수율을 30%정도 가정할 경우 실제 손실금액은 9조 수준으로 줄어든다. 이는 현재의 대손충당금(16조) 범위 내에서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볼 수도 있다
오히려 걱정되는 부분은 중소기업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쪽이다. 중소기업대출의 경우 은행의 외형경쟁으로 가장 증가세가 두드러지는 부문이고 국내외 경제가 불안한 현시점에서 은행권 자산건전성 관리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주택담보대출은 미국의 주택과 관련된 부채비율 400%(LTV 80% 이상) 보다는 상황이 나은 부채비율 100%(LTV 50%) 수준이다. 하지만 주택가격이 급락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실제 은행의 자산건전성이 크게 저하되지 않더라도 시장의 우려감이 지속되고 그것이 상황을 더 악화 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일부 저축은행, 증권사, 캐피탈사에서 유동성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금융시장 환경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의 우려가 전혀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지만 과도한 비관도 실제 보다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아무쪼록 우리 금융시장에 시장의 우려가 일부 현실화 되고 그것에 대한 과도한 비관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표 1 : 국내 금융기관 외형 및 재무지표 현황 >
<표 2 : 국내은행 자산건전성 및 자본완충력 지표 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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